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석학' 제프리 삭스, 28일 국회서 '포용적 성장' 위한 제언
[더팩트ㅣ국회=임현경 기자] "제가 교수니까 여러분께 과제를 드리겠습니다. 물론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한국은 언제나 '놀라운 성장과 업적을 이뤄온 나라'니까요."
세계적인 석학이 국회와 정부를 향해 '어려운 과제'를 내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이를 듣던 국회의원들은 허허 웃으며 목표 달성을 다짐했다. 28일 오후 4시 국회 본청 귀빈식당에서는 '제프리 삭스 교수에게 듣는 포용적 성장과 한국 경제' 강연회가 열렸다.
이날 강단에 선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로, 하버드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29세에 하버드대학 최연소 정교수가 됐다. 미국 포린 폴리시가 뽑은 '세계 100대 지식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래리 서머스·폴 크루그먼과 함께 '애덤 스미스·존 메이너드 케인즈·칼 마르크스를 잇는, 3대 경제학자'로 불린다.
삭스 교수는 1986년부터 1990년까지 볼리비아 대통령 자문을 맡는 동안 4만%에 달했던 물가상승률을 10%대로 안정화하는데 성공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국내에서는 저서 '빈곤의 종말', '공동의 부' 등과 함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당시 특별자문관으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삭스 교수는 "정부와 국회가 당면한 두 가지 도전 과제가 있다. 하나는 국내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달성을 위해 국가 정책이 이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국이 국제적인 차원에서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삭스 교수는 "교육 수준이 높고 기대 수명이 길며 식습관이 매우 건강하고 의료시설까지 훌륭한 이 나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역 중 하나는 바로 '성평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에 와서 여성 의원들을 많이 뵙지 못했고, 기득권층에서도 여성을 많이 볼 수 없었다"며 "20% 정도로 알고 있는데, 50%가 아니지 않느냐. 이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남녀임금격차도 큰 것으로 알고 있다. 남녀평등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삭스 교수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 시간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며 1인당 1년에 200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 현황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국가"라며 "미국은 덴마크·독일·스웨덴 등보다 100시간을 더 일하는데, 한국은 미국보다 100시간 더 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굉장히 높은 편이지만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는 57위를 기록했다"며 "한국은 '너무 열심히' 일한다. 1년에 1300시간 정도를 일하는 독일은 휴가를 많이 즐긴다고 하니, 우린 이 점을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고 다른 누구는 노동시간을 길게 유지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전체적으로 근로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삭스 교수는 환경 보호, 특히 지구 온난화에 대한 정부 차원에서의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그는 "오늘 아침 인천에서 창밖을 보니 온통 회색이었다. 대기 질이 나쁜 날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세계적인 문제지만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경제는 석탄과 석유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며 "한국은 아직 국가적으로 행동 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분기별로 지표 기반 보고가 이뤄져야 하며 구체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35년 동안 한국을 방문하면서 몸소 체험한 바로는, 국가가 어떤 목표를 수립한다면 그 목표를 반드시 달성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대한민국은 '성취의 전문가'"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삭스 교수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한 인근 국가와의 협력과 함께 북한을 비롯한 빈곤국을 위한 개발 원조 비용 확대를 요청했다. 그는 "한국은 빠른 속도의 성장과 빈곤 극복이라는 독보적 경험을 활용해 세계에 기여할 수 있다"며 "현재 개발 원조에 편성된 예산은 한국 전체 소득의 0.1%에 불과하다. 적어도 0.7~1%로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이건 세금의 문제다. 세수를 늘려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있겠지만 한국은 사실상 세금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다." 삭스 교수는 지속가능한 개발과 포용적 성장을 위해서 '증세'가 필수적이라고 봤다.
그는 "소득을 균등하게 배분하고, 빈곤층을 돕고, 신기술의 투자를 확대하고, 북한과 더욱 긴밀한 협력을 진행하고, 개발 원조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 예산이 필요하다"며 "이것은 국가 경제 전략에서 불가피한 일"이라 주장했다.
이어 "북유럽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내는 나라인 동시에 가장 평등한 나라다. 세수를 통해 복지정책을 펼칠 수 있고 교육, 육아, 노인,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 무수한 지원을 할 수 있다"며 "한국 정부도 앞으로 15년을 바라보며 현실적으로 재정 변경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 조언했다.
한편, 문희상 국회의장,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정성호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등 주요 정치 인사가 이날 행사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헌재 재단법인 여시재 이사장은 이를 두고 "그동안 여러 모임을 마련해왔는데 오늘같이 많은 의원들이 연말 예산으로 바쁜데도 불구하고 이런 관심을 보내주시기는 처음"이라며 "그만큼 우리가 처해있는 경제가 엄중하고 어렵기 때문에 (의원들이) 우리나라 미래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해서 이렇게 시간을 내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날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위험으로 인식되는 불평등에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정상 삭스 교수의 강연을 듣지는 못했으나, 자리를 떠나기에 앞서 축사를 통해 포용적 성장을 위해 직면한 문제들을 언급했다.
문 의장은 "현재 한국 경제는 불평등, 양극화, 고용악화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며 "제프리 삭스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이 소외된 계층을 생산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우리나라 역시 정책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사회가 맞이할 미래는 성장, 분배냐를 택일하던 과거의 경제정책으로는 대응할 수 없을 것"이라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