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장관 앞에 놓인 산적한 과제와 장애물
[더팩트ㅣ통일부=박재우 기자] 김연철 신임 통일부 장관이 8일 취임사에서 어깨는 무겁고 길은 멀다는 뜻의 '임중도원(任重道遠)'을 언급했다. 제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불확실해진 한반도 정세 속에서 김 장관은 '평화'를 일궈낼 수 있을까.
인사청문회에서는 김 장관은 과거 자신의 SNS 글 등으로 야당의 비난을 받았다. 김 장관은 이론과 현장에서 모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북한연구팀 수석연구원,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등을 지내왔고, 최근에는 통일연구원 원장을 지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의 반대에도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김 장관에게 임명장 수여를 강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냉전의 추억', '남북대화 70년사', '협상의 전략' 등 많은 저서를 내기도 했는데, 그중 '협상의 전략'은 문 대통령도 직접 읽은 것으로 알려졌다.
후보자로 내정된 직후인 지난달 8일 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께서 강조하신 신(新) 한반도 체제 실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면서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협상을 재개하고 더 나아가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어 김 장관이 남북관계 개선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첫 과제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정상화'
김 장관의 취임으로 기대가 높아지고 있지만, 현재 남북관계 상황은 녹록지 않다. 북한은 최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인원 철수, 대외선전매체 등을 통해 남한 정부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북측은 돌연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인원을 전원 철수시켰다. 철수 4일 만에 복귀했지만, 북측의 불만은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한 불만 표출이자, (경협에서의)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아울러, 매주 금요일에 열리던 공동연락사무소 소장 회의는 지난 2월 22일 이후 한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연락사무소 복귀 이후인 지난 2일 "남한이 남북관계에 신중론을 운운하고 있다"며 "정책조언자들이 남조선이 앞서가면 한미동맹과 북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으니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떠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우리 측 인사가 개성공단에 상주하면서 북측과 상시로 협의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김 장관에게 주어진 첫 과제로는 남북연락사무소 정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은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당국간 협의와 민간교류 지원 업무 등을 원활하게 진행함으로써 남북간 실질적인 상시협의 채널로 기능해왔다"며 "연락사무소를 통한 남북간 소통을 더욱 활성화하고 기능을 확대·발전시키기 위한 방안도 모색하겠다"고 연락사무소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9.19 평양공동선언 내용 이행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정상화'가 김 장관에게 주어진 첫 과제라면, 9월 평양 공동선언(2018) 이행을 두 번째 과제로 꼽을 수 있다.
판문점 선언(2018.4.27)에서 합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남북간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 행위 중지,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 군사적 긴장 완화는 성과를 냈지만, 평양선언(2018.9.19)의 주요 내용들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남북 간 합의한 평양선언의 주요 내용으로는 ▲이산가족 상시 면회소 설치 및 화상 상봉 추진 ▲군사 공동위원회 구성 및 한국전쟁 유해 공동 발굴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 등이 있다.
이산가족 화상 상봉은 현재 협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 지난달 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남북이산가족 화상상봉 관련 장비에 대해 제재 면제를 승인해 여건이 마련됐지만, 북측의 반응이 없는 상황이다. 또한, 남북은 이달 1일부터 화살머리고지에서 시범적으로 공동유해발굴을 시작하기로 합의했지만, 북한이 응하지 않으면서 결국, 남측 단독으로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지역인 화살머리에서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에 착수했다.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사업 재개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미국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만큼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은 당분간 재개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도 사실상 답보상태이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북미협상에서 성과를 낸 뒤 이뤄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비핵화의 창의적인 해법이 '키(Key)'?
앞서 언급한 9.19 평양공동선언의 이행은 사실상 북미협상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측이 일방적으로 남측과의 협력을 중단해 왔고, 남측이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사업을 적극적으로 재개하기엔 미국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북미협상의 대화 모멘텀을 살리기 위해 '창의적인 해법'을 강조했다. 지난 청문회에서 김 장관은 비핵화의 창의적인 해법으로 '스냅백(Snapback)'과 '협력적 위협감소프로그램(CTR)' 등을 제시했다.
'스냅백'이란 약속한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제재를 되돌리는 것을 의미하고, CTR은 핵이나 미사일 시설을 해체하고 그 지역에 산업을 대체함으로써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다. 이 '창의적 해법'이 북미 양측에 받아들여진다면, 평화프로세스가 재가동될 가능성이 있지만 쉽지만은 않다.
전문가들의 '창의적인 해법'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스냅백, CTR은 전통적으로 미국 정부가 추진해온 방식"이라며 "(김 장관이) 북한하고만 잘 맞고 미국은 환영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발언 같다"고 평가했다.
남성욱 고려대학교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창의적이라기보단 북핵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하나의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며 "협력을 통해 북한의 도발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가능성인데, 너무 한쪽 측면만 바라보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전망했다.
반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CTR은 역지사지의 자세를 토대로 한 것"이라며 "이로 인한 비핵화된 사례도 있지만, 비핵화 협상에는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신을 신뢰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CTR과 톱다운 방식이 조화되면 의미 있는 결과가 되지 않겠는가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