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공허한 자료 미제출 압박 되풀이…박영선, 2252건 중 10여 건 제외 제출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사실이 아닙니다.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단단하고,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거침없이 소신을 밝혔고, 호통에도 굴하지 않았다. '자료제출 미비'를 주무기로 꺼내든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공격은 결정적 한 방이 없었다. 과거 40여 차례의 인사청문회에 위원으로 참여하며, 공격수로 명성을 날렸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입장이 바뀐 자리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박 후보자는 27일 국회에서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 모든 질의를 메모하며, 답변시간이 주어지면 조목조목 반박했다. 야당 의원들이 언성을 높이면 때로는 함께 목소리를 높이며,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장관으로서의 도덕적 문제를 지적하려던 야당 의원들은 박 후보자의 입이 열릴 때마다 당황하기 일쑤였다.
이날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8시 40분까지 이어진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알맹이 없는 공격과 탄탄한 방어전이 내내 이어졌다. 세 차례 정회 끝에 오후 7시 30분 회의를 속개하기로 했지만, 저녁을 먹으러 떠났던 한국당 의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현장에선 박 후보자가 답변 과정에서 "(성폭행·성접대 의혹을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임명 전 황교안 한국당 대표(당시 법무부 장관)가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발언을 한 게 논란이 되며, 한국당 의원들이 뒤늦게 보이콧을 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한국당, 처음부터 끝까지 '자료, 태도' 타령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한국당 간사 이종배 의원은 인사청문회 시작부터 오후 질의가 끝날 때까지 박 후보자의 자료 미제출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이 의원은 "자료 없이 인사청문회를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역대 인사청문회 중에서 이렇게 자료 없이 깜깜이로 진행한 적이 없다"며 "과거 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40번이나 하면서 '자료 없이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는데, 본인이 그러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박 후보자는 총 2252건의 자료 요청을 받아 인사청문회 전 145건을 제외한 2107건(약 93.6%)을 제출했다. 그럼에도 야당 의원들의 자료 미제출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이날 인사청문회 중 오래돼 자료를 찾을 수 없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사안이어서 제출이 어려운 10여건을 제외한 다른 자료를 추가로 제출했다.
야당 의원들은 막무가내식 질의도 쏟아냈다. 곽대훈 한국당 의원은 17년 전 박 후보자 자택 리모델링 기간과 비용처리를 놓고 질문 공세를 펼쳤다. 곽 의원은 "2002년 7월 박 후보자가 MBC에 근무하던 시절 자택을 수리한 적 있느냐", "공사기간은 얼마인가", "공사비용은 누가 냈냐" 등 세 질문을 반복해서 던졌다.
이에 박 후보자는 "1977년에 지어진 오래된 집이라 수리를 했고,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두 달 정도 리모델링 공사를 한 것 같다"며 "공사비용은 저와 배우자가 함께 낸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곽 의원은 "당시 공시비용 계좌이체 내역이나 영수증을 반드시 내 달라"고 했고, 박 후보자는 "힘들 것 같다, 오래 전 일이라 어떤 경로로 공사대금을 지급됐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필요하다면 당시 공사업체 사장에게 연락해서 이 자리에 오라고 이야기 하겠다"고 맞섰다.
성일종 한국당 의원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박 후보자가 입었던 롱패딩에 대한 질의만 반복해서 던졌다. 성 의원은 "당시 660벌 밖에 안 만들어진 평창 롱패딩을 누구에게 받았는지 말해야 한다"고 거듭 물었다. 이에 박 후보자는 "동료의원에게 전달 받은 것으로, 두 번 입고 돌려줬는데 그 분에게 실명을 밝혀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본인이 나중에 밝히겠다고 해 지금 답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성 의원은 박 후보자가 설명하려고 하면 답을 막으며 "누구에게 받았는지 말해라", "국민들은 박 후보자가 누구에게 롱패딩을 받았는지 궁금해 한다"고 압박했다. 언성까지 높이며 반복된 추궁이 이어졌지만, 박 후보자는 "(롱패딩을 전달한) 의원이 나중에 밝히겠다고 하는데, 의원 프라이버시 존중을 위해 제가 지금 말할 수 없다"고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중기부 장관으로서의 정책·자질·능력 등에 대한 질의는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박 후보자 아들 이중국적·병역기피, 증여세 탈루 의혹, 국회 회기 중 태국 골프여행, 배우자의 일본 아파트 재산신고 및 세금 문제 등 도덕성 흠결에 대한 의혹을 집중 질의했다.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박 후보자는 "MBC 미국 특파원 시절 미국 시민권자인 변호사 남편을 만나 아이가 미국 국적을 갖게 됐는데, 병역의 의무는 이행 할 것이다. 태국 골프여행은 금요일 저녁에 출발해 다음주 월요일 아침에 돌아왔고, 증여세는 통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통장별 잔액이) 바뀐 것을 (야당 의원이) 잘못 지적한 것이다. 일본 아파트는 일본에서 세금을 냈는데, 차액을 국내에도 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돼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며 납부했다"고 조목조목 해명했다.
◆박영선, 날카로운 역공에 한국당 당황
박 후보자는 질의응답 과정에서 한국당 의원들에게 역공을 가하기도 했다. 윤한홍 한국당 의원은 서면질의로 박 후보자 유방암 수술을 받은 일시 및 수술병원에 대해 묻고, 본 질의에서 "박 후보자가 특혜 진료를 받았다는 제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박 후보자는 "의료법상 의료진도 공개할 수 없는 개인정보고, 유방암을 거론하는 것은 성차별적 요소도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박 후보자는 "민주당 여성의원들이 성명을 내겠다는 것을 제가 참아 달라고 했다"며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윤한홍 의원에게) 전립선암 수술을 했냐고 말하면 어떻겠냐"고 반문했다.
이에 한국당 의원들은 '동물'이라는 표현을 꼬투리 잡아 "동료 의원의 질의가 동물 수준이라는 것이냐", "묻는 말에만 답해라", "동료의원에게 전립선 운운하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사과해야 한다" 등의 발언으로 쏟아냈다.
민주당 의원들이 박 후보자를 두둔하며, 반박에 나서자 여야 의원들은 서로 삿대질까지 하며 고성을 주고받았다.
결국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이 나서 "각자 하고픈 말이 있을 것이고, 후보자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특히 박 후보자가 (유방암 관련) 질문을 한 의원에 대해 가정법적으로 '전립선 수술 운운하면서 물어보면 답하겠느냐'고 반문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이어 "향후 장관에 임명된 이후에도 그런 태도를 계속 보이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오늘은 맞으시라, 안 맞으려 애쓰지 말고, 때리는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하고 왜 때리느냐고 묻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에 박 후보자는 "맞는 말씀이지만, 모욕적인 부분까지"라고 재차 본인이 할 말을 하려다 참고 "그러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박 후보자는 성접대·성폭행 의혹 등을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질의에 답하는 과정에서 황교안 한국당 대표를 거론하기도 했다. 이용주 의원은 "김 전 차관 사건 당시 법사위원장이었는데, 그때 수사가 잘 됐는지, 권력이 비호한 건 아닌지 등을 밝혔어야 하는데 법사위원장으로서 일을 제대로 못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박 후보자는 "당시 '김학의 별장 성폭력·성접대' 동영상 CD를 입수해 본 적 있다. 너무 부적절한 내용이라 저는 앞에만 봤고, 박지원 의원(민주평화당)이 다 봤을 것"이라며 "국회 법사위원장실에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불러 CD의 존재를 설명하며, 임명을 만류한 적 있다"고 답했다. 이는 김 전 차관 임명 전 황교안 대표가 문제를 인식하고도 법무부 차관 임명을 방관했다는 뜻으로 해석돼 논란이 일었다.
박 후보자는 저녁 식사를 위한 정회 시간에 기자들에게 "김 전 차관 임명 전 제가 '김학의 동영상' CD를 갖고 있었고, 문제가 있다고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얘기한 것을 본인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저녁 먹으러 떠났던 한국당 의원들…보이콧 기자회견 후 퇴근
한국당 의원들의 요구로 인사청문회는 오후 7시 30분 재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오후 8시 30분까지 한국당 의원들은 회의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정당에선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이언주 의원이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한국당 소속 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들은 오후 7시 50분께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 청문회에서 자료 제출을 안 한다고 닦달하며 공격수로 날고 뛰던 박 후보자가 오늘은 안하무인 수비수로 일관하고 있다"며 "불성실하고 위선적 행태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인사청문회를 계속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이 시간 이후 한국당 위원들은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인사청문회장에선 오후 8시 20분께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한국당 의원들 집에 갔다고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민주당 의원들은 "어이가 없다", "7시 30분에 속개하기로 하기로 했으면 해야지", "위원장 빨리 오라고 하라", "처음부터 이렇게 끝낼 생각이었을 것이다"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이후 한국당 소속 홍일표 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이 오후 8시 31분 혼자 나타나 회의 속개를 선언했다. 홍 위원장은 "한국당에서 인사청문회 참여를 거부하고 퇴장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인사청문회를 진행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 민주당 박정·홍의락·위성곤 의원 등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일부 의원들이 참여를 거부한다고 해서 적법하게 개의된 회의를 진행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 본다"며 "개의가 된 이상 후보자의 장관직 수행을 검증하기 위한 청문회는 질의가 더 이상 없을 때까지 어어져야 한다"고 회의 진행을 요청했다.
하지만 홍 위원장은 이날 오후 8시 40분 "위원장 판단으로 정상적 진행이 어렵다 생각한다"며 의사봉을 두드린 뒤 회의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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