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건 투쟁으로 얻어낸 '보수 결집', '리더십 재평가'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8일간의 단식 끝에 건강 악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지난 20일 단식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정치권 안팎에선 '뜬금없는 단식', '민폐 단식', '정치 쇼' 등의 비판이 많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황 대표가 단식을 시작한 시기는 내년 총선을 대비한 '인재영입', '보수 통합' 카드가 판단 미스, 섣부른 발표 등으로 역효과를 내던 때였다. 내부에선 당 쇄신론이 들끓고, 외부에선 리더십에 의문을 표하는 시선이 늘고 있었다.
위기의 황 대표는 '단식 카드'를 전격적으로 꺼내 들었다. 명분은 '지소미아 종료 철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선거·공수처법 철회'였다. 단식으로 풀기 어려워 보였던 이 과제들은 이틀 만에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을 택하며 일부가 충족됐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황 대표 단식농성장을 찾은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황 대표가 지소미아에 대해 강하게 말해줘 협상의 지렛대가 됐다는 내부 평가가 있었다"고 지소미아 연장에 공이 있음을 시인했다.
이때부터 황 대표의 단식에 대한 내부 분위기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황 대표도 국회와 청와대를 오가면서 단식을 이어가다 청와대 앞으로 단식 장소를 고정하며, 투쟁의 강도를 높였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대표,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 등 평소 황 대표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했던 거물급 인사들도 줄줄이 단식농성장을 찾았다.
황 대표가 병원으로 이송된 직후에는 같은 장소에서 정미경·신보라 최고위원이 동조 단식을 시작했다. 두 최고위원은 28일 청와대 앞 단식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황 대표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내가 황교안, 우리가 황교안'이라는 마음으로 단식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황 대표 리더십 논란에 대한 이야기는 쏙 들어가고, 그를 중심으로 당이 똘똘 뭉치는 모습이다. 주요 지지층도 결집했다. 황 대표 단식장 인근에는 늘 100여 명이 넘는 지지자들이 몰려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대신 정부와 여당을 향한 강경한 목소리는 더 커졌다. 선거법 개정안은 이미 부의됐고, 사법제도 개혁안도 내달 3일 부의가 예고된 상황에서 국회 내 협상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당장 황 대표가 쓰러진 다음 날 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대표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발언' 왜곡을 이유로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하며, 신속하고 엄중한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패스트트랙을 주도한 여야 4당은 여차하면 한국당을 패싱하고 패스트트랙 안건을 처리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결론적으로 황 대표가 건강을 해치면서 이어간 단식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세 조건 중 두 가지는 얻어내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내부 결속 강화와 리더십 재평가라는 과실을 얻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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