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부론' 원조 경쟁도… "지나친 조국 공세 '역풍' 우려"
[더팩트ㅣ국회=이원석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의 퇴진을 촉구하며 '릴레이 삭발' 등 투쟁에 몰두하던 자유한국당이 지난 주말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대전환을 요구하는 내용의 정책집 '민부론(民富論)'을 꺼내 이목이 쏠린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2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직접 민부론에 대해 발표하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 황 대표는 얼마 전 삭발해 짧은 머리에, 이어마이크, 셔츠 팔을 걷어붙인 캐주얼한 차림으로 등장해 흡사 '스티브 잡스의 PT(프레젠테이션, presentation)를 연상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총 164페이지의 경제 정책 백서 형태로 발간된 민부론은 사실상 내년 총선 공약으로 여겨진다. 주로 문재인 정부가 중요시하는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과 이를 대체하는 내용들이 담겼다. 크게는 국가 주도, 평등 지향의 경제정책을 시장주도의 성장 중심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당은 2030년까지 개인소득 5만 달러, 가구 연간소득 1억원, 중산층 비율 70%를 만들 것이란 구체적 계획까지 내놨다. 한국당은 23일 "(민부론에 대한)문의가 너무 많다"며 국회에서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며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조 장관 관련 이슈로 한창 시끄러울 때 한국당이 이처럼 민부론을 꺼내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관측된다. 먼저 조국 정국으로 인해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을 빌어 '정책 실패'에 대한 인식을 함께 부각하려 한다는 해석이다. 황 대표는 민부론을 발표하며 재차 "대한민국이 중병에 걸렸다. 심각한 '천민 사회주의'가 대한민국을 중독시키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자유와 정의, 공정, 평등의 가치마저 철저하게 무너뜨리고 있다"고 강도 높게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깎아내렸다.
또, 조 장관을 향한 공세에만 몰두하면 자칫 '역풍'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라는 분석이다. 특히 릴레이 삭발에 대한 우려가 컸다. 지난 16일 황 대표의 삭발을 기점으로 한국당 전·현직 의원들 다수의 릴레이 삭발이 이어지며 투쟁의 분위기가 고조됐으나 당 안팎에선 '지나치다'는 비판과 우려가 계속해서 나왔다. 결국 지난 19일 이만희·김석기·최교일·송석준·장석춘 의원은 의원 등의 삭발 이후 더이상 삭발자는 없었고, 한국당은 민부론을 발표했다. 당 지도부의 전략적 판단이란 관측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한국당이 민부론을 꺼내든 의도에 대해 "조 장관에 대한 얘기만 계속하다가 보면 국민들에게 본인들을 대안 정치 세력으로 인지시키는 것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민부론이 뜨겁게 화두로 올랐다. 특히 범여권을 중심으로 민부론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민부론에는 민생이 어디에도 없다"며 "이명박·박근혜 정권시절에 실패한 경제에 대한 향수만 가득했다"고 꼬집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노동시장 유연화하자는 황 대표의 민부론은 재벌과 부자를 더 부유하게 만드는 1%의 민부론"이라며 "대다수 국민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99%의 민폐론"이라고 비판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대한민국은 민부론이 아니라 민균론(民均論)으로 가야 한다"며 "불균형 성장의 결과로 빚어진 불평등과 양극화의 폐해를 바로 잡기 위해 균형 있는 민균론으로 가야 한다"고 민부론을 평가절하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통화에서 "한국당이 조 장관에 대해서만 화력을 집중하다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이려고 하고, 정책 투쟁도 함께한다는 것이니 그 자체로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면서도 "2030년까지 목표를 정해놓는 등 너무 목표지향적일 수 있고,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해 '천민 사회주의', '사회주의' 등으로 규정하며 이념 논쟁, 색깔론을 끌어오는 건 또다시 (여야 간) 강 대 강 구조가 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 민부론의 이름을 두고 '원조'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당의 민부론에 대해 "이름을 도용하고, 내용은 가짜인 위작"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민부론은 2006년부터 본 의원이 줄곧 주창해 왔다"며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온 민주당의 정신이 담긴 이론"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국당은 "어이가 없다"고 반응했다. 김종석 한국당 의원은 같은 날 기자간담회에서 "이름이 비슷하다고 같다는 건 '원조감자탕집'과 '진짜 원조감자탕집' 갖고 따지는 것처럼 의미 없는 것"이라며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