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엄중 경고→시정 조치 오락가락 해명 혼선 부추겨
[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검찰 수사관인 김태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반원이 민간인 사찰 등 잇단 의혹을 제기하면서 청와대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김 수사관은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의 비위 첩보를 보고했다가 미움을 사 쫓겨났다고 주장하며 청와대와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말 정국에 경제 정책 강화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는 김 수사관의 주장에 반박하며 악재 수습에 여념이 없는 모양새다. 청와대 안팎이 시끄러운 와중에 비위 논란이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번지면서 '김태우 파동'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 김 수사관의 잇단 의혹 제기…靑, 반박
우선 김 수사관은 최근 일부 언론에 제보를 통해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의 금품 수수 의혹을 비롯해 전 총리 아들의 사업현황, 전직관료의 비트코인 투자 현황, 환경부 장관 감찰, 민간은행장, 민간기업인 공항철도 감찰 등 민간인을 대상으로 정보 수집하거나 첩보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김 수사관이 작성한 첩보 보고서 목록과 주장을 근거한 내용이 보도됐다.
청와대는 김 수사관의 주장을 완전히 부정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8일 정례브리핑에서 청와대 특별감찰반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는 국정농단 사태의 원인을 단 한시도 잊은 적이 없고,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나아가 김 수사관의 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김 대변인은 김 수사관의 주장을 연일 보도하는 <조선일보>를 겨냥해 "어느 언론이 특감반의 활동 내용 가운데 문제를 삼고 있는 시중 은행장 비위 첩보의 경우를 이 요건에 비춰보자"면서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특감반원이 임의로 수집했고, 그나마 보고를 받은 (감찰)반장이 감찰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판단해 바로 폐기했다. 정치적 의도나, 정치적으로 이용할 목적이 개입하거나 작동한 적이 전혀 없으며, 정부 정책 반대 인사 등 특정인을 목표로 진행한 것도 결코 아니"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청와대는 김 수사관의 주장에 반박을 이어갔다. 김 대변인은 노무현정부 인사들의 가상화폐 소유 여부 조사와 관련해서 "이 언론은 또 가상화폐 대책 수립 과정에서의 기초자료 수집도 민간인 사찰인양 보도했다"면서 "왜곡이다. 반부패비서관실은 국가 사정 관련 정책 수립이 고유 업무"라고 말했다.
앞서 청와대는 김 수사관이 민정수석실에 보고했다고 밝힌 전직 총리 아들, 은행장 등의 첩보는 감찰 범위를 벗어난 '불순물'로 보고, 데스킹(편집 여과·삭제 과정) 과정에서 불순물을 폐기했다고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본연의 업무에 해당하는 첩보만 수집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다양한 종류의 첩보, 또 불분명한 내용이 함께 묻어서 들어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무관(1차)→특감반장(2차)→반부패비서관(3차)의 데스킹 과정을 거쳐 '불순물'을 걸러내고 그 본연의 업무에 해당하는 것만 민정수석에게 보고된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우 대사 동향과 관련해선 내정 이전인 8월에 이뤄져 감찰 대상 자체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특별감찰 대상은 관계 법령에 '대통령이 임명하는 사람’으로 정해져 있다'는 법령을 근거로 들었다. 또 김 수사관이 주장한 '전직 총리 아들', '민간 은행장' 등 첩보 보고서는 불순물에 해당돼 이 내용은 데스킹 과정에서 폐기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김 수사관의 첩보가 감찰 범위를 넘어 당시 엄중 경고했다고도 했다.
김 대변인은 "비위 혐의로 현재 감찰이 진행 중이고, 수사로 전환된 전직 특감반원이 자신의 비위 혐의를 덮기 위해서 일방적으로 주장한 내용"이라며 "전직 특감반원 김 수사관은 이미 2018년 8월에 부적절한 행위로 경고를 받은 바 있고, 이번에 새로운 비위 혐의가 드러나 복귀한 것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김 수사관의 첩보는 사정 책임자인 조국 민정수석에겐 보고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김 수사관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으로부터 우 대사 관련 건이 조 수석에게 보고가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 측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조 수석에게 보고가 올라갔느냐 여부가 이번 파문의 향배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법령에 규정된 감찰 대상 외 첩보 보고서가 조 수석에게 올라갔거나 조 수석이 지시했다면 정부 차원에서 민간인 사찰이 이뤄졌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청와대의 오락가락 해명, 논란 키워
박근혜 정부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촛불 집회'로 확인된 만큼 '적폐 청산'을 기조로 내건 문재인 정부는 민간인 사찰 의혹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청와대는 김 수사관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반박하며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그런데 청와대의 해명이 오락가락하면서 논란의 불씨를 더 당겼다. 특히 우 대사의 금품 의혹 수수와 관련해선 모순된 해명을 내놔 오해 소지를 키웠다. 일부 언론은 우 대사가 과거 건설업자 장모 씨로부터 채용 청탁과 함께 1000만 원을 받았고, 2011년 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측으로부터 검찰 수사 무마 대가로 1억 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김 대변인은 지난 15일 우 대사의 금품 수수 의혹과 관련해서 "민정수석실은 김태우의 첩보 내용과 우윤근 측의 변소 및 소명자료, 과거 검찰수사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첩보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특히 과거 검찰수사 내용이 판단의 중요한 근거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 대사의 금품 수수 의혹을 검찰이 정식으로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는 "인사 라인은 자체 조사 결과 첩보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 인사 절차를 진행했다"며 애초 밝혔던 검찰 수사 결과가 아닌 자체 판단으로 뒤늦게 밝혀지면서 오히려 사태가 악화됐다.
'기억'에 의존하는 점도 혼선을 부추기고 있다. 비위 의혹이 불거지며 김 수사관의 휴대폰은 포렌식(디지털 증거 분석)을 과정을 거쳤지만, 사용했던 컴퓨터는 포맷(초기화)돼 내용이 남아 있지 않다. 김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김 수사관의 휴대전화만으로 충분히 비위 관계에 대해 조사할 수 있었고,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컴퓨터는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또 "청와대 어느 직원이든지 업무를 보다 복귀할 때는 사용하던 컴퓨터를 새로 포맷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에 기록이 없다"고 했다.
때문에 청와대는 민정수석실과 감찰반장 등의 기억에 의존해 해명해 나서면서 관련 내용의 말을 바꾸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비추고 있다.
그 예로 청와대는 전날 오전 브리핑 때 전직 총리 첩보 건에 대해 김 수사관이 올린 첩보가 아닌 다른 특감반원이 올린 것이라고 했으나 오후 김 수사관이 올린 게 맞다고 정정했다. 또 은행장 동향 보고 등 민간 감찰로 여겨질 만한 정부를 수집했다며 감찰 범위를 넘어선 김 수사관에 대해 '엄중 경고'했다고 밝혔다가 '시정 조치'를 지시했다며 말을 바꿨다.
김 대변인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기억에 의존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다 보니 혼선이 있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오로지 '기억'에 맡기고 있어 향후 논쟁의 소지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의 주장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가 이미 상위 보고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폐기됐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김 수사관에게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김 대변인은 "김 수사관은 청와대 보안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17일 법무부에 추가로 징계요청서를 발송했다"며 "나아가 대상자의 행위는 징계 사유일 뿐만 아니라 형사처벌 대상이므로 법적 조치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 수사관은 지인이 연루된 사건의 진척 상황을 경찰에 캐묻는 월권 혐의와 건설업자 A씨로부터 이른바 '스폰서 접대' 등의 혐의로 검찰의 감찰 조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