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계기-레이더 갈등, 대법원의 강제노역 배상 판결,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등으로 경색된 한일 관계는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으로 반일감정은 더 고조될 가능성도 있다. 위안부, 강제노역 문제에서 일본이 반성 없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한반도 정세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변화하는 한반도 정세에서 과연 한일 관계와 동북아 질서는 향후 어떻게 재편될까? <더팩트>는 3·1절 100주년을 맞아 세 명의 한일 관계 전문가들로부터 현재 상황을 평가하고 전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동북아 평화·번영 일본도 거부할 명분 없을 것"
[더팩트ㅣ서대문=박재우 기자] "출구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양자 간의 불신과 갈등이 해소되고 있지 않다."
대표적인 한일 관계 전문가로 꼽히는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현재의 한일 관계와 관련해 이같이 진단했다. 민주화 이후 위안부, 강제노역 피해자들의 문제도 수면으로 떠 올랐다고 했다. 독재정권 당시에 경제적인 이유로 1965년 한일상호조약을 통해 이들이 억압받았다고 설명하면서 일본 기업은 대법원의 강제노역 판결을 받아들여야 하고 한국 정부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전문위원, 현대일본연구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한일교류위원장·일본분과위원장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는 정치학 박사, 2012년에는 일본 릿쿄대학에서 강의, 일본국제교류기금 펠로십 도호쿠대학에서 초빙연구원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일본학과 교수와 (사)한일미래포럼 운영위원장으로 재직 중으로 한일 관계 전문가로 통한다.
그는 양 교수는 한일 간의 경제 수준의 격차가 줄어든 것이 한일 관계가 재정립이 되는 구조적인 이유로 뽑았다. 그는 "불평등했던 한일 간의 경제 관계가 이제 수평적으로 재정립되고 있다"면서도 "동북아 정세에 있어 100년간의 비극을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지난달 26일 <더팩트>는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양 교수를 서대문 연구소에서 만났다. 그는 한반도 정세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한일 계 변화는 필수적이라고 했다. 또, 해결책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한반도체제'를 언급했다.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있어 일본도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더팩트>와의 약 한시간 가까운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 진단과 해법을 가감 없이 내놓았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최근 한일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경색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반적인 한일 관계에 대해 평가해달라.
전반적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것 사실이다. 출구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한일 관계에는 3가지 기본 원칙이 있다. 첫 번째, 가치와 이념을 공유한다는 것, 둘째는 전략적 이익을 공유한다는 것, 세 번째는 이웃 나라라는 것이다. 현재는 이 세 가지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첫째로 시장경제, 민주주의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인 김대중 정부 때부터 일본에서 한국을 정상적인 민주적 국가로서 상대하려는 흐름이 구성됐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강제노역 판결,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대마도 불상 도난 사건, 산케이 지국장 기소 건(세월호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이 파악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칼럼으로 검찰의 기소) 등 일본 측은 반발하고 있다. 한국에 언론, 사법부의 자유가 있느냐는 일본 측의 반발이 나온다.
두 번째, 전략적 이익 공유는 양국이 동북아에서 전략적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6년까지 동북아 내 한일 관계는 전략적 공유의 이웃 나라라는 것이 포함돼있었다. 2018년 일본의 방위백서, 외교총서에서 한국과의 전략적 이익 공유라는 문구가 사라졌다. 우리도 국방백서에서 일본과의 전략적 이익 공유 표현 사라졌다.
세 번째, 이웃 나라라는 점에서 상호 간의 호감도이다. 최근 언론조사 결과 한국에서 일본에 대한 비호감에 응답이 66%에 육박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27% 정도로 머물고 있다.
정권교체 이후 한일 정상회담 16회, 외교 장관 회담 23회, 한일 국방 장관 8회 등 상호 대화가 굉장히 활발해지고 있지만,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한일 정상회담이 3년 만에 처음 이뤄진 것과 비교해보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그 과정에서 신뢰가 외교당국 국방부-방위성으로 신뢰 구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의 간극을 어떻게 줄일 수 있나? 잘 해결될 것으로 보는가?
종합적으로 한일 양국 간에 신뢰가 구축돼야 하는데 아직은 양자 간의 불신과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당분간 이런 것들이 개선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대북 인식에 대해서도 다르다. 한국의 경우 한반도의 비극을 해소하기 위한 평화와 번영이 최우선의 과제이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 대북제재, 중국 견제라는 것이 외교의 핵심이다. 이렇게 한일 간의 공통분모가 발견되고 있지 않다. 전략적인 목표의 상호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고 기본적으로 불신이 뿌리 깊게 남아있다.
특히, 독재정권 시기에 억눌려있었던 피해자 구제의 문제가 떠오른 것이다. 1965년 한일조약은 한일 간의 현격한 경제적 격차에서 한국의 경제성장을 위해 이 문제들을 정치적으로 봉합해왔다. 그동안 억눌려있던 피해자들이 민주화 이후 사법부에 구제를 요청하고 있고,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 일본 정부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한국에서는 사법부 판결이 있었다. 이는 정부 차원에서도 가능한 일이 없다. 일본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양자 간의 대치 간극을 해소하기가 당분간 어렵다고 본다.
3.1운동 100주년 5.4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등 역사적인 해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가 새로운 변화를 위해 상호 배려의 원칙하에서 양자 타협점을 찾아가야 한다.
한일수교 54년이 흘렀고 인적, 물적 교류는 500배나 늘었다. 불평등했던 경제 관계가 이제 수평적으로 재정립되고 있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신한반도 체제'에서 우리 운명을 남한과 북한이 협력하고, 주변국 지지를 통해 바꿔나간다는 원칙이 있다. 그 원칙을 바꿀 수는 없다. 일본이 이를 수용할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적어도 100년의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실현해야 하는 숙명이다. 일본은 동북아 국제정치 변곡점에서 그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역대 정부(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의 한일관계를 비교해 평가한다면?
냉전체제 이후에 한국은 민주화가 되고 국력도 신장이 됐다. 냉전체제 하에 억눌려있던 영토, 역사 문제가 표면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 이후에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한국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했고, 이명박 정부에서 처음으로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다는 점, 박근혜 정부도 위안부 문제에 일본이 진정성이 없다는 이유로 3년간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던 것을 지적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역사 문제와 협력 문제를 투 트랙 전략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런 국제정치상 한일 간의 관계변화는 역학상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악화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만 해도 일본 내에 한류 붐이 일어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40%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에는 호감도가 30%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유독 한일 관계가 악화된 것이 아니라 지난 7~8년간 계속 악화 돼 온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정치, 경제, 안보, 문화의 변수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위안부 문제만 갖고 한일 관계를 해결하려고 했다. 즉, 지나치게 과대하게 쟁점화시켰다는 큰 실수가 있었다.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투 트랙을 쓰고 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됐지만, 지금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양국이 가지고 있다. 정상 간의 허심탄회한 소통과 이해가 필요하다.
-3.1절,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100주년을 맞아 우리는 한일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반일감정이 고조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예전과 비교하면 3.1운동 100주년으로 반일감정이 고조되지 않을 거라고 본다. 다만, 100주년이고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등으로 한일 관계에서 역사와 관련된 사안이 강조되는 것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지난 100년간의 근대화 과정에서 빚어진 전쟁과 식민지 비극을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주도해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또, 한일 양국이 동북아 평화번영을 손을 잡고 갈 수 있는가의 논의도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한반도체제에서 한국이 주도해 운명을 개척해나가자고 밝혔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동북아 평화와 번영인 셈이다. 같은 입장을 가진 일본도 거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혐한 단체들이 도쿄에서 활보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연이은 한일관계 악화 때문으로 볼 수 있나?
혐한단체들은 한류에 대한 반발에서부터 시작됐다. 2000년대 일본 내 한류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과도한 반발이 있었다. 또, 이에 맞물려 역사와 영토 문제는 한국이 적극적으로 반발했다.
일본 입장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성의를 갖고 보상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이 입장을 바꿔 계속해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이 사법부 판결을 통해 양국이 약속했던 청구권 협상을 무산시켰고, 화해치유재단 해산 등 한국이 약속 지키지 않은 것은 물론,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안타까운 것은 일본 내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종북좌파, 민족주의 정부라고 왜곡 보도하고 있다. 친북좌파 정권 프레임으로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미래를 생각해 봤을 때 더욱더 그렇다.
2013년에 ‘카운터스’라는 단체가 있었다. 일본인들로 구성된 단체로 '재특회'(재일(在日)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의 재일 한국인 비판을 부끄러운 일이라고 맞선 단체이다. 지속적인 혐오 발언에 대해 반대 시위 해왔다.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 2016년에 혐오 발언 금지법이 통과됐다. 그런 점에서 일본 내에서도 혐한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일 간 수교도 가능한가?
당분간은 어렵다. 희망적으로 관측하는 것은 아베 총리가 작년에는 북한 대북제재를 강화한다고 시정연설을 했지만, 올해는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는 점이다. 수차례의 남북대화와 북미정상회담 등을 통해 동북아 정세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일본도 인식하고 있다. 일본 측 입장도 이해가 된다. 일본이 중시하는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 없이는 북일관계가 개선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한국 정부는 한국의 입장을 강조하고, 일본 정부는 일본의 입장을 강조하고 있어 상호 이해와 소통이 필요하다.
-청와대 외교·통일 라인, 외교부 관료들에게 한일 관계와 관련해 제언할 말이 있다면?
먼저, 강제노역 대법원 판결에도 한국 정부의 책임 있는 행동과 일본 기업의 수용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 한국 기업, 일본 기업 3자 기금을 만들어서 화해하고 예방적인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도 1965년 협정 채결자로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강제노역 판결은 일본 기업과 한국 피해자의 민사 소송이기 때문에 제3국을 포함한 중재위원회를 개최하거나,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가져갈 수는 없다.
일본 기업 헌장에는 외국에 투자하거나 진출한 자국계 기업들은 현지 문화, 제도, 법령을 따른다는 헌장이 있다. 이에 따라서 재판에 참여해 패소된 것이기 때문에 일본기업들은 강제노역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에 수용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이 각자의 목소리만 내서는 상호 간 이해시키기가 어렵다. 일본 측에서는 한국이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 나라이고, 북한의 핵을 방치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가 종착점이라는 것을 설득시켜야 한다.
남북관계 북미관계에 집중하는 면이 있어 일본에 대한 외교적 집중도가 떨어지는 면이 있다. 한반도 비핵화, 남북통일에 있어 경제적 개발 인프라 투자에서 주변국의 지지가 꼭 필요하다. 체제와 이념을 공유하는 일본도 우리에게 소중한 파트너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진정성을 갖고 일본 측과 소통하고 대화해 설득하는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