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확대경] '민변' '회사원' 평범한 삶은 대권을 잡을 수 없다?

역대 대통령의 인생을 살펴보면 평범함을 뛰어 넘는 인생 스토리나 눈에 띄는 정치 이력이 있다. 사진은 19대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제공

역대 대통령들의 '히스토리'

[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청와대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천운'이 따라야 한다고들 한다. 단단하고 강한 세(勢)와 치밀한 전략, 인지도는 기본이고 시대 흐름의 바람까지 타야 대권을 거머쥘 수 있다. 특히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무언가 '한방'이 필요한데, 역대 대선 과정을 살펴보면 과거 본인의 삶을 끄집어 내 극적이고 휴머니즘이 깔린 인생 스토리를 무기로 꺼내 들었다.

체득하고 겪어왔던 굴곡진 '인생의 실화'야 말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역대 대통령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현 정부부터 참여정부까지 살펴보자.

2009년 4월 30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타고온 버스 유리창에 반노(反노무현)시위대가 던진 계란자국이 노 대통령 뒤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인 문재인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의 친구'

19대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막역한 친구 사이로 잘 알려져 있다. "저는 제가 아주 존경하는, 나이는 저보다 적은 아주 믿음직한 친구 문재인을 제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문재인을 친구로 두고 있다"는 노 대통령의 연설은 유명하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두터운 친분을 쌓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나 주변으로부터 정계 진출을 권유받았으나 번번이 거절했다고 한다.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으며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대권을 잡은 노 전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듬해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비서관에 임명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추진하고 있는 사법개혁을 위해 힘썼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거쳐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재임하면서 끝까지 노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문제는 노 전 대통령이 2009년 박연차 게이트에 휩싸이면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는데, 초야에 묻혀 살던 문 대통령은 변호인으로 활동했다. 그해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이 고향 봉화마을에서 서거하자 문 대통령은 상주를 맡아 마지막까지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자연인' 문재인은 변환점을 맞게 된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뒤에도 정치와 거리를 뒀지만, 주변의 권유와 야권의 유력 대권후보로 부상하면서 결국 재차 정계에 뛰어들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당선(부산 사상)된 뒤 2012년 대선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동시에 당시 48%의 득표율로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본인의 지지층 자체도 두꺼웠지만, 노 전 대통령의 팬클럽인 '노사모'의 지지도 한몸에 받았다. 지금도 친문(친문재인)-친노(친노무현)라는 큰 세력 갖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부하의 총탄에 부모를 잃었다. /더팩트 DB

◆ '총탄에 부모님을 여읜 비운의 딸'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운의 아이콘'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부모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전 여사가 모두 총탄에 맞아 숨졌기 때문이다. 22세 대학생 때인 1974년 8월 15일 육 여사의 죽음에 대신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다가 1979년 김재규의 총탄에 박 전 대통령이 목숨을 잃자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

유신정권 시절 "우리도 잘살아 보자"며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으로 급속히 나라 경제가 성장하는 것을 기억하는 중장년층에서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군다나 비극적인 가족사가 있어 연민을 갖는 이들이 상당했다. 박 전 대통령 특유의 올림머리도 나름의 마케팅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국민에게 다정한 인품을 보였다는 육 전 여사와 같은 머리 모양으로 옛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었겠느냐는 이유에서였다.

어쨌든 현재도 일부 중장년층 보수 진영은 태극기를 들고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부당하다고 성토하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박 전 대통령의 비운의 인생사는 대권을 잡는 데 일조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최초 여성 대통령, 부녀(父女) 대통령 등 화려한 타이틀을 보유했지만, 결과적으로 헌정사 최초로 임기 중 탄핵 절차에 의해 파면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도 동시에 갖고 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라는 유행어(?)를 남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셀러리맨 성공 신화를 쓴 인물이다. /더팩트 DB

◆ 사원에서 사장까지…'샐러리맨 성공 신화' 이명박

'다스' 실소유주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10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옥살이를 하고 있는 이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과정 당시 '경제 대통령'을 표방했다. '샐러리맨 성공 신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65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이 전 대통령은 5년 만에 임원이 되고 12년 만에 사장 자리를 꿰찼으며 1988년 회장까지 올랐다. 말 그대로 출세 가도를 달려 월급쟁이들의 '신화'적 존재였다. 1960~70년대 당시 산업화 시대의 바람을 타고 건설 경기가 호황이었던 시절이라는 점과 이 전 대통령의 특유의 강한 추진력과 탁월한 능력을 과시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이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이러한 신화 같은 얘기를 통해 침체된 경제를 살리겠다며 유권자 표심을 자극했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 청계천을 복원하고 대중교통 체계를 개편하는 등 굵직한 업적도 당선하는 데 뒷받침됐겠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법한 평사원→회장의 성공담도 이 전 대통령이라는 인물을 평가하는 데 긍정적인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가난했던 형편을 딛고 자수성가한 인생 이야기도 이 전 대통령의 자신을 소개하는 소재였다. 끼니를 빈번하게 거르는 것은 물론 어머니를 도와 좌판에서 장사를 했다든지 뻥튀기를 팔았다는 등은 그의 유명한 일화다. 또 그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상고(야간)에 입학하고 고려대에 진학했다는 인생 이야기를 자주 언급하기도 했다. 서민들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적임자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권 옹호를 위해 힘쓴 변호사로 유명하다. 또 초선의원 시절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 씨를 향해 명패를 집어 던져 일약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 정치 이력이 있다. /더팩트 DB(장영철 씨 제공)

◆ 약자의 편에 선 '인권 변호사' 노무현

노 전 대통령은 가난한 산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할 정도였다고 한다. 제대 이후 두 차례 낙방 끝에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유일한 고졸 출신이었다. 대전에서 판사로 임용된 노 전 대통령은 7개월 만에 법복을 벗었다.

이후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소를 차렸다. 1980년대 부산지역 최대 공안사건이었던 '부림사건' 피해자들의 변론을 맡는 등 인권 옹호에 힘썼다. 이밖에도 학생과 노동자 등을 위한 각종 인권 사건을 맡았던 그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변호사로 인식됐다.

또 노 전 대통령 하면, '5공 청문회'를 빼놓을 수 없다. 초선의원 시절인 1989년 국회 5공 청문회에서 군부 쿠데타를 일으켰던 전두환 씨를 향해 명패를 집어 던져 일약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이때 군부독재와 민주화에 제동을 걸었던 전 씨에게 일갈하면서 국민의 갈증을 해소해주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3당 합당 때 정계 입문을 도왔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도 갈라서면서 '대쪽'같은 소신을 보이기도 했다. 부산에서 14대 총선(1992년), 부산광역시장 선거(1995년), 15대 총선(1996년)에 연거푸 낙선하는 결과로 돌아왔지만, 오히려 참모들을 위로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였다.

이후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 당선되면서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듯 했다. 하지만 16대 총선에서 다시 부산에서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이처럼 순탄치 않은 정치 이력과 인권을 대변한 그의 인생사가 2002년 대선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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