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 대정부질문서 묵직한 반격…'조용한 저격수'
[더팩트ㅣ국회=임현경 인턴기자] 추석 이후 재개된 대정부질문에서 자유한국당 집중 공세에도 이낙연 국무총리는 묵직하면서도 능청스러운 화법으로 공세에 맞섰다.
1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는 외교·안보를 주제로 한 대정부질문이 이뤄졌다. 이날 조명균 통일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여러 정부 인사들이 자리한 가운데 단연 인기는 이 총리였다.
각 당 의원들이 여러 정부 인사들을 고루 지목한 것과 달리, 한국당은 이 총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이 총리와 한국당 의원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 한국당에 차가운 '반문'으로 응수…"후배 목소리 들어달라" 토로
유기준 한국당 의원은 이날 질의자로 나와 이 총리를 지명했다. 유 의원은 "건국절이다 뭐다 역사를 바꾸는 일이 많이 있다"며 역사 왜곡을 지적하자, 이 총리는 "건국절은 저희쪽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고 답했다. 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지정해야 한다는 논의는 한국당 측에서 제기된 논의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지적한 셈이다.
유 의원은 심재철 의원의 압수수색에 대해 "이게 정부에서 말하는 공정한 수사고 적폐 청산이냐"며 "총리가 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총리가 "검찰이 하는 일에 총리가 관여했다 그러면 칭찬했겠느냐"고 되물었고, 의원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이 총리는 "정부는 북핵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북핵 폐기에 단 일보도 걷지 못했다"는 유 의원에게 9월 평양공동선언에 담긴 동창리와 영변 시설 폐기를 언급하며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또, 유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UN총회 연설을 두고 블룸버그통신이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고 했다"고 지적하자, "훨씬 많은 해외언론은 문 대통령의 역할을 높게 평가했다. 중재자를 넘어 '톱 리더', '문스 미라클(문 대통령의 기적)'이라 보도했다"라며 일부 언론을 부각한 지적을 맞받아쳤다.
같은 당 안상수 의원 역시 이 총리에 저돌적인 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이 총리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안 의원이 "문 대통령이 평양에서 보여준 언행은 헌법을 위반한 경우가 많다"고 말하자 이 총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그랬을까요?"라고 물어 안 의원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또,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의 최측근을 회의 시간에 졸았다고 처형할 정도로 잔인한 인물이다. 이 비정상적인 사람과 협상을 해서 되겠느냐"는 안 의원의 추궁에는 "그럼 뭘 해야할까요?"라고 반문했다. 이에 안 의원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얼른 화제를 전환했다.
이 총리는 베트남 통일 사례를 예로 들며 현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 정책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안 의원을 향해 "전임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이에 장안이 술렁였고, 안 의원은 "우리 총리님께서 대답은 참 잘하시는 것 같은데,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알면서도 저렇게 답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정양석 한국당 의원은 이 총리의 차가운 답변에 "4선 선배가 후배들의 말을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 총리는 "'사이다' 총리라면 청와대와 여당에도 쓴소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정 의원의 비판에 "비공개로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정 의원이 "국민들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고 반박하자 "일부러 들리게 하는 것이 총리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응수했다. 그러자 정 의원은 "그렇게 답변하심으로써 저의 말을 막으면 속이 시원하시냐, 4선 국회의원 선배로서 경청하는 자세 없이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사이다'냐"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 민주당과는 '캐미'…바른미래와도 '주거니 받거니'
이 총리는 여당 더불어민주당과 자연스레 문답을 주고받으며 정부 입장을 대변, 동시에 일부 보수 세력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지금 (이 시점에) 보도하면 참 좋을 것 같다"며 조선일보가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보도했던 통일 관련 기획 기사를 모아 화면에 띄웠다. 그가 "왜 지금은 이런 보도가 안 나오느냐"고 묻자, 이 총리는 "글쎄, 저도 지금 어리둥절하다"며 능청스럽게 답했다.
이 총리는 "통일을 이렇게 갈망했던 분들이 평화는 한사코 반대하시는가 잘 모르겠다"며 "여기(자료)에는 안 보이는데 '통일의 편익이 비용의 두 배쯤 될 것이다'는 제목의 기사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같은 당 박주민 의원도 보수 언론의 기획 기사를 언급했다. 그는 "조선일보는 박 전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 연설 이틀 전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를 시작, 총 243건의 기사를 연재했다"며 이 총리도 기사를 읽어봤는지 물었다. 이 총리는 "안 읽어볼 재간이 없을 정도로 크게 보도했다"고 말했다.
심재권 의원 또한 이 총리가 정부의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할 수 있도록 하는 질문을 던졌다. 이 총리는 심 의원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고, 심 의원 역시 이 총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총리는 심지어 야당인 바른미래당과도 이러한 '쿵짝'을 맞췄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변화된 북한의 사회상을 알리며 "우리 의원들도 그렇고 정부 기관도 남북관계에 대해 좀 알아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 총리는 "옳은 말씀이다. '북한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거의 화석화된 인식 체계가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하 의원에 동의했다.
이어 하 의원이 "그렇다. 북한은 안 변한다고 생각하니까, 변하는 걸 모르니까 계속 걱정만 하는 것이다"고 하자 이 총리는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야 말로 정말로 안 변하고 계신다"고 덧붙였다. 이에 하 의원은 "그렇다. 모르는 게 병이다"며 장단을 맞췄다.
이 총리는 "들어보니 친북 좌파 정부가 아니다. 제가 노동신문, 조선중앙TV를 자유롭게 보자고 하니까 굉장히 보수적으로 답하신다"는 하 의원의 말에 "네. 늘 국민과 함께하는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답하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한편 대정부질문은 이날 외교·통일·안보를 시작으로 2일에는 경제, 4일에는 교육·사회·문화 분야가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25~26일 고(故)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의 장례식에 참석을 위해 베트남에 방문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총리공관에 머물며 만반의 준비를 한 이 총리가 민감한 사회 현안이 산적한 이번 대정부질문에서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