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한 거리, 뚝 끊긴 부동산 거래…팽 당한 지역주민 '부글부글'
[더팩트ㅣ고양=허주열 기자] "3차 3기 신도시 발표 후 콜 자체가 없어요. 그 전에도 (거래가)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문의는 있었는데, 모든 게 끊어진 상태에요. 매입을 진행하던 손님은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계약을 미뤘어요. 서울의 동종업계 지인은 '일산에는 지금 들어가면 안 된다는 말이 많다'고 했어요. 왜 이 시기에 지난해 도면이 유출된 '창릉'을 신도시로 지정했는지 의문이에요."(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D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
20일 낮 <더팩트>취재진이 방문한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자택 인근은 지나가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한적했다. 3차 3기 신도시 발표 직후 거세게 분 역풍의 진원지인 이곳의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가뜩이나 부동산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3기 신도시 추가 발표 후 거래가 더 위축됐다"고 입을 모았다.
김 장관 지역구(고양시정) 주민들의 분노는 상당했다. 분노한 김 장관 지역구 주민들 사이에선 근거가 빈약한 음모론도 확산되고 있다. 일례로 인터넷 카페 등을 중심으로 김 장관이 3기 신도시 발표 전 덕이동 자택을 팔고 나갔다는 소문이다.
이에 취재진은 관보에 기재된 김 장관 자택 주소지 하이파크시티일산아이파크1단지를 찾아 실거주 여부를 살펴봤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과 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부동산 관계자는 "김 장관 거주 여부는 알려줄 수 없는 개인정보에 해당해 거주하는지, 이사를 갔는지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이후 드문드문 아파트 인근을 지나는 주민과 다른 부동산업체를 통해 김 장관이 거주한다는 아파트 동(102동)을 확인한 뒤 해당 동 전체 부동산 등기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김 장관이 아직 덕이동 자택을 소유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다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지역주민들 중에선 김 장관의 실거주 여부를 확인해 줄 사람은 찾지 못했다. 이와 관련 국토교통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김 장관 가족들이 일산 자택에 거주하고 있고, 김 장관은 세종에 일이 있을 때 내려와 일주일에 1~3일 관사에 머물고 있다"며 "일산에서 이사를 갔다거나, 집을 팔았다는 것은 다 헛소문"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지난 7일 3기 신도시 추가 지역으로 고양 창릉(3만8000호)·부천 대장(2만호)을 발표했다. 직후 설립된 네이버 카페 '일산신도시연합회'를 중심으로 항의 집회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지난 18일 일산 주엽동 집회에선 1만 여 명(주최 측 추산)의 일산·운정·검단신도시 주민들이 참석해 3기 신도시 지정을 규탄했다.
이 자리에서 '3기 신도시 철회', '김현미 OUT' 등의 구호를 외친 이들은 "이번에 3기 신도시로 지정된 창릉지구는 3기 신도시 지정 1차 발표에서 LH직원의 사전 도면유출로 투기꾼이 들끓었던 곳"이라며 "당시 김 장관은 사전 도면유출로 투기꾼이 들끓던 원흥지역은 3기 신도시에서 배제한다는 발언을 했는데, 사전 유출된 지역과 3분의2가량이 일치하는 지역을 이름만 바꿔 창릉지구로 해 지정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작금의 일산신도시는 악성 미분양은 쌓이고, 열악한 교통으로 주민들의 삶의 질은 나날이 떨어져가고 있어 밤잠을 못 이루고,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며 "시민들의 호소와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3기 신도시 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면 '일산서구 국회의원 김현미'라는 타이틀은 떼고 행보해 주길 부탁드린다"고 울분을 토했다.
주민들은 사전 도면 유출 문제에도 3기 신도시로 지정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국토교통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도면이 유출된 건 사실이지만, 이후 토지거래 내역을 계속 모니터링 한 결과 투기로 볼 정도의 이상한 거래는 없어서 지정했다"며 "도면 유출 후 외지인들이 해당 지역 토지를 엄청 많이 샀으면 지정이 어려웠을 테지만, 그런 게 없어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덕이동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도면이 유출된 지역을 재지정 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며 "서울 집값을 잡자고, 1·2기 신도시보다 가까운 지역에 3기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1·2기 신도시를 버리겠다는 뜻 아니냐. 시간이 없어 지난 집회에 못 나갔는데, 다음 집회에는 참석해 3기 신도시 철회와 김 장관 퇴진에 한 몫 거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산신도시연합회 관계자는 "일산신도시는 1기 신도시 중 가장 낙후된 교통으로 30년째 주민들이 교통지옥을 경험하고 있는데, 지역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개선해준다는 공약을 남발하고 지키지 않았다"며 "지역구 공약도 이행하지 못한 김 장관이 3기 신도시와 경기도 철도 교통망과 같은 굵직한 국책 사업은 어찌 이행하려는지 믿을 수 없다"고 질타했다.
김 장관 지역구 관계자의 답변을 듣기 위해 이날 오후 일산서구 주엽동에 위치한 지역구 사무실을 찾았다. 하지만 사무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불도 꺼져 있었다. '국회의원 김현미, 꿈꾸는 사람들이 세상을 만듭니다'라고 표기된 문 가운데 붙은 스티커에는 분노한 지역주민이 남긴 "뽑지 말자", "정신차려라" 등 반감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김 장관은 당초 지난 3월 입각 동기인 김부겸·김영춘·도종환 의원과 함께 국회로 돌아오려 했다. 하지만 후임자로 내정된 최정호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3주택 보유' 등으로 낙마하며, 계획에 없던 3기 신도시 추가 발표를 책임지게 됐고, 지역구 문제와 맞물리며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김 장관은 오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입장을 밝힐 전망이다.
김 장관은 지난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어제(18일) 일산에서 3기 신도시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집회가 있었다. 저도 뭔가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현안을 맡고 있는 장관직에 있다 보니 말씀드리기가 무척 조심스럽다"며 "만약 상황이 허락된다면 23일로 예정된 국토부 기자간담회 때 몇 가지 말씀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구체적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기자간담회 때 3기 신도시 지정에 대한 일산주민들의 반발을 수습하기 위한 입장을 정리해 밝힐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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