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상>] '재혼' 박수현 "13년 만에 가정이 생겼다"(영상)

박수현 전 국회의장 비서실장은 지난 9일 혼인신고를 하며 인생 2막을 새로 열었다. 혼인신고 소식 이튿날인 10일 <더팩트> 취재진과 아내와의 이야기하는 박 전 실장. /충남 부여=이원석 기자

朴 "지금부터 사랑하겠습니다! 긴 터널의 출발선에 선 기분"

[더팩트ㅣ충남 부여=이철영· 이원석 기자] "아주 건조한 내 삶에 비가 내려서, 이제 막 파란 새싹이 돋아오는 듯한 그런 느낌? 그런 느낌이 있어요."

약 1년 1개월 만에 만난 박수현(56) 전 국회의장 비서실장(전 청와대 대변인)은 김영미(49) 전 공주시의원과 인생 2막을 함께한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박 전 실장은 취재진이 지난 9일 그가 SNS를 통해 혼인신고 사실을 알린 직후 통화에서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고사했다. 그랬던 그는 작년 공주에서 취재진과 마주했던 인연을 기억한 뒤 단독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10일 오후 가을장마를 뚫고 서울에서 부여군까지 내려온 취재진을 반겼다.

사실 식사를 겸한 박 전 실장과의 인터뷰는 약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그동안 그에게 낙인찍혔던 '불륜'이라는 세간의 억측, 그리고 13년이라는 외롭고 쓸쓸했던 세월을 끝내서인지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이야기했다.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박 전 실장은 이날 삶의 동반자인 아내와 함께 정치적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문희상 국회의장을 찾아 결혼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인터뷰를 위해 국회 비서실 직원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부여로 발길을 돌렸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아쉬운 내색보다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인도해 주셨다"라며 웃었다.

그는 "의장님 만나자마자 아내와 함께 큰절했다. 문 의장님은 정치적 스승일 뿐 아니라 실제 아버지처럼 생각하는 분"이라고 했다. "제가 아내와 혼인 신고만 하고 결혼식은 안 했다. 그래서 의장님과 그렇게 셋이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제가 '의장님, 이게 제 결혼사진이고 의장님이 주례십니다'라고 말했다"라며 박 전 실장이 해맑게 웃었다. 그는 문 의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취재진에 보여주며 "의장님 귀여우시죠?"라며 즐거워했다.

박 전 실장은 아내 김영미 전 공주시의원과 문희상 국회의장을 찾아 결혼 소식을 알렸다. 문 의장은 박 전 실장 부부에게 무신불립이라는 덕담을 했다고 한다. /박수현 전 실장 제공

◆고난과 동병상련이 '인도한' 사랑…

박 전 실장과 만남은 약 1년 1개월 만이다. 지난해 만남이 '불륜'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충남도지사 후보에서 사퇴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면, 이번엔 '불륜'의 당사자와 혼인신고를 했다는 차이가 있다. 취재진은 그에게 "프러포즈는 하셨냐?"라고 물었다.

대답이 돌아왔다. "프러포즈? 글쎄, 제가 그거 할 나이입니까. 하하하." 기분 좋은 웃음소리였다.

결혼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는 풍요롭진 않지만, 그래도 인생답게 살고 싶다고 했다. 누군가는 내년 총선을 고려한 선택이라는 정치적 해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말에서는 정치적 고려보다는 '가족' '가정' 이라는 울타리가 우선이었음이 느껴졌다.

취재진과 만난 이날을 박 전 실장이 혼인신고를 한 지 이튿날이었다. 두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삶의 변화가 궁금했다. 그는 "전 여전히 공주에서 어머니와, 아내는 아이들과 살고 있다. 아내에게는 심각한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어, 현재는 함께 살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라며 "아내가 우리 집에 오가며 살고 있다. 제가 아픈 아이가 있는 아내 집에 들어가 사는 건 그를 더 어렵게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이렇게 살면 되는 거죠"라며 현재 상황을 담담히 말했다.

박 전 실장이 아내와의 인연 그리고 정치적 프레임이었던 불륜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

결혼한 그 날도 박 전 실장과 아내는 각자의 집으로 갔다. 그는 오랜 인연이었던 아내에게 전기가 오는 찌릿찌릿한 그런 감정은 아니라고 했다. 부부가 되기 전부터 이어진 인연을 보면 그런 감정을 뛰어넘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사실 박 전 실장은 아내를 위해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었다. 본인의 SNS에 아내 모르게 글을 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의 서프라이즈는 이뤄지지 못했다. 박 전 실장은 "아내에게 이 얘기를 안 하고 페이스북에 올릴 계획이었다"라며 "아니 그런데 지역 신문에서 기사가 나버렸다. 서프라이즈였는데…"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또, 박 전 실장은 SNS에 올릴 글을 일주일 전부터 준비했었다고 한다. 물론, 글이 잘 써지지 않아 무척 고민했다는 말도 했다. 그는 "제가 대변인을 해서 말도 좀하고, 글도 좀 쓴다고 하는데, 머리가 백지처럼 하얗게 됐다.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라면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만큼 저에게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박 전 실장은 김영미 전 공주시의원과의 결혼을 SNS를 통해 알렸다.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는 박 전 실장 부부. /박수현 전 실장 제공

◆내 '아픔'으로 아내의 '아픔'을 보았다

그는 아내를 이야기할 때 '동병상련' '고난' 등의 단어를 자주 언급했다. 혼인신고 직후 SNS에 올린 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병상련'과 '고난'이 인도한 '사랑'입니다. 처음부터 활짝 핀 꽃같은 사랑은 아니었지만, 태풍과 가뭄이 만든 벼 이삭처럼 천천히 영글어 온 사랑입니다. 한여름의 태양이 익혀낸 가을 같은 결실이고 축복이기를 소망하고 또 소망합니다. 고통스러웠던 서로의 삶에 서로의 삶을 보태 고통도 아름답게 사랑할 힘이 솟기를 기도합니다."

두 사람의 공통분모이면서 또 현실이 고스란히 담긴 담백하면서도 명징한 설명이다. 박 전 실장은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의 아빠였다. 하지만 너무나 이르게 아이는 하늘나라고 떠났다. 그의 아내 김 전 시의원 역시 발달장애 아이를 혼자의 힘으로 키우고 있다.

박 전 실장은 "제 아이는 세상을 떠났지만, 부모가 갖는 절망감과 아픔은 같다고 본다"라며 "그런 아픔으로 그의 아픔을 보았다. 같은 생각을 갖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동병상련과 고난이 인도한 사랑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가 서로 동병상련으로 바라볼 때 이해의 폭이, 통로가 굉장히 크다. 그런 큰 통로를 통해 많은 교감이 자연스럽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가 아내와 결혼을 결심하는 데 문 의장의 충고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문 의장은 그에게 "사랑하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위적으로 풀려고 하면 더 꼬인다. 이런 때는 뫼비우스 띠를 자르듯이 단칼에 잘라야 한다. 단칼에 잘라라. 결혼해라"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박 전 실장을 아들처럼 생각했던 문 의장이기에 더는 정치적으로 그에게 씌워지는 '불륜' 프레임을 잘라버리라고 한 것이다. 그는 "오늘(10일) 의장님을 뵀는데 '무신불립'(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을 말씀해 주셨다. 바로 '신뢰'다. 큰 가르침이다"라고 감사해했다.

박 전 실장 부부는 성당에 다닌다. 특히 아내는 기도를 10시간 가까이할 때도 있다고 했다. 그의 손에 끼어 있는 묵주.

특히 그는 아내에 대해서도 "성경에 '친구를 위해 목숨 바칠 수 있는 것보다 큰 사랑은 없다'고 써있다. 지금 사랑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사랑은 아니다. 그러나 내 목숨도 주어서 평범하게 지킬 수 있는 그런 사랑이다"라고 표현했다.

1년 전과 현재의 그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생각도 표정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혼자가 아닌 둘이 됐다는 점이 그를 변화시킨 것 같았다. 이번 추석이 그에겐 더 특별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 전 실장은 이번 추석만큼은 아내와 함께하기로 준비했다. 그가 9일에 혼인신고를 한 것도 이번 명절을 가족 또는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더욱이 그의 생일이 추석 전날(음력 8월 14일)이라는 점에서 특별할 수밖에 없다.

그는 "더 미룰 이유도 없었다. 이번 명절 때 결혼해야겠다는 생각했었고, 아내에게 의사를 물었고, 혼인신고를 하게 됐다"면서 "추석 전날이 제 생일인데, 혼자 맞는 생일이었다"며 "혼자되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외롭고 쓸쓸했다. 그렇다고 티를 낼 수도 없었다. 그런데 13년 만에 함께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라며 밝게 웃었다.

이어 "13년 동안 혼자 살아왔던 개인의 삶도 치유 받고 싶다. 이제 저도 한국 나이로 56세다. 육체적으로는 열정적 황금기였던 시기를 혼자 아픔으로 보냈다. 늦었지만, 이제 인생의 황금기를 살 수 있는 안정적 가정이라는 기반을 갖게 됐다. 그동안 아픔 치유되는 기반이 있다는 거에 굉장히 행복하고, 그렇게 더 열심히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소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가 약 2시간 30분 만에 마무리됐다. 식당 밖으로 나와 마지막 인사를 하며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사랑하겠습니다. 이제 긴 터널의 출발점에 선 기분입니다."

cuba20@tf.co.kr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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