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환의 '靑·春'일기] 뒤로 빠진 文대통령, 주연만큼 빛난 '명품 조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문재인 대통령(왼쪽부터)이 지난달 30일 오후 판문점 자유의집 앞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역사적 순간 배경 자처한 文…북미 대화 돌파구 공(功)

[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조연 배우에 눈길이 가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 탄탄한 연기력과 풍부한 감정이 뛰어나 주연 배우를 압도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른바 '신스틸러'다.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은 아이돌이 덜컥 주연 배우를 꿰차 이른바 '발연기' 논란을 일으키더라도 '조연이 작품을 살렸다'는 대중의 반응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조연 배우가 꽤 있다. 보는 이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탄탄한 연기 실력을 갖춘 그들이라고 주연을 꿰차고 싶은 욕심이 없을까. 그럼에도 작품과 주인공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며 감초 같은 조연은 제 역할을 할 뿐이다. 그래서 '명품 조연'이라는 말은 제 역할을 120% 소화하는 조연 배우를 위한 최고의 찬사이면서도 그 속에 위로의 뜻도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정전 66년 만에 역사적 장면을 연출한 '남·북·미 판문점 회동'이 성사된 전후로 문 대통령의 '조연' 역할이 눈에 띈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 회동이 열린 지난달 30일 한미 공동기자회견에서 "저도 오늘 판문점에 초대 받았다"며 북·미가 '주인공'임을 명확히 했다. 스스로 조연임을 강조한 것이다.

또, 북미가 대화에 집중하게 하고 4차 남북정상회담은 추후 도모할 것이라고 했다. 그간 공개 석상에서 여러 차례 김 위원장을 향해 만남을 제의했으나 결국, 회담으로 연결되지 않았던 터라 체면을 구겼던 문 대통령이다. 남북관계와 문 대통령의 중재자, 촉진자 역할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기회를 뒤로하고 후일을 기약한 점은 인상 깊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갔다 다시 남측으로 넘어오고 있다. /뉴시스

이날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마주한 결정적인 순간에도 문 대통령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본인이 앞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물러나 있었다. 이 때문에 오롯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에게만 시선이 집중됐다. 만남의 형태가 어떻게 될지 관심사였는데, 문 대통령은 움직임을 최소화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북미 정상이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으로 다가오자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포옹하며 악수했다. 서서 잠시 대화를 나눈 뒤 회담장인 자유의 집 안으로 세 정상이 들어갔지만, 문 대통령은 회담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성조기와 인공기만 있을 뿐 태극기는 아예 없었다. 그래서 북미 회동으로 진행됐고 남북미 3자 회담은 불발됐다. 문 대통령은 모든 상황에서 철저히 조연 역할에 충실한 셈이다.

사람이 주목받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특히나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역사적인 순간이라면 더 그러하지 않을까. 게다가 세계로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데다 치적을 쌓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욕심이 생길 만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의 만남에 초점을 맞추고 중재자 역할에 주력했다. 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난 점도 놀랍고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문 대통령의 품격이 돋보였다는 평가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입니다."

한미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했던 문 대통령의 말에 조연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자신은 북미 정상만큼의 눈에 보이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목표했던 가장 큰 성과를 거두지 않았을까.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교착 상태인 북미 대화의 판을 깔아주면서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게 한 중재자 역할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번 판문점 회담에서만큼은 문 대통령은 '명품 조연'이라 불릴 만하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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