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인턴기자의 3박 4일 취재기
[더팩트ㅣ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임현경 인턴기자]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은 18일부터 20일까지 2박 3일간 진행됐지만, 필자의 취재는 17일 오전부터 시작됐다. 프레스센터도 처음, 청와대 관계자 대면도 처음, 문재인 대통령의 실물을 본 것도 처음.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인턴기자에게는 잊을 수 없는 취재 경험이었다.
필자는 뉴스 밖 현장을 독자와 함께 느끼고 싶은 마음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3박 4일의 기록을 공개한다.
#소풍 전날 밤처럼
지난 16일 오후 '내일 DDP로 가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 위한 서울 프레스센터가 마련돼 있었다. 북한 평양에 가지 못한 기자를 위한 공간이다. 앞서 출입 기자 등록 절차를 할 때도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인턴이 거기에 가도 되나 싶었는데, 정말 가는 거였다. 밤늦게 침대에 누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몇 번을 뒤척거렸지만,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온갖 걱정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 망했다. 이러다 지각이라도 하면 큰일인데'라는 생각과 함께 의식이 끊어졌다.
#평양 아니라니까
17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 도착해 출입 기자를 증명하는 비표를 받았다. 목걸이 안에는 사진, 이름, 소속이 명시된 카드가 끼워져있다. 허술한 플라스틱 카드처럼 보이지만 출입문을 통과할 때마다 카드 소유자의 신상을 보안팀에 전달해 확인하게 하는 첨단(?)기술이 숨어있다. 센터 내부에선 무조건 비표를 착용해야 했고, 몇 번을 오가든 입장 시에는 감시 카메라를 통해 실제 얼굴과 목걸이 속 얼굴을 비교하는 절차를 거쳤다.
비표가 걸린 뒷목이 뻐근해졌다. 삼엄한 경비에 긴장되는 한편, 대단한 곳에 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걸이 일부분을 '인증샷'으로 찍어 SNS에 게시했더니, 돌아온 반응은 "너 평양이야?"였다. "평양이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올 때 평양냉면 포장해와", "평양 공기 어때" 등 짓궂은 농담이 이어졌다. 언젠가 오늘의 수모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평양에 취재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덕후는 계를 못 탄다더니
17일 오전 11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무대에 올라 남북정상회담 일정을 발표했다. 임 실장이 말문을 열자마자 메인프레스센터에 앉은 취재진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관련 속보가 쏟아져 나왔다. 그제야 그가 평양에 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덕계못('덕후는 계를 타지 못한다'의 준말로,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일수록 직접 그 현장에 있기 어렵다는 뜻)'이라 했던가.
누리꾼의 반응을 살피니 다들 임 실장의 '덕계못'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도 마찬가지였다. 리 여사는 19일 옥류관에서 열린 오찬 자리에서 "(판문점회담 만찬 당시) 제 옆에 임종석 비서실장이 앉았는데 너무 맛있다고 (냉면) 두 그릇을 뚝딱 (비웠다)"며 "오늘 못 오셔서 섭섭하다. 오셨으면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라고 말했다.
#자양강장제가 무료인 이유
18일, 본격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시작되는 날 아침이 밝았다. 출근하자마자 눈에 띄는 건 취재진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냉장고에 가득 채워진 자양강장제였다. 수험생 시절 잠을 이겨가며 공부했을 때, 대학교 시험 기간 벼락치기를 하면서, 뻗치기를 하고 집에 돌아가던 길에 사 먹은 그 자양강장제가 반가울 리 없었다. 저걸 먹어야 버틸 수 있는 일정이 시작됐다는 뜻인가. 엄습해오는 불안을 애써 누르며 얼른 한 병을 챙겼다. 이후 상황은 '최초·파격·깜짝'으로 수식하기에도 모자랐던 지난 2박 3일을 지켜본 독자들 역시 잘 아시리라 믿는다.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죄송한데, 인터뷰는 못 하겠어요"
19일 오전 남북 정상은 전날에 이어 추가 회담을 했다. 필자는 회담이 끝난 뒤에는 정신없이 바쁠 것을 예상하고 미리 밥을 먹으러 나왔다. 프레스센터 근처 식당에 자리를 잡고 막 주문을 마쳤을 무렵, "두 정상이 곧 합의문 서명식을 갖고 공동기자회견을 한다"는 속보가 떴다. 이렇게 빨리 끝나다니. 아직 음식이 나오기도 전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다 받아든 음식은 거의 맛만 본 뒤 버리게 됐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다시 메인프레스센터로 달렸다.
합의문 내용에 대한 외신 반응을 취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진작 회화 학원 좀 다녀둘 걸, 부질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용기를 내어 더듬더듬 짧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다들 합의문 관련 기사 작성, 내용 분석 및 보고, 후속 취재 등으로 바빴던 데다, 소속과 이름이 밝혀지는 인터뷰 특성상 언론사의 허락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저 멀리 훤칠한 외국인이 메인프레스센터 뒤쪽에서 노트북으로 열심히 업무 중인 게 보였다. 영락없는 기자였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결과는 또 거절. 이유를 묻자 갑자기 서툰 발음의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저 청와대 해외언론비서관실…" 청와대 관계자를 기자로 헛짚었던 것이다. 민망함에 "바쁜 시간 내줘서 고맙다"고 말한 뒤 얼른 센터를 빠져나왔다.
#국민소통수석의 '소통 울렁증'?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3박 4일 내내 프레스센터에서 취재진과 함께했다. 그는 매일 오전 9시와 오후 3시에 정례브리핑, 특별한 일이 생기면 불시에 특별브리핑까지 소화하며 평양 상황을 서울에 전달하려 노력했다. 문제는 브리핑 이후 질의응답이었다. 취재진은 대락적으로 알려진 일정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 또는 모호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질문했지만, 윤 수석은 "통신과 인력 문제로 저도 전달받지 못했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윤 수석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당장 알릴 정보가 없는 걸 알면서도 시간에 맞춰 무대에 올라야 했다.
윤 수석은 20일 오후 문 대통령이 평양 일정을 마무리할 때에 이르러서는 "저도 여러분만큼이나 궁금하다", "그 부분에 대해 아는 바 없다", "이 무대에 자주 서고 싶진 않았는데"라는 말과 함께 수시로 브리핑에 임했다. 필자와 마찬가지로 윤 수석을 처음 본 동료 PD가 "긴장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은데, 무대 울렁증이 있는 게 아니냐"며 걱정했다. "국민소통수석인데 지금 평양 소통을 요구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라고 답했더니, 동료도 "그런 것 같다"며 웃었다.
#어디서든 볼 수 있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20일 오후 윤 수석이 "문재인 대통령께서 6시 이후 이곳에 도착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을 직접 만나다니. 야근이 확정됐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사실 문 대통령은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침을 맞으러 간 한의원,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찾은 동네 허름한 식당, 광화문 근처 분위기 좋은 카페 등 어딜 가든 그의 사진과 사인이 걸려있다. 후보 시절 유세를 다니며 방문한 곳도 있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 찾은 곳도 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을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곧 그가 이곳으로 온다고 했다. 설렘 탓인지 긴장 탓인지 알 수 없었지만,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화양연화, 그 이후
"넌 한창 꽃이 피었을 때를 경험하고 있는 거야." 팀장이 방방 들떠있는 필자를 보며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청와대 출입 기자가 아닌 이상 청와대 관계자를 이토록 가까이서 만날 기회는 좀처럼 얻기 어렵다. 게다가 문 대통령이 눈앞에서 대국민보고를 하고, 자원봉사자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문 대통령이 회담을 마친 직후 프레스센터에 방문한 것은 4.27 판문점회담에서도 없었던 일이었다..
'화양연화(花樣年華)' 선배의 말에 이 네 글자가 떠올랐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도 한 화양연화는 꽃이 피는 가장 아름다운 때, 즉 '인생에서 가장 찬란히 빛나는 순간'을 뜻한다. 개인으로서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든, 어쩌면 지금이 생에 다시 없을 화려한 시기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꽃은 언젠가 진다'는 명제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선배에게 "지금 꽃이 피면 이제 질 일만 남은 게 아니냐"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돌아온 팀장의 대답 한마디는 모든 걱정을 기우로 만들었다.
"꽃 한 송이만 피우는 나무 본 적 있어? 한 그루 나무가 가지마다 꽃을 피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