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협위원장 선발 유튜브 생중계 오디션이라는 '실험'한 한국당
[더팩트ㅣ국회=이원석 기자] 심사위원이 돼보기로 했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야심 차게 준비한 '슈퍼스타 K 방식 당협위원장 유튜브 공개 오디션'을 심사하는 것이다. 오디션 속 심사위원들이 당협위원장 후보자들을 평가할 때 필자는 한국당의 이 실험 자체를 평가해보기로 했다.
지난 10일 제일 처음이었던 서울 강남을 지역 오디션을 직접 유튜브를 통해 시청했다. 핸드폰 잠금을 풀고 하얀색 삼각형이 새겨진 빨간 버튼을 찾아 눌렀다. '유튜브(YouTube)'. 연령을 넘어 세계 인구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바로 그 동영상 플랫폼이다. 홍준표, 유시민도 한다는….
최근 유튜브에 '푹' 빠진 한국당은 얼마 전 차기 총선 공천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당협위원장직 선발을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하겠다고 알렸다. 그것도 오디션 형식으로. 약 10년 전부터 우리나라를 휩쓴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방식이다. 솔직히 '무모한 도전'이라는 부정적 생각부터 들었다.
한국당 유튜브 중계 영상에 접속하니 400여 명이 이미 시청 중이었다. 화면 우측 상단엔 큼지막한 글씨로 'LIVE', 하단엔 '잠시 후 생방송이 시작됩니다'라는 자막이 떠 있다. 이와 함께 중앙당사에 차려진 스튜디오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맨 앞줄엔 심사위원(조직강화특별위원)들이, 그 뒤로는 평가단이 앉아 있었다.
유튜브 화면 오른쪽엔 시청자들이 댓글을 남기는 창이 있다. 시작 전이었지만, 벌써부터 댓글들이 쏟아졌다. 댓글을 단 이들은 내용으로 미루어봤을 때 대부분이 한국당원으로 보였다.
방송이 시작됐다. 정옥임·진성호 전 국회의원이 사회자로 섰다. 웅장한 BGM이 흐른다. "자유 우파, 한국당의 변화와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이 오늘 결정이 납니다. 저희들의 목표는 하나입니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오늘 전국에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오디션은 대한민국 당협위원장 선발사상 획기적인 혁명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선 오늘부터 사흘 동안 한국당에 신선한 바람 혁신을 일으킬 미래 인재들을 직접 만나실 수 있습니다"라고 오디션을 소개했다.
한국당은 이 공개 오디션에 거는 기대가 대단한 듯했다. 사회자를 비롯해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도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후보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실험도 지금 평가를 받고 있다"고 했다. 맞다. 지금 지켜보고 있으니까.
본격적인 오디션이 시작됐다. 세 명의 후보자가 나왔다. 정원석, 이지현, 이수원 후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연령대'였다. 정치인 오디션이라고 하면 왠지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나올 것 같았지만, 정원석 후보가 만 31세, 이지현 후보가 만 42세로 정당에선 청년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이수원 후보도 만 55세로 많은 편은 아니었다.
세 후보에게 2분의 자기 PR시간이 주어졌다. 어떤 후보는 화려한 말솜씨를 선보였다. 반면 어떤 후보는 심하게 떠는 듯했다. 목소리의 떨림, 말을 더듬는 모습이 그대로 유튜브를 타고 전해졌다. 어떻게 보면 긴장하는 게 당연하다. 바로 앞에 앉은 심사위원들은 매서운 표정으로 후보자들의 말을 듣고 또 관찰한다. 그 뒤의 판정단 50명이 지켜보고 있고, 유튜브로 전세계에 생중계까지 되고 있다. 오디션은 오디션이었다. 후보자들의 긴장이 화면과 스피커를 통해 그대로 중계되는 동안 어느새 유튜브 시청자는 1000명을 돌파했다.
댓글창은 아까보다 더 활발해졌다. 막 올라온 댓글들이 또 다른 댓글에 밀려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누구 후보가 낫다', '누구는 못 한다', '저런 사람이 돼야 한다'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응원한다. 사회자는 중간중간 유튜브 댓글을 읽어줬다.
후보자들을 향한 심사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들도 흥미로웠다. 거기에 더 큰 재미를 준 건 판정단이 포스트잇에 적어 낸 질문이었다. 한 후보자는 판정단으로부터 '강남을에 초중고 학교 숫자를 대달라. 그중 혁신 학교 개수는 몇 개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받기도 했다. 좌중이 폭소했다. 생중계의 묘미다. 아니었다면 황당한 질문이라고 판단돼 편집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분위기를 이완시키는 역할을 했다. 후보자도 "개수는 모르지만 전 아들이 다니고 있는 혁신 학교의 운영위원이다. 강남을의 가장 큰 관심사가 교육이란 걸 알고 있다"며 능숙하게 답변했다.
평가는 심사위원 점수가 60%, 평가단 50명의 투표가 50%가 반영됐다. TV프로그램에서처럼 판정단은 손에 쥐고 있는 버튼을 눌러 자신이 마음에 드는 후보자에게 표를 던질 수 있었다. 상호 토론 등의 순서가 지나간 뒤로 최종평가의 순간이 왔다. '쿵쿵' 거리는 BGM이 등장했고, 댓글창에선 '누가 잘한다', '누가 1등 하겠다', '누구는 꼴찌다' 등 의견들이 올라왔다. 판정단은 버튼을 눌렀고 심사위원들은 최종 점수를 매겼다.
"결과가 나왔나요?" 정말 TV 오디션 프로그램 결승전에서나 들었던 사회자의 대사다. 보통 대부분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결승전은 생중계로 진행한다. "네, 아직이라고 합니다." 뜸 들이는 것도 비슷하다. 괜히 결과가 더 궁금해진다. 혼자서도 후보자들 순위를 매겨본다.
"네,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결과는 저도 모릅니다." 누가 됐을까. 은근히 긴장된다. "자, 결과를 보여주세요!" 세 후보자의 이름 아래로 숫자들이 핑글핑글 돌아간다. 가장 많은 점수를 얻는 후보자가 최종 우승한고 강남을 당협위원장이 된다. (필자가 생각한) 이 사람이겠지? 숫자가 멈춰 섰다.
'정원석 69점 / 이지현 42점 / 이수원 68점'. 1점 차였다. 정원석 후보자가 이수원 후보자를 1점 차로 누르고 우승했다. '헉! 대박', '이수원 후보가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쉽다ㅠㅠ', '될 줄 알았어요!' 등 댓글들이 쏟아졌다.
필자는 세 후보자 중 나이가 가장 많았고 오디션 과정에서 침착함과 여유, 연륜을 보였던 이수원 후보자의 승리를 점쳤다. 그는 중간평가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정원석 후보자에게 돌아갔다. 예상은 틀렸지만 납득할 수 있는 결과였다. 정 후보자는 젊은 나이 답지 않은 화려한 언변과 특유의 자신감으로 내내 돋보였다.
우려했던 한국당 유튜브 생중계 오디션은 생각보다 '흥미진진'했다. 자기PR과 상호토론 등의 순서는 선거 때의 TV토론과 비슷한 분위기였지만 심사위원, 판정단의 날카로운 질문, 실시간 투표가 은근 상황에 박진감을 주는 듯했다. BGM과 나름 잘 준비된 진행도 높이 평가할 만했다. 예상보다 훨씬 질이 높았다.
아울러 한국당이 스스로 거듭 자화자찬하지만 실제 이러한 방식의 정치인 오디션이 그동안 불법과 특혜가 난무했던 정치권도 조금이나마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후한 생각도 들었다. 이후 치러진 다른 지역구의 오디션에서도 청년·여성이 강세를 보였다고 한다. 특히 3선 의원, 주중 대사까지 지낸 베테랑 정치인인 권영세 전 대사가 탈락하는 '이변'에 모두가 놀라기도 했다. 기존의 비공개 평가였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단지 이것만으로 '공정'을 말하기는 부족할지 모르나 적어도 그 방향으로 시도를 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물론 지적할 부분도 없진 않다. 일단 흥행에선 실패했단 평가가 많다. 많으면 1000여명, 보통 수백명의 시청자들이 접속했는데 많은 숫자는 아니다. 또한 지나치게 정치를 '쇼'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새로운 플랫폼을 통한 정치의 새로운 모습, 국민(시청자)과 소통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종합적으론 좋게 평가하고 싶다. 그동안은 정치권이 외면하던 것들 아닌가. 여야를 막론하고 이를 좀 더 발전시킨다면 김 위원장 말대로 대한민국 정치의 변화가 정말 가능할 수도 있다. 꼭 유튜브 생중계 오디션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제 점수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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