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고달픈 탈북민들] "남한에서 아사라니"…사각지대 해법은 <하>

탈북민 모자가 아사로 숨진 채 발견돼 충격에 휩싸이고 있다. <더팩트>가 탈북민 정책의 개선점을 취재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22일 통일부 산하기관 방문의 일환으로 남북하나재단을 방문해 직원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모습. /통일부 제공

☞<상>편에서 계속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탈북민 한모(42) 씨와 아들 김모(6) 군이 아사(추정)로 숨진 채 발견돼 세간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발견 당시 냉장고에는 고춧가루뿐이었다. 한 씨의 통장 잔액은 지난 5월 3858원을 인출한 이후 '0원'인 상태였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한국의 충격적인 뒷면에 다수 언론에서 '송파 세 모녀', '증평 모녀' 사건 등을 언급하면서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기사들은 쏟아졌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이방인이자, 소수자인 탈북민에 관한 내용은 찾기 힘들었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이 올해 발표한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 40.3%가 가구소득 2000만 원 미만이다. 탈북민 수는 약 3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더팩트>가 탈북민 삶의 민낯과 개선점을 취재해 <상>, <하>편으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대통령과 정부가 탈북자 문제·북한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더팩트ㅣ박재우 기자] 우리나라는 1997년부터 '귀순북한동포법'이 폐지되고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법률에 따라 정부는 탈북민들에게 주택이나 주택자금, 취업, 정착금 등을 지원했다. 탈북민들의 보다 원활한 적응을 위해 2004년도에는 법 개정도 있었다. 이를 통해 탈북민 지원정책이 현금 지급의 '보호 중심'에서 '자립 자활 중심'으로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탈북민 지원정책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발생한 탈북민 모자 아사 사건이 그렇다. 이에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생활과 관련해 정치권 등에서 화두로 떠올랐다. <더팩트>는 전문가들을 통해 탈북민을 사각지대에서 구출하는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전문가들은 한 모씨(42)와 아들(6) 김 군의 사망에 있어 ▲탈북 자녀들 돌봄 문제 ▲행정 사각지대 ▲법제도 미비 등 3가지 문제를 지적했고, 그 해결책에 대해 제안했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이 올해 발표한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 40.3%가 가구소득 2000만 원 미만으로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구조에 노출돼 있었다. 또한, 경제활동 상태를 묻는 질문에서 38.9% 이상이 실업자거나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민중 70%가 여성이고, 이들 중 대다수는 중국에서 거주했던 경험이 대부분이다. 2018년 신의주와 단둥의 국경의 모습. /뉴시스

◆탈북 자녀들 '돌봄문제'

한 씨의 삶은 안타까웠다. 탈북한 뒤 중국에서 인신매매, 강제결혼까지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첫째 아들을 낳았고 아들을 한국에 데려오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중국인 전남편만 한국에 오게 됐다. 이후 둘째 아들을 낳고, 다시 중국으로 갔다. 이혼 뒤 한 씨는 둘째 아들만 데리고 한국에 귀국했지만, 결국 이같은 비극이 발생했다.

많은 탈북민이 한 씨와 같은 한 부모 여성이다. 강동완 부산대학교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국내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 3만 4000여 명 중 70%가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 중 대다수가 중국에서 거주했던 경험이 있다고도 했다. 이번 사건의 한 씨처럼 중국에서 자녀를 낳았거나, 아직 자녀를 중국에 두고 온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해 탈북민을 세분화해야 한다"며 "중국에서 왔는지, 또 자녀가 있는지를 세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녀가 있으면 경제활동을 하기 힘들다"며 "또, 중국에서 출생한 자녀를 마땅히 맡길 곳이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미취학 아동을 돌보는 지원기관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중국을 거쳐 입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국어가 가능한 기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노현정 탈북경제인연합회 회장도 통화에서 "탈북민 중 미혼모가 많다"며 "중국에서 원하지 않은 결혼을 해서 애를 데리고 한국에 혼자 온 경우가 많다. 미혼모인 셈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은 해야 하는데 기초생활 수급도 막혀 한 씨 같은 사건이 벌어진 것"이라며 "탈북민은 남한에 부모·형제가 없어 애들을 맡길 처지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남북하나재단에서 탈북민을 위한 24시간 탁아소(유치원·어린이집)를 만들어준다면 탈북민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중국에서 살다 온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중국어를 할 수 있다면 더 큰 도움이 되겠다"고 제안했다.

탈북민 전문가들은 탈북민을 위한 탁아소(유치원, 어린이집)가 만들어진다면 굉장히 도움이 될 거라고 설명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 /더팩트DB

◆탈북민 관리의 '행정 사각지대'

탈북민에 대한 관리는 통일부 중심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탈북민에 대한 '지원정책'(기초생활수급자, 아동수당 등)은 보건복지부와 연관돼 있으며, 탈북민의 거주지에서 실생활에 관여할 수 있는 부서는 사실상 행정안전부(동사무소, 주민센터)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정 사각지대'에 위치한 탈북민 복지정책에 대해 꼬집었다. 이번 한 씨의 사건에서 어느 부처도 선뜻 나서 돕지 않았다. 모두 떠넘기기만 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한 씨가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을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지만, 담당자는 중국에서의 '이혼 확인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의 조직개편이나 부처 간 업무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강 교수는 "통일부 내에 정착지원과가 있는데 통일부같이 복지를 모르는 직원들이 왜 정착업무를 맡느냐"며 "복지는 복지부의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예를 들면 하나센터(전국별로 위치한 탈북민 지역정착 지원센터, 24곳)의 사회복지사 채용은 보건복지부가 담당"이라고 설명했다.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 원장도 지난 22일 열린 '탈북민 모자 아사 정책토론회'에서 "남북하나재단(통일부 산하 탈북민 정착과 생활 안정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을 행안부로 옮겨달라"며 "정부 성향에 따라 통일부의 정책이 바뀔 때마다 탈북민이 그 피해를 본다"며 "구청이나 지자체에 찾아가게 되면, 통일부와 행안부가 함께 담당하기 때문에 서로 떠미는 그런 사각지대에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김형수 '징검다리' 대표도 "남북하나재단은 탈북민 지원에 손을 떼야 한다. 통일부는 국가 관련 사업만 하면 된다"며 "탈북민 문제는 통일부가 아닌 행안부가 담당해야 한다. 통일부는 정부에 따라 눈치만 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탈북민을 지원하기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은 탈북민 지원을 위해 입법만이 능사가 아니라 제도 운영을 원할하게 하는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 '한 씨 특별법' 가능할까?

김흥광 NK지식연대 대표는 '탈북민 모자 아사 정책토론회'에서 "'한 씨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북한이주민 지원법률이 있지만, 담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추가하든지 고치든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장 궁지에 몰린 탈북민을 사지로 몰지 않기 위해 긴급하게 예산을 투입해서 '긴급센터'를 만들어서 초동대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21일 긴급 현안점검 간담회를 개최한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은 '입법'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법이 문제가 아니라 기존에 있는 제도 운영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예를 들면 어느 지역의 하나센터 상담사는 3명밖에 없는 상황으로 실질적으로 탈북민과 접촉할 기회가 없다"며 "탈북민이 밀집하는 거주지역에 상담사가 동사무소로 출근할 수만 있었더라면 이런 일(탈북민 모자)이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운영체계를 시행령, 시행규칙 등을 통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 두 번 다시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지 정치적 공세를 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탈북민 모자 아사 긴급 정책 토론회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한편 범정부 차원의 탈북민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 간의 평화모드 때문에 탈북민 지원정책에 대해 소홀하다는 의견이다.

제1야당 대표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22일 긴급 토론회에 참석해 "이렇게 될 때까지 이 정부, 지자체 도대체 뭘 했는지 참 참담하다"며 "북한 눈치 보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탈북민을 이렇게 방치하면서 통일경제, 평화경제를 이야기하는 건 언어도단이고 사기"라며 "탈북 모자가 굶어서 돌아가신 건 김정은의 비위를 맞추느라 의도적으로 탈북민과 거리를 두는 문재인 정권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했다.

손광주 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핵심은 대통령과 정부가 탈북자 문제와 북한인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행정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민에 대한 관심을 대통령부터 가진다면 그 관심은 장관, 차관, 국장에까지 내려가 모든 공무원이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jaewoopark@tf.co.kr

[관련기사]

▶[TF기획-고달픈 탈북민들] 모자 '아사' 사건… 또 다른 '그늘' <상>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