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 된 '비례정당'…한국당, 선관위 결정 불복 신중 검토
[더팩트|국회=문혜현 기자] 보수야권에서 '혁신통합'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적극 추진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비례자유한국당'을 창당할지 관심이 몰리고 있다.
준연동형 선거법이 적용되는 21대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은 "합의없이 법안을 통과시킨 여야 4당에 '묘수'로 대응하겠다"며 호기롭게 비례자유한국당 창당 계획을 밝혔지만, 당장 선관위의 '유사명칭' 유권해석을 비롯해 보수야권 통합문제 등 다양한 의제와 얽히는 모양새다.
특히 새로운보수당과 통합 논의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혁신통합위원회(이하 혁통위)를 꾸리는 등 행보에 나서고 있어 향후 통합이 이뤄진 뒤에도 비례정당을 창당할지 관심이 몰린다. 비례자유한국당은 사실상 한국당의 '의석 확보' 차원에서 만들어진 '위성정당'으로, 한국당은 총선 후 비례자유한국당에서 당선된 이들과 함께 정치활동을 재개할 방침이었다.
이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3일 전체회의를 열고 '비례○○당' 정당 명칭 사용 허용여부를 불허하기로 결정했다.
선관위는 결정 이유로 "「정당법」 제41조에 따르면 정당의 명칭은 이미 등록된 정당이 사용 중인 명칭과 뚜렷이 구별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유권자들이 정당의 동일성을 오인·혼동하여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이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선관위는 "'비례'는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정당의 정책과 정치적 신념 등 어떠한 가치를 내포하는 단어로 보기 어려워 그 자체가 독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다"며 "'비례'라는 단어와의 결합으로 이미 등록된 정당과 구별된 새로운 관념이 생겨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선관위는 이날 기준으로 "결성신고·공고된 '비례○○당중앙당창당준비위원회'는 정당법 제41조에 위반되지 않는 다른 명칭으로 정당 등록신청을 할 수 있다"고 예외를 뒀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유사 정당 명칭을 불허해달라고 선관위에 요청한 바 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이날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 혼돈을 초래할 목적으로 유사 정당 명칭을 사용해 창당하는 것은 정치를 웃음거리로 만든다"면서 "국회가 어렵게 통과시킨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정신과 취지를 밑바닥에서부터 흔드는 퇴행적 정치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비례 명칭 사용을 불허하면 선관위 스스로 정권 하수인임을 자인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우리 당은 끝까지 책임을 추궁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추후 불복 소송 등 대응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날 오후 있었던 한국당 의원총회 중 법률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교일 의원은 "비례한국당과 자유한국당은 별개의 정당이기 때문에 한국당이 나서서 불복 소송을 하는 것은 조금 문제점이 있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그래서 현재로서 조금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면서도 "결론이 확실하게 난 것은 아니"라고 여지를 뒀다.
'비례○○당' 창당 불허 결정에 따라 추가 비례정당이 생길지 주목된다. 일각에선 명칭을 달리하더라도 한국당 쪽에서 비례정당을 낼 수 있는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비례자유한국당은) 만들면서 부작용이 너무 많아서 '계륵'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 평론가는 "이미 보수통합 흐름에서 공천·지분 문제로 이전투구해야한다"며 "합의할지 미지수인데 어쨌든 2월 10일까지 새로운 신당을 내놓겠다고 했다. 설 이후 새로운 모습으로 총선을 치르겠다고 하는데, 한국당은 간판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후에 새 당을 만들면 그럼 그 이름으로 또 (비례정당을) 만들 건가"라며 "보수대통합을 했는데 또 가칭 '비례 보수통합당'을 만드는 경우 국민들 입장에서 명분도 저버리고, 정치 도리도 저버리고 의석 확보를 위한 욕망만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정치 혐오'를 키울 수 있다. 정치적 오점을 남기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결국 보수통합당을 만들고 비례당을 만들면 앞으로는 통합을 외치고 뒤로는 잇속을 챙기는 것"이라며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요구하면서 다툼하는 것보다 대승적으로 접는 게 맞을 것 같다. 거대정당이 총선에서 의석을 잃게 되도 3~4석 정도인데, 한국당이 소탐대실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김병민 정치평론가는 "통합과 비례정당 창당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통화에서 "(비례정당을) 만들어야한다"며 "통합이 되든 안 되든 거대 정당 입장에선 지역구 의석 수가 많으면 비례대표 의석수를 뺏기게 된다. (한국당과) 합의하지 않은 선거법을 처리해서 총선에 적용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평론가는 "통합하고 난 뒤에도 비례통합신당을 만드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본다"며 "선관위에서 불허 결정이 나도 명칭을 바꾼다던지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한국당이 통합한 뒤에도 비례정당을 만들 경우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이 비례정당으로 갈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비례정당'이 결성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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