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최소한의 예의 지켜…확대해석 말아야"
[더팩트ㅣ통일부=박재우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 모친상에 조의를 표명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조의문을 보내왔다. 31일 청와대에 따르면 전날(30일) 오후 북측은 판문점을 통해 깊은 추모와 애도의 뜻을 나타내고 문 대통령에게 위로 메시지를 전했다.
일각에선 평양 무관중 축구경기와 북측의 금강산관광 시설 철수 요구 등 남북관계 경색 국면을 고려해 조의 표명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북측은 결국 조의문을 보내왔다. 과연 김 위원장의 이러한 메시지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북한 전문가들은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아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를 입증하듯 북한은 다음날 곧바로 동해 방향으로 미상 발사체를 발사했다.
앞서 지난 30일 오전 통일부는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에서 조문하거나 조전·조화를 보내겠다는 의사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모친상 소식에 대한 통지계획 여부에 대해선 "통일부가 따로 언급할 사항은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몇 시간 뒤 북한은 판문점을 통해 조의문을 보내왔다. 북측에서 누가 나왔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 측에선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이 전달받았다.
북한은 남측 주요인사들의 장례에 조문단을 파견해 왔다. 이때마다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마련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2001년 3월 간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별세했을 때 북한은 처음으로 조문단을 파견했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도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던 두 대통령의 서거에 예를 표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5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조전을 보냈고, 같은 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는 고위급조문단을 파견했다. 이번 정부 들어선 올 6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별세 때도 조의문과 조화를 판문점을 통해 전달한 바가 있다. 이 여사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인 2011년 북한을 찾아 상주인 김정은 위원장을 위로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모친상에도 조의문을 보낸 것은 두 사람의 개인적인 관계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2년 동안 김 위원장과 남측 판문점 회담, 북측 판문점 회담, 평양회담, 남북미 판문점 회동 등 네 차례나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의 대화창구가 다시 열리지는 않았다. 북한은 다음 날 동해상에 미상 발사체 2발을 발사하며, 여전히 남북 대화 의지가 없음을 우회적으로 알렸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에 조의에 대한 확대해석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유화 제스처라던지, 화해 제스처로 보이진 않는다"며 "최근 상황과 북한의 태도와 연계시킬 수는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김 위원장의 대남기조는 확고하게 갈 것"이라면서도 "지난 네 차례의 만남 때문에 예의를 지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를 만났던 사람을 '접견자'라고 칭하며,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예를 표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도 통화에서 마찬가지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라고 일축했다. 박 교수는 "조의문 전달에서 북한의 고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고 진보정부 대통령 서거 당시에 챙겼던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이번에는 최소한의 방법으로 '조의문'을 보냈다"며 "지난 4월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 이후 문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비판도 있었는데, 이 또한 고려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