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반전 기대…전문가들 "실현 가능성 작다" 관측
[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위해 총력을 쏟은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보 당국 내부에서 김 위원장의 방남 가능성을 밝히면서 실제 성사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 24일 한동안 잠잠했던 김 위원장의 남한 답방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서훈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의 진전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김 위원장이 11월 25~27일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으면서다.
김 위원장은 남한 답방을 약속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합의한 '평양공동선언문'에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로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 대통령은 평양에서 돌아온 직후 대국민 보고를 통해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남북회담의 정례화라는 의미와 함께 남북이 본격적으로 서로를 오가는 시대를 연다는 그런 의미를 갖다"며 "여유를 두기 위해 11월, 가까운 시일 내라고 표현했지만 가급적 올해 안에 방문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묵묵부답이었다. 청와대는 지난해 말까지 가능성을 열어뒀다. 지난해 12월 김 위원장이 김정일 사망 7주기인 17일 김일성 전 주석의 아내 김정숙과 김정일이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날인 24일 전에 답방할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끝내 남북 정상 간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답방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먼저 이뤄지고 나면 그 이후에 김 위원장의 답방은 좀 더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열렸으나,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결렬되면서 북미 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이 영향으로 지난해까지 훈풍이 불었던 남북관계도 냉랭해졌다. 이후 북한은 '통미봉남' 전략으로 선회, 미국과 직접 접촉하면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얘기는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김 위원장의 답방설은 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태국 영문일간지인 <방콕포스트>과 서면 인터뷰에서 "아세안 10개국 정상이 함께 모인 자리에 김 위원장이 함께한다면 한반도·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의미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히면서 재점화됐다.
김 위원장의 '부산행'을 위한 남북 간 물밑 접촉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인 홍익표 의원은 2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 위원장의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 가능성과 관련해 "국정원 차원에서 서훈 원장이 북측과 그런 문제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김 위원장의 부산 답방 가능성에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조만간 열릴 것으로 관측되는 북미 간 비핵화 실무협상이 잘 이뤄져야 하고 북미관계의 진전 여부에 달렸다는 전제가 깔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리비아 모델'(선 핵 폐기-후 보상)을 비판하고, '대북 슈퍼 매파'로 불렸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해임하는 등 기존 입장과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순항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만약 김 위원장이 부산을 방문한다면 이를 계기로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는 180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또 남북 대화와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발판을 마련할 가능성도 있다. 또 김 위원장의 남한 방문 자체가 역사적인 대형 이벤트라는 점에서 평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취시키는 한편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속도가 붙을 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부산 방문의 실현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시각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개최될 때까지) 김 위원장이 다른 현안이 있을 수도 있고, 국제행사이자 다자회의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선호할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면서 "상대적으로는 과거 어느 때보다 환경은 좋은 듯하지만, 절대적으로 보면 희망이 섞인 예측에 가깝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때 왔으면 좋겠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주관적 희망"이라며 "(북한이 필요로 하는 우리 정부의) 반대 급부가 없는 상태에서 김 위원장이 위험부담을 안고 방남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shincombi@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