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사립유치원 파문 왜? <중>] "아무도 그 죄를 묻지 않았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 전국 사립유치원 관계자들이 지난달 30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 대토론회에 검은색 옷을 입고 참석하고 있다./고양=임세준 기자

사립유치원 원장이 교비로 명품백도 모자라 성인용품까지 구입한 사실이 세간에 알려졌다. 이처럼 부당하게 교비를 유용한 사립유치원 명단이 공개되며 파문이 일고 있다. 유치원에 아이를 보낸 부모들은 일부 원장들의 일탈에 큰 충격을 받았고,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명단 공개에 항의하며 휴원, 폐원 등의 카드를 다시 꺼내 드는 모양새다. 파문이 확산하자 정부, 교육청, 국회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번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는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관계기관이 화를 자초한 성격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에 <더팩트>는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와 관련한 정부, 한유총, 국회 등을 통해 문제의 발단과 대안을 총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비리 유치원 논란, 아이 볼모 잡은 어른의 민낯 (feat. 이익집단)

[더팩트ㅣ임현경 인턴기자] "이들이 지금까지 수많은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동안 아무도 그 죄를 묻지 않았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지난달 30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를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 고발하며 이같이 밝혔다. 해당 단체는 이날 "한유총 회원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영리만을 수호할 목적으로 정부의 복리후생 조치인 국공립유치원 확충, 재정투명성 보장 등을 막기 위해 공청회나 토론회 등을 폭력적인 수단으로 상습 방해했다"며 고발장을 제출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달 30일 오전 한유총을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 고발했다. 정치하는 엄마들 관계자가 이날 고발장 제출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고발장에는 한유총이 △제2차 유아교육발전 5개년 기본계획 3차 세미나(2017년 7월 21일, 교육부 주최) △제2차 유아교육발전 5개년 기본계획 4차 세미나(2017년 7월 25일, 교육부 주최) △유치원 비리근절 정책토론회(2018년 10월 5일, 교육부·서울시교육청·경기도교육청·인천시교육청·박용진 의원실 주최) △사립유치원 재무·회계 규칙 제정 공청회 등 총 4개 공무행사를 방해했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장하나 공동대표는 "평범한 학부모와 시민들이 정부 주최 토론회를 무산시키려 했다면 아마 현장에서 연행됐을 것이다"며 "한유총의 그동안의 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을 학부모의 이름으로 알리려고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한유총의 생떼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약 270억원대 비리를 저지른 전국 1878개 유치원들을 실명 공개한 이후 관심의 대상이 된 한유총은 지난 1995년 창립된 이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익집단(단체)으로 군림해왔다. 회원들로부터 연회비와 각종 명목의 회비를 받아 마련한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각종 정치적 로비를 하며 불리한 제도를 반대하고 육아 교육의 공공화를 지연시키는 등 적극적인 이익 활동을 펼쳤다.

지난달 30일 한유총 주최 토론회에 참석한 인원만 4000명이 넘을 정도다. 전국사립유치원의 60% 이상이 가입돼 있으며 사립유치원에 불리한 제도를 반대하고 유아 교육의 공공화를 지연시키는 대표적 단체로 꼽힌다. 지난달 5일 사립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한 대안마련 국회 토론회를 파행시켰던 한유총 관계자들은 지난달 31일 열린 같은 성격의 토론회에는 초청을 받고도 불참함으로써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했다.

한유총은 박용진 의원이 발의한 △유치원의 투명한 회계시스템 의무화 △유치원 셀프 징계 차단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전환 △학교급식 안전 관리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3개의 법안에 대해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유치원 운영에 현격한 피해를 초래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유총은 그간 집단 휴원을 협상 카드 삼아 요구사항을 관철시켰다. 최정혜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이사장 등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 전국 지회장들이 지난해 9월 휴업 철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한유총의 '민낯'1-위기의 순간 꺼내드는 '집단 휴원'…"아이들 갈 곳이 없다"

한유총을 비롯한 유아 교육 관련 이익집단이 가진 영향력의 원천은 '집단 휴원'이다. 교육당국은 유아 교육권을 침해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지만, 사립유치원 측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주장하며 매번 휴원 또는 폐원을 협상 카드로 삼았다.

사립유치원 취원율이 75% 이상인, 학생 수용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사립유치원이 단체로 휴원을 한다면 대다수의 아이들은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된다. 정부는 그간 이를 막기 위해 협상에 응했고, 사립유치원은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사립유치원의 집단행동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 2002년 '단설유치원 신설 반대 운동'을 전개했던 때다. 이후 사립유치원은 2004년 영유아교육법이 아닌 유아교육법 제정, 2010년 곽노현 서울교육감의 1동1공립유치원 공약 반대 등 크고 작은 사안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2012년 누리과정이 도입된 뒤에는 보다 엄격한 감사와 투명한 회계 운영을 요구하는 정부에 거세게 반발했다. 2016년 1월에는 누리과정 지원예산 복원을 요구하며 경기도의회를 점거했고, 6월 전국 사립유치원 3500여 곳이 집단 휴원을 예고하며 재정 지원 확대를 주장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급식·간식비, 교재재료비, 차량운영비, 특별활동비 등 사립유치원의 수혜성 경비 관련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휴원은 철회됐다.

한유총은 지난해 9월 집단 휴원을 추진했으나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실행하지 못했다. 이후 국회 정론관에서 '휴업 철회 기자회견'을 열며 국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당시 휴원은 불발에 그쳤지만, 학부모는 사립유치원들이 휴원을 입에 올릴 때마다 불안에 떨어야 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지난달 16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에 대해 "집단휴업 행동은 정부를 압박하려는 수준을 넘어서 선택권이 없는 부모들을 인질로 삼아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관철시키려는 협박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립유치원 이익집단 관계자는 업계, 학계, 정치계에 진출하며 사회적 파급력을 갖는다. 석호현 전 한유총 회장이 지난 2014년 경기도육감 예비후보로 나선 모습. 그는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경기 화성시장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뉴시스

◆ 한유총의 '민낯'2-교사 양성부터 정책 연구까지 개입, 정치권 진입 인사도 여럿

한유총은 '더는 집단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동렬 한유총 비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토론회에 참석하며 "오늘 이 자리는 사립유치원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정확히 뭔지 법리적으로 알려드리고, 회원들이 어떤 상태에 처해있는지 살펴보는 행사다. 단체 행동은 없을 것"이라 선을 그었다.

지난달 26일 취재진이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유총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에도, 한유총 관계자는 "이제 거의 죽은 단체라고 보면 된다. 다 떠나고 각개전투 하기에도 바쁘다"고 주장했다. 최근 단체에 쏟아진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했다.

그러나 '집단 행동'이 아니더라도 한유총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익집단에 소속된 개인 중에는 인재 양성기관(대학교)의 교육자나, 관련 정책을 연구하고 제언하는 학자도 다수 있다. 이들은 교사 양성에서부터 학문적 제언, 정책 연구에 이르기까지 유아 교육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유아교육계 출신이 정치권에 직접 진출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부산유치원연합회 회장과 전국유치원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했던 현영희 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이 있다. 현 전 의원과 함께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류지영 전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유아교육인협회 대표를 맡은 바 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광역·기초의원 가운데 14명이 전·현 사립유치원 원장·설립자, 47명이 민간어린이집 원장·설립자였다. 석호현 전 한유총 회장은 당시 경기 화성시장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익명의 한 업계 종사자는 "사립유치원을 운영 중인 한 유아교육과 교수가 '이번 사립유치원 사태로 인해 내년부터는 만3세 유아를 받지 않을 것이며, 사립유치원이 문을 닫으면 너희(학생)들도 일자리가 없어진다' 발언했다고 한다"며 "교육자로서 반성은커녕 학생들을 선동하는 모습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유치원 교사들은 비리를 가까이서 목격하면서도 섣불리 고발할 수 없었다. 사진은 비리 유치원과는 무관. /임현경 인턴기자

◆한유총의 '민낯'3- "찍히면 다신 발 못 들여" 비리 눈앞에 있어도 '두눈 질끈'

사립유치원 관계자가 모든 방면에 두루 손을 뻗은 업계 특성상 내부고발도 쉽지 않다. 전직 유치원 교사 A씨는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두고 볼 수가 없어 퇴직을 결심했다고 했다.

A씨는 "정작 교사들에겐 제대로 된 추가 근무수당도 주지 않고 저녁 식대는 컵라면으로 때우도록 하면서, 출근조차 하지 않는 설립자와 관계자에게 몇백만 원씩 돌아가는 모습이 마냥 지켜보기 불편했다"며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무력함과 패배감에 휩싸였다. 일개 교사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없었기에 사립유치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며 씁쓸히 말했다.

A씨는 "내부의 실상을 알면서도 그간 모두가 쉬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라며 "원장님들 사이에서 블랙리스트가 도는데, 명단에 오르는 업계에 다시는 발을 들일 수 었다. 일을 그만 두거나, 눈을 감거나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심증은 있으나 물증 확보가 어렵기도 하다. 회계 담당이 아닌 일반 교사가 증거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며 "어느 원장님께서는 교사들에게 대놓고 '내부고발자만 조심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미흡한 것 또한 문제"라며 "내부고발로 소중히 여겼던 직업을 잃게 되면 누구도 개인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실습생 때는 물론, 교사로 일하면서 보고 들은 유치원의 비리는 일부의 문제라고 하기엔 너무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A씨는 "물론 좋은 유치원도 있을 것이다. 원장님의 교육철학,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그 마음은 잊을 수가 없다"면서도 "그러나 지금과 같이 학부모님들의 돈과 정부지원금이 사리사욕으로 인해 기름낀 돈으로 변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유총은 작금의 세태를 모두 제도 탓으로 돌려 여론의 분노를 샀다. 이덕선 한유총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지난달 29일 국회 교육위 종합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모습. /이덕인 기자

한유총은 이러한 작금의 문제가 '극히 일부의 잘못' 또는 '제도 미비로 인한 부작용'으로 주장하며 사적재산권 보장과 사립유치원 별도의 재무회계규칙을 요구하고 있다.

이덕선 한유총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국회 교욱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교비를 잘못 사용한 건 뼈저리게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법규가 마련되지 않으면 다음 번에도 똑같을 것"이라 말했다. 누리과정 지원 제도가 공적 요인과 사적 요인을 구분짓지 않아 저지른 '실수'가 '비리' 누명을 씌웠다는 것이다.

사립유치원 원장들 사이에서는 "정부와 언론이 지나치게 '좌편향' 됐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달 30일 한유총 주최 토론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학부모에게 교비로 받은 돈은 개인 사업으로 인한 소득이기 때문에 어떻게 사용하든 문제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전남 모 유치원 원장은 "공화당도 아니고, 정부에 따르자면 유치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동차 기름도 넣지 말아야 한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정은 합의안을 따르지 않을 경우 재정 지원에서 차등을 두거나 아예 배제하겠다는 방침을 세우며 강경 대응 의사를 표명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에 대해 "그동안 유치원을 어떻게 운영해왔다는 것이냐"며 "좌편향이 아니라, 무너진 공공성과 투명성 등 이미 한쪽으로 삐뚤어진 것들을 바로잡는 기회"라 반박했다.

박 의원은 "투명한 회계 제도 의무화, 공공성 강화, 급식 안전성 제고 등이 무슨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어 "사립유치원은 재정 지원 확대를 요청하고 있지만, 어떤 국민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은 관련 법안이 통과되고 이에 협조하는 등 깨진 부분이 고쳐지기를 바란다. 그럼 물을 부어주실 것이다"고 역설했다.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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