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고달픈 탈북민들] 모자 '아사' 사건… 또 다른 '그늘' <상>

최근 탈북민 모자가 아사한 것으로 드러나 우리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우울한 뒷면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서울 광화문에 마련된 아사탈북모자 추모분향소 모습. /허광일 위원장 제공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탈북민 한모(42) 씨와 아들 김모(6) 군이 아사(추정)로 숨진 채 발견돼 세간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발견 당시 냉장고에는 고춧가루뿐이었다. 한 씨의 통장 잔액은 지난 5월 3858원을 인출한 이후 '0원'인 상태였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한국의 충격적인 뒷면에 다수 언론에서 '송파 세 모녀', '증평 모녀' 사건 등을 언급하면서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기사들은 쏟아졌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이방인이자, 소수자인 탈북민에 관한 내용은 찾기 힘들었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이 올해 발표한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 40.3%가 가구소득 2000만 원 미만이다. 탈북민 수는 약 3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더팩트>가 탈북민 삶의 민낯과 개선점을 취재해 <상>, <하>편으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이방인 취급 받는 한국인들…"이 땅이 싫어진다"

[더팩트ㅣ광화문=박재우 기자] 우리나라에 들어온 탈북민들이 처음으로 가는 곳은 국가정보원이다. 이곳에서 신문을 받고, 통일부 소속 사회적응시설인 '하나원'으로 이동해 12주 동안 심리안정, 우리사회 이해 증진, 진로지도 상담, 기초 직업훈련 등의 교육을 받는다. 수료 직후 초기정착지원으로 주거지 알선, 정착금 지원, 취업 지원 등이 제공된다. 사회에 나온 뒤 5년 정도는 관할 경찰서의 신변보호 담당관 등이 초기 정착을 돕기도 한다.

이러한 지원에도 탈북민 모두가 한국사회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단기간에 완벽한 '한국인'이 되기에는 남북이 단절된 기간이 너무 길어서다. 문화 차이와 의사소통 문제 외에 탈북민에 대한 차별도 이들의 한국 적응을 어렵게 한다. 탈북민 사회는 '탈북모자 아사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더팩트>가 탈북민들과 직접 만나 물었다.

◆'사각지대' 놓인 탈북민…한국 적응 어려워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민들의 목표는 한국사회에서 경제·사회적으로 잘 적응하는 것이다. 손광주 전 하나재단 이사장은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탈북민 모자 아사' 긴급 정책토론회에서 ▲취업과 경제자립 ▲자기 정체성 확립 ▲이웃과 공동체 형성을 탈북민들이 적응하는 조건으로 뽑으며, 숨진 한 씨에게는 이 세가지가 전부 없었다고 지적했다.

한 씨 외에도 탈북민 대부분이 경제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다. 남북하나재단이 올해 발표한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 40.3%가 가구소득 2000만 원 미만으로 탈북민들은 우리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구조에 노출돼 있다.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탈북민 모자가 아사해 우리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2017년 LA 북한인권 전시실에서는 북한동포들의 탈북 현장과 거리의 굶주린 아사자들, 인권유린에 관한 사진과 자료들을 전시했다. /뉴시스

지난달 30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한 씨는 2009년 12월 탈북민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수료하고 ,바로 서울주택도시공사로부터 아파트를 임차했다. 9개월 만에 기초생활 생계급여 수급자에서 벗어났고, 이후 운전면허증을 땄다. 제빵 및 요리학원에 다니면서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이후 한 씨는 중국 동포인 전 남편과 결혼해 경남 통영으로 내려갔다. 2013년에는 자녀 출산을 하고, 2017~2018년 약 1년 동안 중국에서 체류하기도 했다. 전 남편과 이혼하고 중국에서 돌아온 뒤 지난 2018년 서울 동부지역으로 재진입했다. 당시 아동수당으로 4차례 총 50만 원을 양육수당으로 사용한게 전부로 알려졌다.

한 씨는 이혼 뒤 김 군을 홀로 키웠다. 지난해 10월 임대아파트로 전입한 이후 월세를 수개월 동안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을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지만, 담당자는 중국에서의 '이혼 확인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씨가 발견된 지 20일이 넘었지만, 아직 사인 규명을 위한 경찰 조사가 끝나지 않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 18일 "탈북민 모자 장례 절차와 관련해 현재 사인 규명을 위한 경찰 조사가 완료되지 않아 구체적인 장례 절차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탈북민단체 및 지자체와 협의를 완료해 장례가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탈북 여성 김 모씨는 음식하는 방법이 습관이 돼 바꾸기 힘들었다고 취업교육의 한계를 설명했다. 2018년 서울 코리아요리아트아카데미에서 열린 북한이탈주민 기업가 양성 ENM 창업성공아카데미에서 탈북자들이 안동찜닭 요리 기법을 배우고 있는 모습. /뉴시스

◆"다른 문화, 다른 대우…이기적인 사회"

8년 전 53세 나이로 남한에 도착한 탈북여성 김모 씨는 광화문 분향소에서 한 씨를 애도했다. 김 씨는 자신의 상황을 한 씨의 상황과 빗대어 설명했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을 6개월 동안 받으면서 궁중요리학원을 다녔다. 그러면서 "남한 음식이 자극적이어서 고향 음식과 전혀 달랐다"며 "음식하는 방법이 습관이 돼 바꾸기가 힘들었다"고 하소연했다.

또한 "하나원에서 기초교육으로 컴퓨터, 간병인, 자동차 면허, 미싱 교육을 받았다"면서도 "효과적이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제봉공장에서 3년 동안 일을 했지만, 월급은 70만~80만 원 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3년 째에는 회사 사정으로 인해 해고까지 당했다.

김 씨는 "일을 하면서 건강이 안 좋아져서 (지금은) 일을 못하고 있다"며 "기초생활수급을 받기 위해 갑상선과 북한에서 다쳤던 손목에 대한 진단서를 떼어갔는데, 북한에서 다친 것은 해당이 안 된다고 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더 수월했을 것"이라며 제도적인 차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도와주는 손길이 없었느냐고 묻자 "없었다"며 "특히 나이 많은 탈북자들에게는 이런 절차들이 굉장히 복잡하다"고 강조했다.

한 씨의 추모분향소에서 눈물을 흘리던 평양 출신 40대 여성 강모 씨는 12년 전 남한에 도착했다. 그는 "정부를 비판하기 전에 한국사회를 돌아 봐야 한다"며 "우리가 언제 이웃을 돌보기는 했는가. 내 것만 챙기는 정말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송파 세 모녀 사건을 언급하면서 "이웃 간의 소통이 없어지면서 정(情)도 함께 사라졌다"며 "우리사회가 조금만 더 따뜻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언론보도의 한 부분을 언급하면서 "주민센터에서 중국에 가서 (이혼서류를) 떼어 오라고 했던데, 당장 먹을 쌀도 없는 사람이 중국에 어찌 날아갈 수 있겠느냐"며 "중국 땅에서 소식도 없는 사람을 찾아서 어떻게 서류를 만들어 오겠느냐"고 까다로운 행정 절차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탈북민 단체들은 이번 한모 씨의 아사 사건이 정부 관리 소홀과 우리사회의 무관심이 부른 비극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 탈북자 교육시설인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하나원에서 탈북민 현황에 대한 세미나가 열린 모습. /뉴시스

◆"정부 관리 소홀과 우리사회 무관심이 부른 비극"

광화문에 '아사탈북모자 추모분향소'를 마련한 탈북모자 사망원인 규명과 탈북민 생활안정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허광일 위원장(북한민주화위원회)은 지난 20일 분향소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만나 "정부의 관리 소홀로 인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전적으로 정부 책임과 무관심 때문"이라며 "정부의 불성실한 태도와 우리사회의 무관심으로 빚어진 비극"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결과가 나오면 정식적인 장례를 치룰 것이라고 밝혔다. 취재진에게 "알려지지 않은 무연고자 탈북자가 사망한 경우도 많다"며 "무연고자 탈북자들의 비극적인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사회의 또 다른 사회 악을 만드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허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이 정부 들어서 탈북자단체 지원이 줄어들고 있다"며 "책임 전가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통일부 외 현 정부 관계자, 관할구청, 경찰서에서 한사람도 조문을 오지 않았다고 섭섭함을 표했다.

취재진은 한 씨의 탈북을 도왔다는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의 사무실도 찾았다. 탈북민 출신 김 회장은 "탈북민은 그림자하고, 나밖에 없는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며 "3만4000여 명이 남한에 있다고 하는데, 지역별·고향별로 다양하기 때문에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탈북민들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게 급선무"라며 "이를 추진해야 하는 통일부 산하 재단들이 오히려 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김 회장은 "우리사회가 탈북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최근 베트남 이주 여성 아내를 무차별 폭행한 사건을 예를 들며 "이주여성들에 대한 차별만큼 탈북민들에 대한 차별도 심하다"며 "탈북민에 대한 사회적 인식자체가 부정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남한 사람과 탈북민 간에 문화적·사회적 차이가 존재한다"며 "솔직히 (탈북민) 절반 이상이 이 땅이 싫어진다"고 강조했다. 한국으로 유입하는 탈북민들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 도착했던 탈북민들도 미국·캐나다·덴마크 등 다른 나라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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