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택의 고전시평] 무산된 반민특위 활동이 분열의 근원이다

나경원 한국당 대표는 반민특위 활동이 국민 분열을 초래했다고 주장함으로써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반민특위는 오히려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 함으로써 분열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더팩트DB

나경원 대표의 자의적 역사 해석은 문제

[더팩트 | 임영택 고전시사평론가] 같은 일을 경험하거나 배웠으면서도 사람들은 달리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마다 관점과 인식의 수준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소소한 일상에 대한 기억이 다른 것은 사회나 국가에 큰 파장을 불러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른 기억은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고 여파가 클 수밖에 없다.

최근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가보훈처가) 본인들 마음에 안 드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선 친일이란 올가미를 씌우는 것 아닌가"라며 "해방 후 반민특위로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을 모두 기억하실 것"이라고 했다. 독립유공자 중에 친일파를 가려내고 사회주의 계열 독립 유공자라도 서훈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보훈처를 비판하면서 나온 발언이었다.

일단 용어 문제부터 논하겠다. 일반적으로 ‘친일’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강점기에 일본에 빌붙어 겨레와 나라를 배신하고 팔아먹은 인사들의 행동은 친일이 아니고 ‘민족반역, 반민족 및 부일(附日) 협력’ 행위로 바꿔 써야 한다. 친일이니 친미니 친중국이니 하는 것은 정치적 입장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일제 강점기 반역자들의 행동은 친일이라는 용어로 넘겨버릴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경원 대표가 언급한 반민특위의 정식 명칭은 ‘민족반역자, 반민족행위자 및 부일협력자 처벌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다. 명칭부터가 해방 이후에 일제 강점기 잔재를 청산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투영되어 있고 객관적 사실에도 부합한다. 용어나 개념은 객관적 사실과 본질에 부합해야 의미가 있듯 ‘친일’ 이라는 용어 사용은 지양해야 한다.

나경원 대표가 국민을 분열시켰다고 언급한 반민특위는 1948년 8월 헌법 제101조에 의거하여 국회에 반민족행위처벌법기초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이어 9월 특별위원회가 통과시킨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에 근거하여 만들어졌다. 남한에서 최초로 단죄와 청산의 역사를 쓸 절호의 기회는 해방 정국에서 분출한 반민족행위자 처벌 요구를 수용한 반민특위 활동 시기였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의 특위 활동 탄압과 노골적인 반민족행위자 옹호로 단죄와 청산의 기회는 무산되었다. 야심차게 출발한 특위 활동은 용두사미가 되어 버렸다. 실형선고를 받은 반민족행위자는 10명에 불과했으며 이들조차도 시간이 지나 모두 석방되었다.

남한과 달리 프랑스는 역사적 단죄와 청산의 전형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 치하에 있다 해방된 프랑스는 독일 협력자들 12만 명 이상이 재판받았으며 약 3만 8000명이 수감되고 약 1500명이 정규재판소에서 사형선고 받은 뒤 처형되었으며 8000~9000명이 정식재판 없이 처형되었다. 또한 약 2만 명의 여성부역자가 삭발 당했으며 수천, 수만 명의 공무원과 군인들이 독일 강점기의 협력 행위로 징계를 받았다. 나치 독일은 1940년부터 1944년까지 단 4년간 프랑스를 점령했고, 일제는 우리나라를 35년간 식민통치했다. 4년과 35년이라는 기간의 차이는 단죄와 청산 대상자 수에도 직접 영향을 준다. 쉽게 말해서 더 오랜 기간 강점 상태에 있었다면 일반적으로 단죄와 청산 대상자는 늘어나지만 현실은 그 정반대로 나타났다.

남한과 프랑스의 역사는 역사 범법자 더 나아가 반인륜 범죄자 처벌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 준다. 나경원 대표의 역사 인식에 따르면 프랑스는 국론이 분열되어 극도로 혼란한 사회가 되었거나 이미 망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는 그런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분열과 적폐의 근원은 무산된 반민특위 활동에 있다. 개인 사이의 갈등이든 국가 내부의 문제든 무턱대고 덮는 것이 최선은 아니며 갈등이나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서 해결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일시적으로 봉합하는 것은 언제든지 재발할 우려가 있지만 확실하게 매듭을 지으면 같은 문제나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은 훨씬 줄어든다.

나경원 대표의 반민특위 발언이 여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극우 세력을 결집하려는 정치적 행동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역사의 영역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인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의 기억이나 배움의 경험에 잘못 자리 잡은 반민특위가 제자리를 찾기를 바란다. 알베르 까뮈는 "과거 범죄를 단죄하지 않는 것은 미래 범죄에 용기를 주는 어리석은 짓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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