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와 타협 없는 '치킨 게임'에 '일하는 국회' 요원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정부 여당과 제1야당의 '치킨게임'이 계속되고 있다. 물밑 논의는 이뤄지고 있지만, 드러난 모습은 그렇다. 국정운영의 책임자인 여당은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한 유의미한 양보를 보이지 않고, 야당은 대안 없는 발목잡기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4월 5일 국회 본회의를 끝으로 본회의장 문은 굳게 닫혔다. 급기야 같은 달 말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강행한 선거·사법제도 개혁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계기로 한국당은 장외로 떠나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 사이 시급한 추경안과 민생법안 등은 국회에 계속 쌓이고 있다. 결국 여야 4당은 지난 17일 '한국당 패싱'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고, 20일부터 6월 임시국회가 문을 열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 문이 열리게 됐지만, 한국당이 동참하지 않으면 문만 열고 성과는 없는 '빈손 국회'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장 추경안을 심사할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한국당 몫이고, 민생법안들도 한국당이 반대하면 처리가 어렵다. 이 가운데 문희상 국회의장이 18일 6월 국회 의사일정 조율을 위해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와 회동했지만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법에 따르면 '본회의 개의일시 및 심의대상 안건' 등 회기 전체 의사일정은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원내대표와 협의해 결정해야 한다. 원내 1·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이 팽팽한 힘겨루기를 끝내지 않으면 올해 내내 그랬듯 이번 달도, 앞으로도 일하는 국회는 요원하다.
국회 파행 책임론을 놓고도 여야 정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외형상 파행의 원인제공자인 한국당 이야기부터 하면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격언을 잊은 듯하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뒤 1년도 채 안 돼 실패의 원인을 잊은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해 6월 16~17일 전국 성인남녀 10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들은 야당 패배의 가장 큰 원인으로 '대안 없는 국정 발목잡기 몰두'(34.6%)를 꼽았다.
이어 보수정당의 '반공이념 등 구시대적 가치관 고수'(21.6%), '보수정당 난립 등 분열'(21.4%), '올드보이 귀한 등 인물경쟁력 부족'(11.9%) 순으로 원인을 꼽았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상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21대 총선이 1년도 채 안 남은 시기, 한국당이 1년 전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는지 의문이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한국당과의 국회 정상화 협상에 대해 "접점을 찾아가다가도 한국당이 자꾸 새로운 조건을 내걸거나, 기존 합의를 뒤집는 발언을 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실제 한국당은 17일 의원총회에서도 여당이 절대 받을 수 없다고 수 차례 언급한 패스트트랙 원천무효와 사과, 문재인 정부 경제 청문회 관철로 중지를 모았다.
대안 없는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가 선거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가까운 선거에서 이미 답이 나왔다. 정부여당의 행보를 견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게 야당의 기본 역할이라지만 국회의 기본 의무도 이행하지 않으면서 무조건적 반대와 요구를 하는 것은 국민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
물론 여당도 책임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국정운영의 최종 책임은 여당에 있고, 국회 정상화 협상 과정에서 여당이 마치 야당처럼 행동한 부분도 없지 않다. 이견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국회 정상 가동을 위한 통 큰 양보는 보기 어려웠고, '민생'이 한국당의 국회 복귀 명분이 될 것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서로를 인정하고, 양보와 타협을 하지 않으면 남은 20대 국회 임기 동안 국회가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는 것은 자명하다. 지금이라도 민주당과 한국당은 한 발씩 양보하고, 일하는 국회가 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국민들은 지금과 같이 국회를 운영하라고 국회의원들을 뽑아준 게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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