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애애하던 분위기 '급변'…북미정상회담 축하 전광판도 꺼져
[더팩트ㅣ하노이(베트남)=이원석·임세준 기자] '평화의 도시' 하노이가 28일 오후 침묵에 휩싸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전격 결렬됐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친교 만찬에 이어 본 회담을 위해 메트로폴 호텔로 들어간 이날 오전 하노이는 긍정적인 결과를 낙관하며 기대에 차 있었다.
전날에 이어 이날도 수천 명 현지인·관광객들이 호텔 근처까지 나와 두 정상이 호텔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들 손엔 인공기와 성조기가 함께 들려 있었다. 현지 한국교민들이 나와 한반도기를 들고 있던 모습도 보였다. 사람들은 하나 같이 밝은 표정이었다.
취재진도 마찬가지였다. 취재진의 관심은 온통 '어느 정도의 합의사항이 나오느냐'에 있었다. '회담 결렬'은 예상 선택지에 없었다.
호텔 내부 상황도 화기애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만나 "어제 만찬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많은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며 "중요한 것은 우리 관계가 좋다는 것이다. 오늘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도 "얼마나 자신 있느냐"는 백악관 출입기자의 돌발 질문에 "예단하지 않겠다. 그러나 나의 직감으로 보면 좋은 결과가 생길 거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두 정상은 대화 도중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는 등 화목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어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부터 단독 회담을 가졌고, 이후 밝은 표정으로 호텔 정원에서 산책을 가졌다. 곧이어 두 정상은 핵심 참모진·실무단과 함께하는 확대 회담에 돌입했다. 확대 회담에 들어가기 직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에게 "우리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고 했다. 이 때까지만해도 하노이는 기대감에 찼다. 두 정상은 업무 오찬에 이어 오후 2시 합의문 서명식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했다. 두 정상이 회담장을 떠나기까지는 약 2시간가량 더 남아 있었지만 갑자기 호텔 앞이 분주해지며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전용차량과 경호차량들이 줄지어 섰다. 베트남 공안은 교통을 통제했다. 두 정상 차량이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조치가 진행된 것이었다.
취재진도 급하게 카메라를 켜는 등 불확실한 회담장 상황에 집중했다. 업무 오찬이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트럼프 대통령이 오후 4시로 예정됐던 기자회견도 2시로 일정을 당겼다는 공지도 나왔다. 잠시 뒤 두 정상은 각각 메트로폴 호텔을 나섰다.
약 5분 뒤 김 위원장의 차량은 숙소인 멜리아 호텔로 들어가는 도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취재진을 지나치는 차량 속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등 북측 관계자들의 표정도 매우 굳어있었다. 차량에서 내려 로비로 들어가는 김 위원장과 주변 수행단의 분위기 또한 무겁게 느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숙소 JW메리어트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는 상당히 훌륭한 지도자이고 우리 관계는 매우 돈독하다"면서도 "옵션이 여러 개가 있었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 직후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예정이다.
두 정상이 회담장을 떠난 뒤 회담 기간 내내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축하하기 위해 켜져 있던 하노이 시내 곳곳의 전광판도 꺼졌다. 현지인들도 굳은 표정으로 김 위원장이 들어간 멜리아 호텔을 바라봤다. 호텔을 지키는 공안들도 웃음기를 잃었다. 현지인 흐엉(여·25) 씨는 "좋은 결과 없이 회담이 빨리 끝나서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들어간 이후 멜리아 호텔엔 경호 인력이 추가됐고,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애초 김 위원장은 회담이 끝난 뒤 3월 2일까지 베트남에 머물 계획이었다. 그러나 회담 결렬로 인해 김 위원장 일정에 변동이 생길 수도 있단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