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해년(己亥年) 시작부터 정치권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청와대를 겨냥한 폭로로 인한 여야의 공방이 뜨겁습니다. 지난해 마지막 날이었던 31일엔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폭로 건으로 인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했습니다. 현역 민정수석이 국회를 찾은 건 이례적인 일이어서 더 주목됐습니다. 이후 논란의 불꽃은 기획재정부에 근무했던 신재민 전 사무관의 '적자 국채 발행 청와대 외압' 폭로로도 번졌습니다. 지난 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추가적인 폭로를 예고했던 신 전 사무관은 다음날 자살 소동을 벌이며 정치권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구속된 지 384일 만에 석방됐습니다. <더팩트> 정치플러스팀과 사진영상기획부는 여의도 정가, 청와대를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 속마음을 다루는 [TF주간 정담(政談)]코너를 진행합니다. 주간 정담(政談)은 현장에서 발품을 파는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취재 후기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국회 출석해 '학자' 조국 케어한 '정치인' 임종석?
[더팩트ㅣ정리=이원석 기자] -지난해의 끝과 올해의 시작이 함께 있던 한 주였습니다. 지난해 마지막 날이었던 31일엔 국회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웠습니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폭로 관련 건에 대해 야당이 출석을 요구하면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에 나왔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 소환에 응한 건 12년 만이었기 때문에 정치권이 들썩들썩했습니다.
-해가 바뀜과 함께 김 전 특감반원 건에 이어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도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신 전 사무관은 지난 2일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고 청와대가 압력을 넣은 것이 사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이었던 건 바로 다음 날 신 전 사무관이 유서를 남기고 잠적해 경찰이 수사에 나선 일이었는데요. 다행히 불미스러운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신 전 사무관 폭로와 관련된 정치권 공방도 더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국정농단 방조 혐의'를 받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석방됐습니다. 현재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우 전 수석의 구속 기한이 만료가 됐기 때문인데요, '방조' 혐의지만,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우 전 수석입니다. 먼저 이번 주 가장 시끄러웠던 신 전 사무관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긴급 기자회견 하루 만에 유서 남기고 잠적한 신재민…정치권 '충격'
-지난 2일 신 전 사무관이 긴급 기자회견을 했죠? 당시 신 전 사무관의 모습은 어땠나요.
-힘들어 보였다고 하기보다는 많이 긴장한 상태였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사실 긴장을 하는 게 당연하기도 한데요, 신 전 사무관은 일반인이다 보니 카메라 수십 대가 자신을 찍고 있는 상황에 긴장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신 전 사무관은 꼭 그 현장이 긴장돼 떨었다고만 볼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소동을 통해 보면 신 전 사무관은 이번 일로 인해 상당한 압박,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 폭로 내용에 대한 사실 관계는 밝혀진 게 없습니다. 청와대, 여권과 신 전 사무관 상호 간의 공방만 오갈 뿐입니다. 다만, 신 전 사무관이 정말 죽을 결심까지 했다면 그의 심리 상태가 상당히 불안하다는 걸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상당히 불안해 보였고요.
-그렇군요. 그런데 신 전 사무관이 기자회견 다음 날 실제로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와 유서를 남긴 채 잠적해 모두가 긴장했죠?
-네, 다행히 실종된 지 4시간 만에 관악구 신림동의 한 모텔에서 발견됐습니다. 생명엔 지장이 없는 상태였지만, 곧바로 서울보라매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신 전 사무관 실종 이후 발견될 때까지 취재진들이 굉장히 혼란스러웠다고 하던데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처음 보도가 나온 이후 취재진이 관악경찰서로 모여들었습니다. 경찰은 인력을 집중해 신 전 사무관을 수색하고 있던 중이었고요. 근데 취재진 사이에서 신 전 사무관에 대한 여러 잘못된 소식, 가짜뉴스 등이 돌았습니다.
-저도 신 전 사무관과 관련한 많은 지라시를 받아보긴 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나요?
-우선 '동명이인(同名異人)설'이 돌았습니다. 실종된 것은 신 전 사무관이 아니라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것인데요, 사실 취재진 사이에선 이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동명이인이라도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되겠지만요. 그러나 상황은 다시 반전됐습니다. 경찰 쪽의 착오였고, 실종자는 신 전 사무관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심지어 신 전 사무관으로 추정되는 사체가 발견됐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경찰 쪽에서 현재 대학동 개천 인근에서 '쑥고개'라는 지명으로 넘어가는 곳을 수색 중이라는 정보를 준 직후였는데, 잠시 후 쑥고개 근처에서 시신이 발견됐고, 신 전 사무관이 맞는지 확인 중이라는 소식이 메신저 등을 통해 각 취재진에게 전해졌습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소식이었기 때문에 취재진도 이번엔 일단 사실 여부 확인에 나섰는데요, 다행히 10분도 안 돼서 봉천동 한 모텔에서 신 전 사무관이 발견됐고,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소식이 경찰들로부터 전해졌습니다.
-잘못된 소식보다도 더 큰 문제는 많은 언론의 팩트체크 없는 무분별한 보도였습니다. 처음 동명이인이라는 잘못된 소식이 전해진 직후 여러 언론이 앞다퉈 속보로 해당 내용을 다뤘고요, 이외에도 확인되지 않은 관련 정보들이 메신저 등을 통해 돌 때마다 그걸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들이 많았습니다.
-저희도 분명 주의해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가짜뉴스,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너무나도 쉽게 확산하는 것 같습니다. 신 전 사무관 폭로 건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국회 운영위 참석한 임종석·조국, '정치인'과 '학자'의 차이
-지난해 마지막 날 자유한국당의 강력한 요구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했죠. 15시간가량 여야의 공방을 벌이며 결국, 해를 넘겼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변죽만 울렸다', '결정적 한 방 없었다'. 오죽했으면 유력 보수매체에서도 이번 운영위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실제 네 차례 정회하며 장시간 회의가 진행됐는데, 고성·호통만 난무하고 별 소득은 없었습니다. 한국당의 공격은 대부분 이미 언론을 통해 나왔던 김태우 전 특감반원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선에서 그쳤고, 새로운 공격은 근거가 빈약해 역풍을 맞기도 했습니다. 회의를 지켜보던 취재진 사이에서도 "답답하다"는 말과 함께 한숨이 자주 나왔습니다.
-중간에 회의장을 떠난 의원도 있었다고요?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윤 의원은 온종일 비슷한 말만 되풀이되고, 민주당과 한국당 의원들이 고성까지 주고받으며 다투자 답답한 표정과 함께 한숨을 자주 내쉬었습니다. 그러다 오후 7시께 이철희 민주당 의원과 질의 순서까지 바꾸며 짧게 마지막 발언을 한 뒤 회의장을 나갔습니다. 그의 마지막 발언은 "지금도 75m 굴뚝 상공에 노동자 두 분이 있다. 목포로 지금 가야 한다"고 시작해 "이번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가 다시 한번 혁신을 다듬는 계기가 되길, 우리 모두 송구영신 하십시다"로 마무리됐습니다(웃음).
-임 실장과 조 수석의 차이를 보여주는 일도 있었다고요?
-임 실장은 국회의원 출신에 서울시 정무부시장까지 지낸 운동권 출신 '정치인'입니다. 반면 조 수석은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청와대에 입성한 전형적 '법학자'입니다. 이 차이는 운영위에 임하는 표정, 태도 등에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당시 한국당 의원들은 언성을 높이며 질문을 쏟아내고, 임 실장과 조 수석이 답변을 하려면 말을 못 하게 막거나 호통을 치기도 했는데요. 이런 자리가 불편했는지 조 수석은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추궁 받을 때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또, 조 수석은 정회 때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하지만 임 실장은 달랐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듯 타이밍을 잘 잡아서 본인이 할 말도 적절히 하고, 조 수석에게 질의가 집중되면 "의원님, 제가 답해도 되겠습니까"라며 그를 보호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점심 식사를 위한 정회 때는 한국당 소속 운영위 위원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악수하며 밝은 표정으로 인사와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해 노련한 정치인의 풍모를 보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불편한 자리였을 텐데, 정치인과 비정치인 출신이라는 점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 낸 것 같네요. 정쟁과 고성이 일상인 우리 정치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384일 만에 석방된 우병우, 대형 '안개꽃' 받은 사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3일 오전 0시에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됐습니다. 석방 현장에서 우 전 수석이 선물을 하나 받았다고 하던데, 무엇입니까?
-네, 우 전 수석은 1심에서 총 4년의 징역을 선고받은 상황이지만, 구속기간 만료로 이날 석방됐습니다. 최종 결과는 3심 결과까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우 전 수석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우 전 수석의 석방 소식에 서울구치소 앞에는 일찌감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보수 지지자들. 일명 '태극기 부대'가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손에 '애국열사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석방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우병우 힘내라", "조국, 임종석을 감방에 보내야 한다" 계속해서 외쳤습니다. 또 한 여성은 우 전 수석을 위해 대형 안개꽃을 준비해 전하기도 했습니다.
-안개꽃의 꽃말은 '슬픔', '사랑의 성공', '약속', '간절한 마음', '깨끗한 마음' 등입니다. 아마도 우 전 수석의 수감 생활, 또 앞으로의 재판 과정 등을 애도하고 또 응원하기 위한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재밌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도 지지자들에게 안개꽃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앞서 지난 2013년 11월 민주당 의원이던 시절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과 관련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때 지지자들은 출석하는 문 의원에게 안개꽃 다발을 건넨 바 있습니다.
-그렇군요. 상황은 다르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자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은 다 같나 봅니다. 우 전 수석이 꽃다발을 받았나요?
-네, 받았습니다. 우 전 수석은 나오면서 '심경이 어떻냐' 등 취재진 질문엔 답하지 않은 채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안개꽃 다발이 불쑥 들어오니 깜짝 놀라면서 받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볼 땐 조금 마지못해 받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웃음).
-극보수 지지자들의 열렬한 지지가 어쩌면 우 전 수석에게도 조금은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우 전 수석 재판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도 한번 주목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새해입니다. 올해는 정치권에서 안 좋은 소식보단 좋은 소식들만 들리면 좋겠습니다. 경제도 어렵고, 살아가기는 퍽퍽하기만 합니다. 부디 정말 '사람이 먼저'되고 국민들이 행복한 기해년 됐으면 좋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방담 참석 기자 = 이철영 팀장, 허주열 기자, 신진환 기자, 이원석 기자, 박재우 기자, 임현경 기자, 문혜현 기자(이상 정치플러스팀), 임영무 기자, 이새롬 기자, 배정한 기자, 이덕인 기자, 임세준 기자(이상 사진영상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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