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남북회담 시기, 장소 정해진 것 없어"…김정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 마라"
[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하노이 회담 이후 교착 상태에 접어든 비핵화 협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모양새다. 하노이 담판이 결렬된 이후 북미가 팽팽한 신경전을 벌임에 따라 꺼져가던 북미 대화의 불씨를 가까스로 되살렸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대화의 모멘텀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추가 회담 가능성을 열어뒀다. 앞서 미국은 한미회담 전에도 북한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혀 왔다는 점에서 원론적인 수준의 입장 재확인 정도로 여겨진다.
그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4차 남북정상회담 추진 계획을 밝혔다. 3차 북미정상회담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정부는 조만간 4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현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조만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계획임을 설명하고 차기 북미정상회담이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또 다른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 접촉을 통해 북한의 입장을 조속히 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전했다.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 앉아 비핵화 해법 등을 논의한 내용을 토대로 김 위원장에게 미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가능한 빨리 3차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남북회담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 북미 대화에 나서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게다가 문 대통령으로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의 동력을 공급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북미가 핵 협상 테이블에 앉혀야 하는 중재·촉진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 외교가에서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이후 그다음 수순으로 북한과 접촉을 꼽아왔다.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해선 아직 '백지' 상태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번에 귀국하면 본격적으로 북한과 접촉해서 조기에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도록 추진하겠다"며 남북정상회담의 장소와 시기 등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고 했다.
북한과 접촉 방법 가운데 대북특사 파견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먼저 대북특사를 보내 북측과 접촉한 뒤 '원포인트'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해 5월 2차 남북정상회담이 그 사례로 꼽힌다. 1차 북미정상회담이 취소 위기를 맞자 문 대통령은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과 비공개로 만났고, 결국 6.12 싱가포르 북미회담을 성사시켰다.
다만 앞서 정의용 실장은 지난 4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북 특사 파견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가 9일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이후 청와대는 12일(한국시간) 정부가 이낙연 총리를 대북특사로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와 관련해서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북한과 순차적인 접촉을 상정했을 때 대북특사 파견→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남북관계가 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지난해와 같지 않고, 최근 '자력갱생'을 수차례 강조하며 버티기 모드에 들어간 김 위원장이 쉽사리 움직일 가능성이 크지 않아서다. 때문에 북한이 우리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개최 제의에 호응할지가 관건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12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2일 차 회의에서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북미)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전했다. 문 대통령은 4차 남북정상회담 의사를 밝혔지만, 김 위원장이 3차 북미회담에 대해서만 밝힌 것이다.
김 위원장은 "남조선 당국과 손잡고 북남관계를 지속적이며 공고한 화해협력 관계로 전환시키고 평화롭고 공동번영하는 새로운 민족사를 써나가려는 것은 나의 확고부동한 결심"이라고 했다. 다만,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 등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남측이) 외세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모든 것을 북남관계개선에 복종시켜야 한다"면서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적 행동으로 그 진심을 보여주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이런 입장을 밝히면서 문 대통령이 4차 남북정상회담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강명도 경기대 북한학과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남북관계가 상당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어 당분간 북한은 (우리 측 어떠한 만남 제의에)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가 등의 성과를 냈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한미 정상은 한미 공조를 강화하고 제재를 유지하는 데 인식을 같이했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구상 중인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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