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의원님들, 이렇게 하시면 초선으로 끝나요"

1970년대생 민주당 7080세대 의원 9명은 19일 시민평의회를 개최하며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강병원·강훈식·김병관·김해영·박용진·박주민·이재정·전재수·제윤경 민주당 의원이 무대에 올라 인사하는 모습. /합정=임현경 기자

더팩트ㅣ합정=임현경 기자] "힘없는 것도, 당에서 말발 안 먹히는 것도 알아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초선으로 끝날 수도 있어요." 19일 한 당원의 따가운 일침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진땀을 흘렸다.

민주당 소속 70년대생 의원 9명(강병원·강훈식·김병관·김해영·박용진·박주민·이재정·전재수·제윤경)은 이날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합정 프리미엄라운지에서 '서태지 세대 모여라!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시민평의회 중구난방'을 열었다.

강병원 의원은 참여 의원들을 '독수리 9남매' 또는 '응칠(응답하라 7080)세대'라 부르며 남다른 우애를 드러냈다. 그는 "꼭 결론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가 이 자리에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며 "저희 세대가 우리 대한민국을 이끌기 위해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윤경 의원은 "우리 정치 시계가 전반적으로 늙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70년대 턱걸이인 71년생 의원이 여기 4명이나 된다"며 "나이가 들었다고 리더를 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정치를 제한할 순 없겠지만, 다양한 세대가 정치를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데에 저희가 가교 구실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우리 세대는 정치에서의 허리 세대의 역할을 부여받았다"며 "우리 후배 세대들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무대에서 인사를 마친 의원들은 시민들이 둘러앉은 9개의 원탁으로 각각 흩어져 시민들과 토론을 벌였다. 토론 진행은 의원이 아니라 사전 신청을 통해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회의나 교육 따위의 진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돕는 역할)를 자처한 시민들이 맡았다. 현장에 모인 모두가 토론 주제나 발언 순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함께 사회 문제와 대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이날 행사 중 원탁에서 진행하는 시민평의회 방식은 박주민 의원이 제안한 것이다. 박 의원이 이날 토론에 참여한 모습. /임현경 기자

좁은 공간에 저마다의 목소리가 소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서로 얼굴을 아주 가까이하지 않으면 주변 소음에 묻혀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주제는 총 세 가지로, 의원들은 한 가지 주제의 토론이 이뤄지는 15분 간격으로 서로 자리를 바꾸며 새로운 조원들과 마주했다.

의원들은 '중구난방'이라는 행사 이름처럼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토론에 임해 즐거움을 더했다. 시민평의회 방식을 제안했던 박주민 의원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김해영 의원은 진지한 토론에 몰두한 나머지 제한 시간을 넘긴 뒤에도 한참 자리를 이동하지 못했고, 전재수 의원은 "다른 의원들이 잘하고 있나 감시하는 것"이라 너스레를 떨며 회장 안을 유유히 돌아다니기도 했다.

격정적인 토론을 마친 뒤에는 발표와 함께 의원들을 향한 따끔한 지적이 나왔다. 자신을 당원이라 밝힌 한 시민은 "지금처럼 하시면 초선으로 끝날 수도 있다"며 "힘이 없는 것도 안다. 당에서 말발이 안 먹히는 것도 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전재수 의원은 "선거에 3번 떨어지고 이번에 겨우 붙었는데, 초선으로 끝내라니"라며 좌절해 웃음을 자아냈다. 강훈식 의원은 "여러 번 떨어져 겨우 붙은 사람에겐 너무 무서운 말이다. 한 번 선거에서 떨어지면 거의 사람이 아니게 된다"며 "그래서 전재수는 거의 신적인 존재다. 다들 초선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할 것"이라 답했다.

전재수 의원은 좀처럼 자리에 앉지 못하고 의원들 감시를 하겠다며 돌아다녔다. 전 의원이 토론 중인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김병관 의원은 "정부 부처 중 가장 예산이 적은 곳이 여성가족부인데, 국회는 그보다 더 적다"며 "모든 국민을 대변하지 못하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런 의원들을 강하게 질책하되 모든 의원을 싸잡아 비판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용진 의원은 국회의원 한 명이 수백억 원의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뭐 하는 게 있어서 의석수를 늘리려고 하냐'고들 하시는데, 의원 한 명이 국정감사 등에서 몇백억 몇천억을 아낄 수 있다"며 "의원 수를 더 늘려서 많은 피감기관을 쪼개고 들여다보는 게 필요하다. 예를 들면 박용진은 계속 유치원만 보는 것"이라 설명했다.

의원들은 소통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더욱 활발한 의정활동을 약속했다. 한 당원은 "여러분들이 3선, 4선까지 하는 게 바람"이라며 "초선의원들에게 입 다물라고 한 쓰레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기죽지 말고 초선답게 들이받으면서 나라를 바꿔주셨으면 한다"며 응원했다. 이에 박주민, 강병원 의원 등이 "머리를 맞대 열심히 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재정 의원은 "사실 저희도 소통에 목말랐다"며 "초선의원은 트위터에 글 하나 쓰는 것도 너무 어려울 만큼 시간이 없다. 일을 안 한다고 하시는데, 일한 것을 말씀드리는 소통이 부족한 측면도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초선의원으로서 국회 내 문제점을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여러분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다음에는 그런 이야기를 할 기회도 있기를 바란다"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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