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선 종종 거친 언사를 주고받으며,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말에서 문제가 생기고, 또 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여의도 정가입니다. 말이 많아지면 실수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불리한 이슈가 발생했을 때 불을 끄려고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는 과정에서 오히려 화를 키우기도 합니다. 지난해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신조어 중 'TMI'(Too Much Information)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너무 과한 정보라는 뜻이지만, 현실에선 누군가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그만 좀 해'라는 의미에서 TMI를 외치기도 하지요. <더팩트> 정치팀이 한 주간의 여의도 정가 TMI를 모아봤습니다. <편집자 주>
무책임한 공직 후보자들의 '변명'…산불·죽음 마저 정쟁 활용 정치권
[더팩트ㅣ이원석 기자] 이번 주도 "TMI"를 외칠 일이 풍성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10일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렸는데요, 35억 원대 주식 과다 보유 및 내부 정보 주식거래 의혹에 휩싸인 이 후보자를 향해 야당의 강한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심지어 여당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는데요, 주식 관련 질의에 이 후보자가 내놓은 대답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지난 주말 강원도에서 역대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정치권 관심도 산불에 많이 가 있었는데, 그 와중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발언 한마디가 큰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대체 어떤 말이었길래 그토록 시끄러웠던 걸까요?
◆이미선 35억 원대 주식 "남편이 '다' 했다"고요?
지난 1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선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이미 한차례 장관 후보자들 인사청문회가 지나간 뒤 좀 잠잠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 후보자의 주식 보유 현황이 국민 눈높이와는 다소 맞지 않는 모습이 강해 청문회가 상당히 시끄러웠습니다.
이 후보자의 부부 재산의 83%, 약 35억4000여만 원이 주식으로 확인됐고, 그 중 이 후보자 명의의 주식만 약 6억6000여만 원 상당으로 드러났습니다. 더군다나 이 후보자가 법관에 재직할 당시 이 후보자 명의의 주식 거래가 1200회가 넘고, 배우자는 4090회가 넘었습니다.
이에 야당 의원들은 이 후보자를 매섭게 추궁했는데요, 이 후보자는 "배우자가 다 했다"고 답변을 내놨습니다. 이러한 답변에 많은 국민이 분노했습니다. 적은 액수의 주식도 아니고 35억이 넘고, 본인 명의로도 6억이 넘는 상당의 주식이었는데요, 상식적으로 그 큰 액수의 주식을 본인이 알지 못 했다는 것도 황당하고, 자신이 직접 하진 않았어도 상의를 하지 않았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단지 배우자의 책임으로 돌리기엔 너무 무책임한 답변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주식을 많이 보유했다고해서 불법은 아니죠. 하지만 부부의 주식 패턴을 보면 정말 '족집게'처럼 이들이 사면 올라가고 팔면 떨어지는, 이런 기록들이 눈에 띄었고, 특정 종목에 주식을 집중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야당에선 내부 정보를 입수해 투자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고요, 특히 이 후보자는 강력 부인했으나 자신이 보유한 주식 관련 재판까지 맡았던 점도 있어 이 또한 상당히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지난 12일 자신의 주식을 모두 매각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사퇴할 의사는 없어 보입니다. 야당의 반대로 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됐지만 청와대에선 재송부를 요청할 예정이고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사실 국민이 허탈한 것은 이 후보자 한 명 때문만은 아닙니다. 2기 내각 장관 후보자들 대부분이 '부동산 투기'의혹을 받았고, 이미 낙마한 후보자도 있었죠. 게다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역시 흑석동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이면서 사퇴했습니다. 김 전 대변인 역시 물러나면서 '아내가 했고 난 몰랐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내 논란이 됐었는데요, 이처럼 국민들 눈높이와는 다른 공직자들의 빼어난 '재테크' 기술과 무책임한 '무마용' 답변에 국민들은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산불'마저 정쟁으로 활용하는 정치인들… 공감 능력 '제로'
지난 4일 오후부터 강원도 고성과 속초에서 발생한 거대한 산불에 피해가 컸습니다. 현재 피해 현황이 조사 중에 있지만 이미 드러난 상황만 봐도 상당합니다. 농작물, 가축, 주택까지 불에 탔고, 사망자도 있었습니다. 이어 지난 6일 영천에서도 산불이 있었습니다. 이재민들은 갑작스런 재난에 망연자실한 상황인데요, 황당한 것은 이런 상황마저 정쟁으로 활용하는 정치권의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입니다.
자유한국당 소속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지난 7일 SNS에 글을 올려 "문재인 '촛불정부'인 줄 알았더니, '산불정부'네요"라며 산불과 문재인 정부를 연결지었습니다. 김 전 지사는 또 "강원도만이 아니라 제 고향 경북 영천에도 제 평생 처음으로 산불이 보도되네요"라며 "촛불을 좋아하더니 온 나라에 산불, 온 국민은 홧병"이라고 적었습니다. 김 전 지사의 이러한 발언은 피해 입은 국민 가슴에 두 번 못을 박는 부적절한 행위였다는 지적이 빗발칩니다.
아울러 이번 산불로 인해 소방공무원 국가직화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됐는데요, 지난 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에 대한 주제가 다뤄졌습니다. 그러나 생산적인 대화가 아닌 서로 책임 미루기에 급급한 대화가 오갔습니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막았다고 주장했고, 한국당은 당시 준비가 미흡했는데 왜 뒤집어 씌우냐는 입장인데요, 국민들이 보기엔 과거 일을 두고 싸우기보다는 앞을 바라보고 준비하면 되지 '왜 저러나' 싶은 것입니다.
게다가 발언 중 이진복 한국당 의원은 "국가직이 아니면 불을 못 끄냐"고 말해 많은 반발을 샀기도 했습니다. 목숨 바쳐 생명을 구하고 재난을 막는 소방관들 가슴엔 역시 대못을 박는 발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인터넷상의 어떤 댓글에서 "국회의원을 명예직으로 바꾸면 일을 못 하냐"는 조롱 섞인 내용도 눈에 띄었습니다.
◆"文정권이 조양호 회장 죽였다"… 억측과 고인 모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8일 운명했습니다. 70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조 회장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놀랐습니다. 근데 역시 정치권은 이를 정쟁으로 활용해 논란이 됐습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SNS를 통해 "연금 사회주의를 추구하던 문재인 정권의 첫 피해자가 영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홍 전 대표는 "문재인 정권은 국민들의 노후 생활 보장하라고 맡긴 국민연금을 악용해 기업 빼앗는 데 사용해 연금 사회주의를 추구해 왔다"고 했습니다. 이는 홍 전 대표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방안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저격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지난 3일 조 회장은 국민연금이 참여한 주총에서 경영권을 박탈당한 바 있습니다.
홍 전 대표뿐 아니라 한국당 김무성 의원,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도 조 회장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 등을 들면서 문재인 정부가 조 회장을 죽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을 정쟁에 활용하는 이들의 행위는 억측임은 물론 오히려 고인을 모독하게 된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조 회장은 지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단순히 문재인 정권에서의 수사, 재판, 스튜어드십 코드를 조 회장 사망의 이유로 논리적이지 못하며, 고인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