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文대통령과 기자단의 120분 '공수대결' 교훈
[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이 열린 10일 오전. 기자들이 상주하는 춘추관은 평소와 다르게 분주하고 들뜬 분위기였다. '대사'를 앞두고 춘추관 2층에서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웃음꽃을 핀 취재진이 눈에 띄었다. 문득 기자단은 스포츠의 '공격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줄 '골'을 기록하는 손흥민 같은 공격수 말이다. 사실 민감한 국정 현안과 이슈가 많았기에 기자들의 '송곳 질문'이 예상된 기자회견이었다.
고민이 깊었다. 전날 밤에도, 출근길에서도, 마지막으로 춘추관을 떠나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기 전까지 '국민은 문 대통령에게 무엇이 궁금하고 어떤 답을 듣고 싶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정치·경제·외교 관련한 질문은 다른 기자들이 질문할 것이라고 나름대로 예상했다.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있던 문 대통령의 20·30 남성의 지지 이탈 현상과 극우 커뮤니티의 사회적 논란 야기와 관련해 묻기로 결심하고 회담장인 청와대 영빈관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임의로 탑승했던 버스가 후속 출발하는 바람에 '로열석'엔 앉지 못했다. 기자회견은 문 대통령이 직접 사회를 보고 질문할 기자들을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아무래도 문 대통령과 가까이 있는 것이 질문권을 얻기에 유리할 것이라는 나름의 판단이 있었던 터라 아쉬움이 컸다. 워낙 질문권을 얻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간절하면 통할 것으로 믿는 수밖에 없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바꾸고 질문할 때는 소속과 이름을 밝혀달라는 안내가 나왔다. 그외에 사전에 조율된 부분은 없었다.
10시 34분께 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서 올해 국정운영 기조와 방향이 담긴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영빈관으로 들어섰다. 180명(내신 128명·외신 52명)의 내·외신 취재진과 청와대 직원들 모두가 일어서서 박수로 맞이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왠지 모르게 약간 떨렸지만, 오랜만에 느껴지는 적절한 긴장감이 좋았다. 문 대통령이 관례에 따라 청와대 기자단 간사에게 가장 먼저 질문권을 주고 다음 차례부턴 손을 든 기자들 가운데 한 명을 지목했다. 역시나 문 대통령과 가까운 자리가 '명당'임을 실감했다. 문 대통령은 대체로 앞쪽에 앉은 기자들을 지목했다. 문 대통령의 '선택'을 받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문 대통령은 경제 분야 질문이 나올 때 표정이 어두웠다. TV 생중계를 지켜보는 국민에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듯 보였다. 특히 문 대통령은 "지금 고용지표가 나쁜 부분은 참으로 우리로서는 아픈 대목"이라며 안타까운 속내를 내비쳤다. 2017년 취임 당시 일자리 상황판까지 만들며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을 우선 과제로 삼고, 2년간 54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혈세를 투입했음에도 지난해 고용지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문 대통령과 기자들의 열띤 즉문즉답 등 120분 넘게 이어진 회견이 끝나버렸다.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에서 20대 남녀의 차이에 관해 대통령의 생각을 말해달라는 다른 기자의 질문에 문 대통령이 답변한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문 대통령은 이 질문에 "남녀들 간에 젠더 갈등이 심각하고, 그런 갈등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사회가 바뀌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이고 그런 갈등을 겪으면서 서로 사회가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그 갈등 때문에 지지도 격차가 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신년 회견이 끝나고 춘추관으로 돌아가는 길. 그래도 아쉽고 허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도 질문을 준비했음에도 선택받지 못한 기자들 역시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이동 중 검색을 위해 휴대전화를 켰을 때 실시간 검색어에 신년 회견에서 질문한 한 기자의 이름이 떠 있었다.
"오늘 신년사에서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통해서 성장을 지속시키겠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겠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여론이 굉장히 냉랭하다는 걸 대통령께서 알고 계실 것이다. 현실 경제가 굉장히 얼어붙어 있다. 국민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희망을 버린 건 아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굉장하다. 대통령께서는 계속해서 이와 관련해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강조하고 계셨지만, 그럼에도 현 정책 기조를 바꾸시지 않고 변화를 갖지 않으시려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다.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근거는 무엇인지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다."
이 기자의 질문 내용과 태도를 놓고 논란이 불거졌다. '뼈를 때리는 질문이었다'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는 등 여러 견해와 '기레기'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신년 기자 회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이번 신년 회견에서 직접 질문하지 못했지만,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고 이 내용을 잘 전달만 하면 된다는 마음 한편의 생각이 얼마나 단순했는지, 한겨울에 얼음물을 마신 것처럼 머리끝이 쭈뼛 섰다.
내년 신년 기자회견이 또 열릴지, 열린다면 그때도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국민이 속 시원해 할만힌 대통령의 대답을 얻기 위해선 지금보다 훨씬 더 문제 의식을 갖고 사안을 살피며 평소에 항상 질문을 갈고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자세로 1년을 보낸다면 내년에는 멋진 질문의 기회가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