민주당, 임미리 교수 논란으로 중도·진보층 흔드는 악수 되나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못 살겠다. 갈아보자!"
지난 1956년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의 신익희 후보가 내건 슬로건이다. 자유당이 '갈아봤자 별수 없다'로 맞섰지만, 이승만 장기집권에 억눌려 파고든 민심을 막을 수 없었다. 신 후보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지 않았더라면 그때 민주진영으로의 정권교체가 이뤄졌을 거라고들 얘기한다.
21대 총선을 두 달여 앞두고 이에 버금가는 선거 슬로건이 탄생할 모양이다. 현재 SNS상에는 '#민주당만_빼고'라는 문구를 넣은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14일 '민주당만 빼고(찍자)'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를 검찰에 고발했다가 취하한 까닭이다.
여론이 심각하게 흐르자 민주당도 고발을 취하하며 일단 멈췄다. 아쉬운 점이라면 민주당이 '미안했다'며 쿨하게 고발을 취하했더라면 총선 여론 관리에 민감한 나머지 악수를 둔 집권여당의 사정을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고발 취소 이유가 더 가관이다. 임 교수가 과거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싱크탱크 '내일' 출신이었기에 "분명한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전날(13일) 고발 사실을 확인하고 '민주당이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하고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한 수고로움과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을 정도다. 독재 정부의 '표현의 자유' 억압에 맞섰던 민주화세력이 주류로 있는 집권여당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같은 해명은 '민주당을 빼고 투표하자'는 임 교수의 말이 괘씸해 고발의 당위성을 일부러 만들기 위해서거나, 아니면 정말로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파악했거나 일 것이다. 후자라면 과도한 진영논리에 빠진 꼴이라 더 절망적이다. 출신을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본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 논리라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이날(14일) 페이스북에 올린 말처럼 2012년에 광화문에서 문재인 지지 연설까지 한 적 있는 그가 문재인 대통령의 사주를 받고 청와대와 집권여당을 잡는 '제1야당'급 공격 스피커 노릇을 하는 셈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지난 2017년 5월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집권여당의 국정운영 방식에서 뭔지 모를 답답함을 느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민주당엔 조국 사태보다 악습의 뿌리가 깊은 검찰이 더 나쁜 존재이고, 자유한국당은 친일파에 뿌리를 둔 토착 왜구이기 때문에 제1야당으로서 협조할 수 없는 파트너로 인식됐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진화에 나섰지만, '민주당만 빼고'라는 슬로건은 진보진영에서 환영 받고 있다. 진 전 교수를 비롯해 김경율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민변 소속 권경애 변호사 등이 "나도 함께 고발해달라"며 가세했다.
임 교수는 해당 칼럼에서 국민들의 정치 혐오가 강해지고 있다며 집권여당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촛불정권을 자임하면서도 국민의 열망보다 정권의 이해에 골몰"한다는 게 이유였다. '민주당만 빼고'라는 슬로건이 올해 총선까지 이어진다면 민주당으로서는 이번 논란을 두고두고 후회할 수밖에 없다. 결과에 따라서 그 후폭풍은 더 거셀 수 있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쓴소리에 '너 고소'를 먼저 떠올려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당은 자기를 공격하는 외부가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파악하기에 앞서 '왜 그랬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만약 그랬더라면 임 교수 고발 논란도 방지했을지 모른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속담이 있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건 달콤한 사탕발림이 아니라 '몸에 좋은' 쓴 약이라는 점을 잊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