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네 탓 공방만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강원도 대형 산불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왜 사건 발생 5시간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는가.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은 자유한국당 반대로 안 되고 있는 것인가. 9일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6시 30분까지 이어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선 이 세 사안을 둘러싼 여야의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동일한 사안임에도 이를 바라보는 여야의 시각은 전혀 달랐다.
◆강원도 산불이 탈원전 탓?
이날 행안위 회의는 강원도 지역 대형 산불 피해 현황 및 복구 지원 관련 현안 보고를 위해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류희인 행정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 정문호 소방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먼저, 강원도 산불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 한국당 의원들은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이 부른 '인재'라고 주장했다. 이채익 한국당 의원은 "국과수 조사 결과가 나와야겠지만, 현재로선 이번 산불은 전신주 개폐기에서 발생한 인재로 보인다"며 "한국전력공사(한전)의 노후 장비, 안전관리 미비는 결국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한전에 대규모 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어 "잘 나가던 한전이 문재인 정부 들어 경영난에 허덕이며(2018년 순손실 1조1508억) 비상경영전략을 실시하고, 최근 2년 동안 노후시설 교체 예산을 수천 억 삭감했다"며 "유지보수가 제대로 안 돼 이런 총체적 인재가 발생됐다"고 강조했다.
윤재옥 한국당 의원도 "한전의 적자에 따른 재정 요인이 배전설비 유지보수 예산을 줄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며 "재정 적자는 에너지 정책 전환, 탈원전 과정에서 한전 수익률이 많이 떨어졌고, 대학(한전공대)을 만들려 한 게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탈원전과 한전 적자는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김병관 민주당 의원은 "탈원전 때문에 한전 적자가 발생했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며 "현 정부에서 폐쇄한 원전은 '월성 1호기'뿐이다. 이 원전 용량은 600~700㎿로 석탄발전소 하나보다 용량이 작고 흑자인 해보다 적자가 많았던 원전"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김 의원은 "원전은 가동률이 54.4%가 안 되면 적자인데, 한전 발표를 보면 폐쇄시점 월성 1호기 가동률은 40.6%"라며 "월성 1호기 폐쇄로 수익에는 오히려 도움이 됐을 것이다. 또 전체 원전가동률이 지난해 전년 대비 5.3% 떨어진 65.8%를 기록했는데, 이는 안전점검을 꼼꼼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전 적자는 원재료값 상승과 안전점검을 위한 원전가동률 하락에 따른 전력구입비 증가 때문"이라며 "한전 적자 원인을 탈원전이라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정부도 이 부분을 정확히 분석해서 국민께 정확한 수치를 알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라진 '대통령 5시간' & 'KBS 직무유기' 공방
문 대통령이 강원도 산불 발생 이후 5시간이 지나서 공식 석상에 등장한 것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조원진 대한애국당 의원은 "4일 오후 11시 11분부터 BH(청와대) 위기관리센터 회의가 열리는데, 왜 처음부터 VIP(문 대통령)가 여기에 참석을 안 했냐"며 "오후 9시 44분 대응 3단계 발생 후 다음날 0시 20분 참석했는데, 술 취해 계셨냐"고 따졌다.
이날 문 대통령은 '신문의 날' 기념축하연에 참석해 언론사주들과 샴페인잔을 들고 건배를 하기는 했지만, 이날 오후 6시 15분 께 행사장에 들어서 25분가량 있다 현장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즉, '문 대통령이 술에 취했냐'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하지만 다른 의원들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을 연상케하는 질문을 던졌다. 김영우 한국당 의원은 "문 대통령은 5일 0시 20분 산불 발생 5시간 만에 모습을 보였다"며 "지난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재난 발생 시) 대통령 모습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강창일 민주당 의원은 "5시간 동안 문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세월호 7시간 악몽이 되살아 나는 것 같다"며 "근본적 차이는 하나는 대응에 실패했고, 하나는 성공했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홍익표 민주당 의원도 "세월호 7시간과 강원 산불 5시간은 비교 자체가 부적절 하다"며 "세월호 사건 당시는 일과 시간이었고, 정부 대응이 아무것도 없어 30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희생됐다. 반면 강원 산불은 일과 시간 이후였음에도, 효율적 진화로 언론과 현지 주민이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세월호 침몰 당시 대처와 이 정부 대처가 뭐가 다르냐, 결과적으로 사고가 확대되지 않으면 괜찮은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3단계 대응 발령 3시간 뒤 (문 대통령이) 위기관리센터에서 회의를 주재했는데 매우 늦었다. 더 빨리 진화가 가능했을 텐데 청와대의 자화자찬 대응에 더욱 분개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재난방송 주관사 KBS의 직무유기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안상수 한국당 의원은 "(강원도 산불 당일) YTN은 오후 10시부터 재난특별방송을 시작했는데, 재난방송 주관사 KBS는 오후 10시 55분 께부터 10분 간 재난방송을 하다 뜬금없이 '오늘밤 김제동'을 방송했다. 이 사람들 정신이 나갔나 싶었다"고 맹비난했다.
유민봉 한국당 의원도 KBS의 10분 재난방송을 지적하며 "KBS가 재난방송 주관사로서 역할에 큰 문제가 있었다"며 "강원도 고성 산간 지역의 경우 노약자가 많아 휴대폰이나 문자를 제때 확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지역은 특히 KBS 재난방송이 중요한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고, 장애인을 위한 수화 통역도 안 됐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진영 장관은 "(KBS) 재난방송에서 좀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과 관련해선 민주당과 한국당이 '네 탓' 공방을 벌였다. 먼저 권미혁 민주당 의원이 포문을 열었다. 권 의원은 "소방직 국가직화 법안들은 지난해 말 행안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의결 직전 한국당 원내지도부가 통과시키지 말아달라고 요청해 처리가 안 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채익 한국당 의원은 "한국당이 소방직 국가직화에 반대하는 아니다"라며 "정부·여당이 사전 조율이 안 돼서 그런 것 아니냐, 지금까지 행안부·소방청·기재부가 업무와 역할 등에 대한 의견조율이 잘 안 됐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더팩트> 취재진이 지난해 11월 28일 행안위 법안소위 회의록을 살펴본 결과 실제 석연찮은 이유로 소위가 통과되지 않았다. 당시 법안소위 소속 여야 의원 모두 소방직의 국가직 전환에 대한 큰 틀에서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심지어 행안부·기재부·소방청·지자체도 합의가 다 됐다. 그러나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의결이 안 됐다고 기록에 남아있다.
이에 대해 이재정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말 법안소위에서 모든 논의가 무르익었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무력화 됐다"며 "관련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 명이 넘어 청와대가 답해야 하는데, 이 상황은 국회가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또 "소위를 미루는 방식으로 회피하는 또 다른 꼼수는 보고 싶지 않다"며 "모든 것이 국민께 공개되는 방식으로 했으면 한다. 이 자리에서 간사들이 법안심사 일정을 잡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여러 차례 이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관철됐다. 행안위 민주당 간사 홍익표 의원은 전체회의 종료 직후 기자에게 "오는 23~24일 법안심사소위를 두 차례 열기로 했다"며 "일하는 국회법이 7월부터 시행(7월17일)되지만 처리 안건이 많은 행안위는 이달부터 매달 두 차례씩 열기로 여야 간사가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회의 말미 이채익 의원은 이 사안에 대한 협의가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발언을 내놨다. 이 의원은 "소방공무원 국가직화에 한국당이 반대하는 게 절대 아니다"면서도 "알맹이 있는 국가직화가 되도록 촉구하고, 정부·여당이 적극적으로 재정 확충, 인사권 배분, 업무영역 명확히 해서 이른 시일 내 야당과 이 부분에 대해서 협상했으면 좋겠다. 공청회 등으로 이해관계자와도 충분히 논의해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상대 당 압박하는 방식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sense83@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