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조작 사건에 대한 수사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주범 '드루킹' 김동원 씨와 공모 의혹을 받는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첫 대질 조사도 진행됐습니다. 김 지사와 특검·드루킹의 창과 방패의 대결과 지지자와 보수단체의 장외전이 후끈했습니다. 또 징크스는 깨지기 마련인데 아직 그때가 아닌가 봅니다. 바른미래당 당권에 도전하는 손학규 상임고문의 이야기입니다. '왕실장'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구속 만료로 석방됐습니다. 그러나 석방된 지 사흘 만에 재판 거래 의혹으로 검찰의 부름을 받았지만, 건강상 이유를 들어 불응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더팩트> 정치플러스팀과 사진기획부는 여의도 정가, 청와대를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의 속마음을 다루는 [TF주간 정담(政談)]코너를 진행합니다. [TF주간 정담(政談)]은 현장에서 발품을 파는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취재 후기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손학규 전 고문의 깨지지 않은 '손학규 징크스'
[더팩트ㅣ정리=신진환 기자] -최근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는 누가 뭐래도 '드루킹' 김동원(49) 씨의 댓글 조작 사건입니다. 특히 댓글 조작의 공모 의혹을 받는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지난 6일과 9일 두 차례 특검에 소환돼 김 씨와의 대질 조사를 받는 등 수사도 막바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경찰 인력이 대거 투입되는 등 특검 앞 소환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는데요, 이 소식부터 먼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김 지사와 '바람개비'
-지난 9일에는 김 지사가 '드루킹' 특검에 재소환돼 조사를 받았어요. 당시 상황이 정말 혼잡했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특검 사무실이 강남역 부근 대로에 있었는데, 평소에도 교통량과 오가는 사람들이 워낙 많은 동네입니다. 그런데 집회를 벌이는 김 지사의 지지자들과 보수단체 회원들, 취재진까지 더해져 인산인해를 이뤘죠.
-"김경수를 처벌하라"며 한목소리를 냈던 보수단체 내부에서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날 집회는 '대한민국 애국순찰단'(아하 순찰단)이 사전 신고한 것이지만, 대한애국당 관계자들도 함께 나와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대형 스피커에서 대한애국당 당가가 흘러나오자 순찰단 측에서 "지금은 특정 당을 위한 집회가 아니다"며 자제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대한애국당 측에서 수용하지 않았어요.
-순찰단 측은 경찰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에 질세라 아이돌그룹 빅뱅의 '삐딱하게' 노래를 틀더군요. 한쪽에선 당가가, 한쪽에선 지드래곤의 신나는 음악이 울려 퍼졌죠. 그 사이에 서 있던 취재진의 귀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특검 조사 현장이 아니라 록 페스티벌이었다면 참 좋았을 뻔했습니다.
-김 지사 지지자들은 현장에서 노란 바람개비를 들었다고요.
-노란 바람개비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의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묘소까지 가는 길에 노란 바람개비가 줄지어 서서 행인들을 맞이합니다. 김 지사는 지난 2011년 노무현재단에서 봉하사업부 본부장을 지내기도 했는데, 지지자들은 김 지사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이렇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보수 단체 회원들은 "미국에선 교도소에서 출소한 범죄자를 환영하는 의미로 노란 리본을 사용했다"며 "김 지사의 범죄 사실을 저들도 알고 있는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지지자들이 든 건 리본이 아니라 바람개비였지만요.
-보수 단체 회원들의 말은 사실인가요?
-노란 리본의 유래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건 4세기 때 만들어진 '그녀는 노란 리본을 둘렀다'라는 노래라고 합니다. 1600년대 초 유럽 청교도인이 미국에 이 노래를 전했고, 영국 시민전쟁 당시 청교도 군대가 '사랑하는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란 리본을 둘렀다는군요.
-특검이 송인배 청와대 정무비서관과 백원우 민정비서관도 곧 소환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데 청와대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청와대는 일단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만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고인 신분이더라도 현직 청와대 비서관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측근 인사가 검찰에 소환돼 수사를 받는 것 자체만으로도 야권 공세의 빌미를 줄 수 있고 최근 지지율 악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 '하필 이때…'손학규 울리는 '징크스'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이 바른미래당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죠? 이번에는 '손학규 징크스'가 없었나요?(웃음)
-왜 없었겠습니까(웃음). 이번에도 손학규 징크스는 여지없이 적중했습니다. 그 징크스는 손 고문이 출마 선언을 하거나 중요한 일정이 있을 때마다 큰일이 꼭 터져 항상 덮여버리고 만다는 건데요, 지난 2006년엔 손 고문 기자회견을 앞두고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2007년엔 손 고문이 한나라당 탈당을 선언했으나 한미FTA가 체결되며 묻혔습니다. 2010년 민간인 사찰 특검 요구를 위해 장외투쟁을 나갔는데 다음 날 북한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해 중단됐고, 전남 강진 만덕산 칩거 생활을 마치고 2년 만에 돌아왔으나 곧바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져버렸습니다.
-손 고문이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지난 8일, 삼성은 경제활성화와 신산업 육성을 위해 향후 3년간 180조 원을 신규 투자하고 4만명을 직접 채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두고 우스갯소리로 '손학규 징크스'란 얘기도 있었습니다. 손 고문이 정치적 결심을 한 날 이를 덮는 '대형 사건'이 불거진다는 것입니다. 손 고문의 출마 관련 기사는 오전에만 반짝 쏟아졌고 이후론 덮여버리는 형국이었습니다. 주변의 기자들은 삼성이 뿌린 보도자료를 확인하며 "역시 손학규다"라고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이쯤 되면 정말 과학인 것 같네요. 출마 선언할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요?
-참고로 손 고문은 출마 선언 현장에 사람이 많이 몰리기로 유명합니다. 골수 지지자들이 많거든요. 이날도 역시 국회 기자회견장이 지지자들로 꽉 들어찼습니다. 시끌벅적했고요. 그날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손 고문의 모습이 '참 여유로웠다'는 것입니다.
-사실 손 고문은 당선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거든요. 그 때문이었을까요. 손 고문은 평소보다 매우 여유롭게 기자들을 대했습니다. 대답하기 싫은 질문엔 "그런 얘기는 하지 말라"고 했고, 안심(안철수心) 논란 관련 질문이 나오자 "안심은 언론이 만든 거 아니냐"고 되려 묻기도 했습니다. 모든 순서가 끝난 뒤엔 '기자들과 악수는 나중에 합시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이란 '당선 후'를 뜻했던 것일까요. 그의 기대대로 결과가 나올지 한번 지켜볼 일입니다.
◆ 김기춘의 劍 소환 불응…경비 직원의 '원망'
-'블랙리스트', 즉, 반정부 성향 문화·예술단체 지원 배제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이던 김 전 실장이 지난 6일 구속 만료로 서울동부구치소를 나왔습니다. 난장판이 벌어졌지요?
-네. 그렇습니다. 지난해 1월 21일 구속된 이후 562일 만에 다시 세상으로 나왔는데요. 당시 출소 현장에는 그의 구속 해제를 격렬히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김 전 실장이 탄 차를 막고 앞 유리를 깰 정도로 격렬했습니다. 김 전 실정은 블랙리스트 재판 1·2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는데요, 항소심을 불복하고 상고하면서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출소한 지 3일 만에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재판 거래'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를 밝혀줄 핵심 인물로 김 전 실장이 꼽히고 있습니다. 김 전 실장은 9일 오전 9시 30분까지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라는 검찰의 통보에도 건강상 이유를 들어 불응했습니다.
-당연히 소환일에는 취재진이 검찰 청사 앞에서 김 전 실장을 기다렸는데요. 사실 이날 새벽께 불출석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라 나왔습니다. 그래도 청사 앞에는 수십 명의 기자가 진을 치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검찰 경비 직원 6~7명이 나와 차가 들어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날씨가 무더워서 이른 오전이라도 상당히 덥잖습니까? 그늘에 있어도 땀이 절로 날 정도였는데, 검찰 직원들은 서로 무전을 주고받으면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지키던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결국, 9시 30분을 넘기고도 김 전 실장이 출석하지 않자 취재진과 직원들은 모두 자리를 떴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 여성 직원이 "더워 죽겠는데 여기서 지금까지 무얼 한 거야"라면서 잔뜩 짜증이 난다는 말투로 김 전 실장을 원망(?)했습니다. 사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저도 이해가 되더라고요.(웃음)
-김 전 실장의 자택을 들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땠나요?
-출소한 다음 날인 지난 7일 서울 종로의 김 전 실장의 자택을 찾았습니다. 언론계 은어로 속칭 '뻗치기'라고 하죠. 취재원을 무작정 기다린다는 뜻인데요. 해가 지고 어두워졌는데도 집 안의 불이 켜지지 않더라고요. 마치 아무도 살지 않은 것처럼 고요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전 실장은 출소한 직후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만으로 78세인 그는 지병과 1년6개월 동안의 수감 생활로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가장 아늑한 공간으로 집을 꼽는데요, 과연 김 전 실장이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검찰이 오는 14일 출석을 통보했는데 나올지 궁금합니다. 만약 나오지 않을 경우 강제구인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78세의 김 전 실장이 또 수사관들의 손에 이끌려 검찰에 들어갈지 주목됩니다. 입추가 지났지만, 폭염의 기세는 여전히 꺾일 줄 모르고 있습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 때쯤 김 전 실장의 꼿꼿함도 꺾일지 지켜봅시다.
◆방담 참석 기자 = 이철영 팀장, 오경희 기자, 신진환 기자, 이원석 기자, 임현경 인턴기자(이상 정치플러스팀), 이새롬 기자, 문병희 기자, 임세준 기자, 남용희 기자(이상 사진기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