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임영택 고전시사평론가] 한마디 말이나 구호로 사회의 전반적인 개혁이 가능하다면 이 세상의 많은 사회가 이미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혁은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잠재우고 다수의 국민과 함께 가는, 지난하며 일정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개혁은 무조건 오래 걸린다는 뜻은 아니며 대부분의 개혁은 개혁을 착수해서 수단과 목표를 보정하는 작업을 통해 효과를 보기까지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개혁에서 중요한 것은 개혁을 ‘착수’하는 것이다. 개혁을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면 마무리할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를 오로지 시민의 힘으로 축출한 뒤 우리 앞에는 적폐를 청산하고 민생을 개선하라는 준엄한 시대적 과제가 제기되어 있다. 현 정부가 몇 가지 개혁을 주도하고 있지만 시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여론조사업체 칸타코리아가 9월 9일부터 11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지지 정당이 없다"고 응답한 무당층이 38.5%로 나타났다.

이 업체의 조사에서 무당층이 5월에는 29.9%, 8월에는 34.8%였다. 4개월 만에 무당층이 8.6% 포인트 증가했다. 주로 현 정부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지지 대열에서 이탈하다가 최근의 법무장관 조국 임명 국면에서 실망감이 작용한 결과이다. 4개월이라는 단기간에도 드러나지만 현 정부 수립을 지지했던 중도층이 실망감에 사로잡혀 지속적으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일반적으로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혁명은 물리력으로 반대세력을 진압하여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의도한 바를 단시일 안에 관철시킬 수 있다. 하지만 개혁은 물리력으로만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때로는 반대세력을 제압하거나 회유하고 대다수 시민의 이해를 대변해야 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뒤따른다. 또한 개혁 주체의 높은 도덕성이 뒷받침되어야 개혁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 공적 조직이나 시민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려면 개혁 주체가 능력 못지않게 도덕성이 있어야 된다. 맹자는 "자신이 바르지 않으면서도 남을 바르게 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사회 개혁이 성공하려면 개혁주체의 능력과 도덕성에 더하여 불퇴전의 자세가 필요하다. 어느 사회이든 개혁에는 기득권 세력의 반발과 저항 그리고 사회 전반의 갈등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러한 난관을 극복할 끈기와 단호함이 없다면 개혁은 용두사미가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개혁의 명분이 뚜렷하고 개혁 주체의 능력과 도덕성이 뛰어나도 개혁을 온갖 저항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추진할 담대함이 있어야 개혁은 성공한다.

춘추전국시대의 분열을 종식하고 통일제국을 완성한 진나라는 변방국가에 불과했지만 진효공 때 상앙이 주도하는 변법개혁으로 강국의 면모를 확실히 다지게 된다. 상앙은 원로대신과 귀족의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분배하고 전쟁에서의 공적을 기준으로 벼슬을 주는 등 신상필벌을 강화하여 사회의 개혁을 추진하며 부국강병을 실현했다.

차기 후계자인 태자가 죄를 범하자 차마 태자를 벌주지는 못하므로 태자의 교육을 담당했던 사람들을 처형할 정도로 상앙은 단호하게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자신의 개혁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진효공이 죽자 그동안 압박을 받거나 피해를 당했던 기득권 세력의 반격으로 상앙은 처참하게 죽는다.

병법서를 말할 때 《손자병법》과 병기할 정도로 탁월한 《오자병법》의 저자 오기도 철저한 개혁가였다. 오기는 몇몇 나라에서 장수이자 개혁가로 활약하다가 마지막으로는 초나라에서 법령을 정비하고 불필요한 관직을 없애며 자리만 차지하던 기득권 세력의 봉록을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군대를 육성하여 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상앙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믿어주었던 군주가 죽자 반대세력에 의해 죽게 된다.

상앙과 오기를 각박하고 몰인정하여 목숨을 잃었다고 평가한 사마천은 틀렸다. 그들이 각박하거나 몰인정한 성격 탓으로 죽었다는 사마천의 생각은 단편적이며 개혁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이다. 고금을 통틀어 진정한 개혁가나 혁명가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반대세력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였다.

어떤 개혁가나 혁명가가 편한 삶을 싫어했을 까닭이 없으며 자연사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지만 상앙과 오기의 사례에서 보듯 기득권 세력의 반발과 저항으로 개혁가의 삶은 일반적으로 위태롭기 마련이다. 말이나 구호로 대충 시늉만 내지 않는 진정한 개혁이나 혁명은 목숨을 내놓고 해야 될 정도로 사회적 반발과 저항이 만만치 않다. 반발, 저항 및 갈등과 개혁의 폭과 깊이는 대개 정비례 관계이다. 사회 전반의 개혁을 목표로 추진하면 반발과 저항 또한 크기 마련이다.

의미 있는 사회적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각오가 있어야 하며 여기저기 눈치만 살피다 보면 개혁은 좌초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개혁가라면 공자의 ‘마을의 선량한 사람들은 좋아하고, 마을의 나쁜 사람들은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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