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검찰 조사 직전 대법원 앞 기자회견 강행…"편견 없길 바란다"
[더팩트ㅣ서초=임현경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11일 검찰에 소환된 가운데, 대법원과 서울중앙지검이 위치한 서울 서초동 일대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8시 59분 대법원 정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 1200여 명과 취재진 100여 명, 반대시위를 위해 모인 법원 노조원 60여명이 현장에서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 조사를 앞둔 전직 대법원장의 모습을 목도했다.
정문 밖에서 대법원 건물을 등지고 선 양 전 대법원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정문 안쪽에서 시위를 벌이는 법원 노조를 돌아본 뒤 취재진과 마주했다. 법원 노조는 "양승태의 말이 기자들에게 전달되면 안 된다", "지금이라도 검찰 포토라인으로 가라"며 양 전 대법원장의 목소리를 덮으려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무엇보다 먼저, 제 재임기간 중 일어난 일로 국민 여러분께 이토록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 일로 법관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사기관의 조사까지 받은 데 대해서도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이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로 인한 것이니 그에 대한 책임은 모두 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6월과 마찬가지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다만 저는 이 자리를 빌어 국민 여러분께 우리 법관들을 믿어 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싶다"며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법관들도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면서 법률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있고, 저는 이를 믿는다. 그분들의 잘못이 나중에라도 밝혀진다면 그 역시 제 책임이므로 제가 안고 가겠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자세한 사실관계는 오늘 조사 과정에서 기억나는 대로 가감없이 답변하고, 오해가 있는 부분은 충분히 설명하도록 하겠다"며 "이런 상황이 사법부 발전과 그를 통해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루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청사가 아닌 대법원으로 온 까닭을 두고 "대부분의 인생을 법원에서 보낸 사람으로서 수사하는 과정에서 법원을 한번 들렀다가 가고 싶은 마음"이라 밝히며 '편견과 선입감 없는 공정한 시각'을 호소했다. 그는 '후배 법관에게 부담을 줄 거란 생각은 안 했나', '검찰 수사에서 관련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등 취재진의 질문에 "편견이나 선입감 없는 시각에서 이 사건을 봐달라"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후 차를 타고 서울중앙지검으로 이동했다. 청사 앞에서 대기하던 취재진은 '재판개입 혐의 인정 여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심경' 등을 물었으나, 양 전 대법원장은 입을 굳게 다문 채 검찰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곧장 건물 안으로 향했다.
한편 이날 현장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이들과 양 전 대법원장의 결백을 호소하는 이들의 첨예한 맞불집회가 열렸다. 일부 집회 참가자들은 보수단체 유튜버의 초상권 침해, 양 전 대법원장의 범법을 주장하는 피켓 등을 두고 언쟁을 벌여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이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 포토라인이 아닌 대법원 앞에 서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경찰은 18개 중대 1800여명을 양 전 대법원장의 동선(12개 대법원·6개 서울중앙지검)에 맞춰 배치하고 주변 도로를 통제하는 등 삼엄한 경비를 수행했다. 이날 서초동에 운집한 인원은 검찰·법원 관계자, 집회 참가자, 취재진, 경찰 등 수천 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