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강시켜드리겠다" 남기고 떠났던 고인… 68년 만에 가족 품으로
[더팩트ㅣ이원석 기자] 6·25전쟁에 참전했던 고(故) 김홍조 하사(현 계급 일병)가 68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011년 5월6일 강원도 평창군 면온리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가 고 김홍조 하사로 최종 확인됐다고 20일 밝혔다. 지난 2000년 4월 유해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뜬 후 136번째 신원확인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고인은 국군 제7사단 8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1951년 2~3월께 유엔군 2차 반격작전 기간 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1951년 2월11일 당시 중공군이 양평과 원주 일대에 공격을 가하자 미8군 사령관은 적을 포위섬멸하기 위한 격멸작전을 계획했다. 국군 제3군단은 7사단을 31번 도로(영월-평창선) 동쪽의 산악지대로 진출시켜 미 10군단의 공격을 지원했다.
고인은 평창 면온리 일대에서 속사리-하진부리 부근 전투(1951년 2~3월)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의 유해는 강원도 평창군에서 발굴됐으며, 당시 미국 별문양 단추 1점과 고무줄 1점의 유품이 함께 발견됐다.
고인은 1923년 7월15일 경상남도 울주군 상북면에서 4남 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19세에 결혼해 슬하에 4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농사와 부두가에서 일을 병행하면서 생활하다가 27세의 나이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고인은 입대를 앞두고 어머니에게 "제대하고 꼭 호강시켜드리겠습니다"라고 마지막 말을 남기며 입대했지만, 정전 후 전사통지서로서 돌아오게 됐다. 고인의 딸 김외숙(69)씨는 "유해발굴 사업을 통해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드디어 이뤄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이 순간을 맞이하시면 좋을텐데, 지금에서야 아버지가 가족품으로 돌아오신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인의 남겨진 유품이 없어 슬퍼하던 부인 정종인씨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사진을 본뜬 초상화를 액자로 만들어 방에 걸어놓았고 매일같이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친 후 귀환 행사와 안장식을 통해 유해를 추후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한편 국방부는 이번 신원확인에 발전된 유전자 검사 기법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앞서 국방부는 135번째 6·25 전사사 고(故) 김영인 결사유격대원의 신원도 발전된 유전자 검사 기법을 통해 확인했다.
기존에는 유전자 검사 기법 중 핵 검사(STR·Short Tandem Repeat) 기술이 16개 좌위(염색체나 핵산분자에서 유전자가 위치하는 자리)를 통해 이뤄졌지만, 23개 좌위로 분석 가능하도록 발전해 신원 확인이 가능했다는 게 국방부 설명이다.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는 지난 6월부터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유전자 중 2013년 이전에 검사했던 6·25전사자의 유전자 7400여 건을 대상으로 유가족 유전자 4만3000여 건과 대조해 일치율을 재확인했다.
이 가운데 가족이라고 판명할 수 있는 유전자형 일치율 99.90% ~ 99.98% 범위의 유전자 257건을 확인했고, 다시 이 중에서 재검사가 가능한 유해 174건에 대해 유전자 시료 채취 등을 진행하고 있다. 고 김홍조 하사의 신원확인은 딸 외숙씨가 등록했던 DNA를 통해 최종 확인할 수 있었다.
유전사 검사를 담당하는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장 변수원 대령은 "현재까지는 23개 좌위를 확인할 수 있는 STR 좌위 검사법이 가장 발전된 검사법이지만 발전하는 기술을 적시에 적용해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조기에 확인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