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상황 파악하기 어려웠다" vs 홍영표 "이석 양해 안 해줘 안타깝다"
[더팩트ㅣ국회=이원석 기자] 강원도 속초, 고성 지역에서 큰 산불이 발생해 민가를 덮치고 사상자까지 발생한 가운데 국회 운영위원회에선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인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을 떠나지 못하게 막아 논란이 되고 있다. 오로지 정쟁에만 골몰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회 운영위 회의가 진행 중이던 4일 오후 10시께 민주당 원내대표인 홍영표 운영위원장은 강원도 지역 산불 소식에 정 실장의 이석(離席)을 허용해달라고 여야 의원들에게 요청했으나 한국당 측에서 반대했다고 알렸다. 홍 위원장은 "지금 고성 산불이 굉장히 심각한 거 같다"며 "안보실장은 위기 대응의 총책임자이다. 그래서 (이석) 양해를 구했더니 그것도 안 된다고 해서 안타깝다"고 했다. 홍 위원장은 "대형 산불이 나서 민간인 대피까지 하고 있는데 대응해야 할 책임자를 우리가 이석 시킬 수 없다고 해서 잡아놓는 것이 옳은지는 저는 잘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산불은 오후 7시 30분께 발생했고, 이미 약 2시간 넘게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이에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운영위원장 발언에 심한 유감을 표시한다. 거기에 여당 원내대표가 아닌 운영위원장으로 앉아 있는 것"이라며 "운영위원장으로서 공정하게 진행해 달라"고 반발했다. 나 원내대표는 "저희도 정 실장을 빨리 보내드리고 싶다"며 "그러면 순서를 조정하셨으면 된다. 여당 의원들 (질의) 하지 말고 우리 야당 의원들을 (먼저) 하게 했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치 우리가 뭔가 방해하는 것인 양 말하면 안 된다"며 "어쩌다 청와대 사람들을 보기 쉬운가. (올해) 처음 하는 업무보고니 그렇게 얘기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질의는 계속 이어졌다. 한국당 송석준 의원은 '질의 시간을 얼마나 드리냐'는 홍 위원장의 말에 "다다익선(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이다"고 말하며 웃기도 했다. 송 의원은 약 10분 넘게 질의를 했고, 홍 원내대표는 "너무하지 않냐"고 발끈했다. 홍 원내대표는 "모니터를 한 번 켜시고, 속보를 좀 보시라. 지금 화재의 3단계까지 발령됐다. 전국적으로 번질 수도 있는 화재라고 한다"며 "그래도 계속 질의들을 하시겠나. 제가 볼 때는 이런 위기상황에는, 그 책임자가 이석하게 해야 한다. 기본적인 그런 문제의식은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결국 여야는 정 실장의 이석을 오후 10시 40분께가 돼서야 허락했다. 정 실장은 곧바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로 떠났다. 화재대응 3단계가 발령된 오후 9시 44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청와대에선 정 실장의 빈자리로 인해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을 먼저 위기관리센터로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당을 향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강한 질타가 나왔다. 박주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제 운영위원회에서 눈살 찌푸리게 한 장면이 있는데 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안보실장, 비서실장이 국회에 발 묶여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한국당이 국민 안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것 아닌가 씁쓸하다" 고 지적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한국당의 태도에 대해 "적절치 않았다"며 "어떻게 됐든 모든 사고의 초동 대처가 중요하기 때문에 빨리 보냈어야 됐다. 이래서 우리 국회가 욕을 먹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국당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의원총회에서 "일부 언론에서 이상하게 쓰고 있다"고 반발했다. 나 원내대표는 "7시 45분 정도 정회 전엔 집중하느라 산불을 알지 못했다. (정 실장이) 전혀 저희에게 산불로 인한 이석 요구를 하지 않았고, 한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정회하면 이석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며 "이후 다시 회의가 개의한 뒤 홍 위원장이 불이 났는데 보내지 않겠냐고 했고 심각성을 정확하게 모르는 상황에서 더 하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는 "저희로서는 유감인 게 그 당시 심각성을 보고하고 이석이 필요하다면 양해를 구했어야 하는데 그런 말씀이 없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나 산불이 난 속초·고성을 지역구로 둔 이양수 한국당 의원이 운영위에 있다가 자리를 뜬 것으로 알려져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정의당 김동균 부대변인은 "나 원내대표는 사태의 심각성을 자신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고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납득하기 어렵다"며 "속초·고성·양양을 지역구로 둔 이양수 의원이 8시에 산불 소식을 접하자마자 운영위를 떠났다고 하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김 부대변인은 "결국 어제 자유한국당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다 정쟁을 택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꾸짖었다.
한편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은 SNS에 "오늘만 인제, 포항, 아산, 파주, 네곳에서 산불. 이틀 전에는 해운대에 큰 산불. 왜 이리 불이 많이 나나"라는 글을 올렸다가 삭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재난 상황에서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 역시 국민 처지와 상황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한국당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평가까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