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속 태풍' 알지만, 작은 불씨라도 되고 싶어"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제 인생에서 너무 힘든 날이었습니다. 불출마 기자회견 전날 지역 사무실 당직자분들에게 제가 (불출마 관련) 보고의 말씀을 드렸는데 '이럴 수는 없다. 김영우 의원이 잘못한 게 뭐가 있느냐', '물러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김영우 의원이 물러나느냐', '한창 일할 나이고, 우리는 김영우 의원만 믿고 따라 왔는데…불출마 의사는 없던 걸로 하고 회의 끝냅시다' 등 만류가 심했습니다."
지난 4일 전격 불출마 선언을 한 김영우 자유한국당 의원(3선, 경기 포천시가평군)은 불출마 결심을 주변에 알리는 과정이 굉장히 괴롭고 어려운 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와도 밤샘 토론을 하며 불출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끝에 '지지'를 얻었다고 했다.
◆괴롭고 어려웠던 '불출마' 과정
이 어려운 결정 배경에 대해 김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제가 몸담았던 정당의 대통령 두 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두 법정에 섰다"며 "정치에 입문하는 과정과 정치를 해오는 과정에서 두 전직 대통령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은 정치인으로 저도 정치적·역사적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두 전직 대통령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치른 20대 총선에서 62.22%의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후광을 받았던 18대(49.68%),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았던 19대(50.43%) 총선보다도 높은 성적표다.
현재도 정치적 경쟁력을 충분히 갖춘 젊은 정치인(52세)인 김 의원에게 불출마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특히 그보다 더 큰 책임이 있으면서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정치인도 많은데, 왜 본인이 '지금' 책임지겠다고 한 것일까. 정기국회 마지막 날이었던 10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김 의원을 만나 물었다.
김 의원은 불출마 결심을 자신을 3번 연속 선택해준 지역민들에게 먼저 알렸다고 했다. 기자회견 2~3일 전에는 지역 원로들께 먼저 인사를 드렸고, 기자회견 전날에는 지역 사무실 당직자에게 결심을 알렸다. 관련 일화를 전하며 김 의원은 "저를 성원해준 지역주민들께는 죄인"이라고 했다. 짙은 고뇌와 아쉬움이 느껴졌다.
◆"성원해준 지역주민에게는 '죄인'"
김 의원의 불출마를 만류하는 지역민들에게는 뭐라고 했을까. 그는 "대한민국이 위기고 나라가 위기인데, 이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 우리가 제대로 비판하기 위해선 당의 개혁이 필요하다"며 "지금 우리 당은 투쟁 일변도다. 개혁 없는 투쟁은 국민에게 다가갈 수 없고, 공감을 얻기 어렵다. 그것이 우리 당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은 "당의 위기를 지켜보며 나설 수밖에 없었다"며 "제가 그만두더라도 우리 당에 큰 영향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찻잔 속 태풍'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런 작은 개혁의 불씨라도 없으면 우리 당에 희망은 없다. 그렇게 되면 좌 편향 된 문재인 정권의 폭주를 막을 수 없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에 앞서 유민봉(초선, 비례대표), 김성찬(재선), 김세연(3선) 의원 등도 당의 쇄신을 촉구하면서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지금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 의원에게 그 이유와 변화를 위한 방법을 물었다.
◆"상식에 안 맞는 정치한 한국당"
그는 "당이 투쟁 일변도인데, 개혁과 투쟁이 같이 가야 한다"며 "개혁은 인물의 교체도 필요하고 국민 눈높이, 정서, 상식에 맞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상식에 맞지 않는 정치를 많이 했다. '릴레이단식', '(조국 인사청문TF 의원에게) 표창장 수여', '박찬주 전 육군 대장 영입 추진' 등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특권층, 웰빙 정당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인재영입도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수성가한 청년들, 기업인들, 각 분야 전문가들을 찾아야 한다. 국민 영웅을 찾아야 한다"며 "이와 함께 20대 총선 막장 공천으로 당 분열에 책임 있는 사람들, 막말로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린 사람들, 최고 권력자의 곁에서 호가호위했던 정치인들은 배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장선에서 김 의원은 지난 9일 이뤄진 한국당의 원내사령탑 교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심재철 원내대표, 김재원 정책위의장이 선출된 경선 결과는 친황(친황교안)체제 구축에 대한 제동, 견제를 의미한다"며 "황심(황 대표의 의중)이 통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의원은 "황 대표가 투쟁을 열심히 해왔는데, 개혁 없는 투쟁이었다"며 "통합과 개혁을 한다고 말하고, 아직 실천이 안 됐다. '황심은 곧 개혁'이라는 이미지가 없다 보니 친황체제 구축에만 올인하는 모습이 (경선에) 먹히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황교안 대표는 개혁 없는 투쟁가"
복잡한 당내, 국회 상황 속 김 의원은 정치인으로서의 계획도, 복귀에 대한 기약도 없이 불출마를 선택했다. 지난 12년의 의정활동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일까.
김 의원은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소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당론이나, 지도부 지시보다는 헌법에도 나와 있듯이 양심에 따라 의정활동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2016년 국방위원장 시절 국정감사 보이콧이 당론이었는데, 제가 위원장으로서 '국방의 시계는 일분일초라도 멈출 수 없다'며 혼자 상임위를 열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라고 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당시 동료의원들에 의해 국방위원장실에 4시간 동안 감금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서청원·김무성 의원 등 다선 의원들로부터 "이런 결정을 하면 정치 인생이 끝난다"는 말까지 들었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아쉬웠던 순간도 회상했다. 김 의원은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데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계파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며 "박 대통령 탄핵 때도 친박과의 갈등이 너무 심해서 당을 나왔었는데(바른정당), 그때 당 안에서 내부 개혁을 더 확실히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계파 갈등 못 넘어…탄핵 후회는 안 해"
다만 그는 탄핵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분명히 했다. 김 의원은 "당시 국민 80% 이상이 탄핵을 지지했고, 헌법재판소에서도 만장일치로 탄핵을 가결했는데, 그건 받아들여야 한다"며 "역사적 평가는 차후에 하더라도 (탄핵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내년 5월 말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 김 의원은 무슨 일을 할까. 일각에선 더 큰 정치적 도약을 위한 숨 고르기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그는 '다음'을 위한 정치적 고려는 전혀 없다고 했다.
김 의원은 "정치가 참 마음대로 안 된다"며 "불출마를 제 정치 인생의 새로운 국면,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일단 앞으로 어떻게 생활할지부터 생각하겠다. 옛날에 학원강사도 하고, 홍보회사도 다녔는데, 기자 출신(YTN)은 면허증이 없어 별로 할 게 없다. 어쨌든 살아갈 궁리를 해야 한다"고 '비정치인 김영우'의 삶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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