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국민·대통령 위(?) 기무사, 70년 흑역사 뿌리뽑힐까

군인권센터는 최근 국군기무사령부가 노무현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통화 감청은 물론 민간인 수백만 명 사찰 및 진보 인사 특별관리 의혹을 폭로했다. /뉴시스

'정보', 권력과 결탁 쉬워…존폐와 상관없이 체질 개선 필요

[더팩트ㅣ임현경 인턴기자] 국민과 군을 보호하기 위한 군 정보기관인 국군기무사령부가 대통령의 통화 감청에 민간인을 사찰하고 진보 인사를 특별관리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파문이다. 이번 폭로로 기무사 개혁 목소리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군인권센터는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및 진보 인사 특별관리 의혹'을 폭로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기무사 요원을 포함한 군 내부 다수 관계자로부터 제보를 받았다"며 "기무사는 군부대 면회, 군사법원 방청, 군병원 병문안을 온 민간인과 장병에 대한 사찰을 광범위하게 벌여왔다"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기무사는 매달 위병소에서 확보된 민간인 개인정보를 수사협조 명목으로 경찰에서 제공받은 경찰망 회선 50개에 접속, 주소, 출국 정보, 범죄 경력 등의 개인정보를 무단 열람한 뒤 특성별로 분류했다.

센터는 "기무는 이렇게 분류된 민간인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용의선상에 올렸다"며 "대공수사 명목으로 감시·미행·감청·SNS 관찰 등 갖가지 사찰을 자행했다. 관할권이 없는 민간인을 사찰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 강조했다.

군 내부 인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센터는 기무사가 군 간부나 장병의 사생활 정보를 수집한 뒤 '중점관리'로 분류된 인물을 따로 관리해 인사에 반영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센터는 "기무사는 군 간부뿐 아니라 병사 사찰도 일삼았다"며 "입소 예정자 중 운동권 출신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휴가시 미행, SNS 관찰 등을 했다. 2016년 휴가 중인 병사를 미행하고 통장 거래내역을 추적하다 들통나기도 했다"고 밝혔다.

조선경비대 정보처 내 특별조사과에서 출발한 기무사는 70년간 각종 논란의 역사를 겪었다. 사진은 퇴진행동기록기념위원회 등 시민단체가 지난달 9일 기무사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시민사회 기자회견을 연 모습. /이덕인 기자

◆ '정보'가 가진 위력…언제나 시끄러웠다

기무사는 1948년 5월 설치된 조선경비대 정보처 내 특별조사과에서 출발했다. 육군본부 정보국 특무대로 개편돼 간첩 검거, 부정부패자 색출 등을 수행하던 기관은 1991년 1월 '국군기무사령부'가 됐다.

기무사의 주요 업무는 △군사보안 및 군 방첩업무 △군 및 군 관련 첩보 수집 처리 △정보작전 방호태세 및 정보전 지원 △군사법원법에 규정된 특정범죄 수사 △국방 정보통신 기반체계 보호 지원 등이다. 기무사는 '정보'를 수집할 수밖에 없는 업무 특성상 언제나 불법 감청 및 정치 개입 의혹과 함께했다.

올해 1월에는 기무사가 사이버 댓글 공작 의혹을 조사하는 국방부 태스크포스(TF)를 불법 감청해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국방부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지만, '국정원 댓글 사건'과 더불어 정보기관을 향한 불안감은 높아졌다.

2015년에는 18대 대선 직전인 2012년 10월 감청장비를 대량으로 구매해 '대선 개입'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앞서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를 조직적으로 지지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터라 기무사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기무사 측은 이에 "통상적인 업무에 필요한 장비가 노후화되어 교체한 것인데, 국정원 감청장비 구입 의혹과 묘하게 겹쳐지며 불필요한 오해를 낳고 있는 것"이라 해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2005년에도 기무사의 도청 의혹이 있었다. 당시 문재인 수석은 "과거 보안사 시절 사찰이 문제가 됐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피해자였고, 저도 대상자가 돼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승소판결을 받은 바 있다"며 "그 이후 기무사는 민간인 사찰을 일절 하지 않는다. 일반 국민을 상대로 도청이나 적법 감청을 하지 않느냐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당시 세간의 '기무사와 정부 결탁' 우려와 달리, 기무사는 사실상 다음 정권을 위한 포석을 마련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군인권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무사는 참여정부 시절 첩보수집 및 대공수사를 빙자해 고 노무현 대통령과 윤광웅 당시 국방부 장관과의 통화내용을 감청했다.

기무사 관련 논란은 매번 있었지만 그에 대한 대응 및 개선은 미진한 상황이다. 사진은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어나 답변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 존폐를 넘어서, "정치 권력과 분리해야"

기무사 관련 논란과 관련해서 법안 개정, 조직 개편 등 여러 방안이 논의됐지만 진척은 미미한 상황이다. 국방부 국군기무사령부 개혁위원회는 기무사를 국방부 직할본부로 두고 규모를 축소할지, 외청으로 둘지를 놓고 의견 조율 중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기무사 출신 위원들과 비기무사 출신 위원들 사이의 이견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기무사 존폐를 두고 견해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정치 권력과 분리시켜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는 기무사 폐지와 함께 그간 투입된 자본과 인력을 군에 환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지금은 병사들을 감시·감찰하며 군사 쿠데타를 걱정해야할 시기가 아니다"며 "보안·간첩 역할은 정부기관에 맡기고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 지휘관의 명을 받는 감찰 장교 대신, 기무사를 국방부 산하의 감찰 사령부로 전환해 인력을 배치하고 임무를 부여한다면, 군에서 독립적이고 효율적인 감찰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정권은 유한하다. 그것보다는 국가 군 차원에서 이 기관을 어떻게 활용하는 게 최선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상부로부터 주어진 명령을 성실하게 수행한 이들을 두고 죄를 대충 무마하거나 무조건 나쁜 놈으로 만드는 것은 좋지 않다. 그들의 임무를 재조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성훈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는 정보기관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조직의 '체질 개선'을 강조했다. 한 교수는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정보의 특성상 정보기관이 정치 권력의 요구나 권한 강화를 위해 임의로 수집할 가능성이 있다"며 "법적으로 그 용도를 명시하고 제한, 제도적 개혁과 조직원의 인식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 교수는 기무사를 폐지하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국가 내에 정보기관이 필요하기 때문에 특정 조직을 해체하고, 이름을 바꾸고, 인원수를 줄인다고 하더라도 권력 남용·민간인 사찰 등 70년 가까이 정보기관 내에서 축적된 고질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 밝혀지는 모든 논란에 대한 군 검찰의 전면적 수사, 감사원의 감사 등을 통해야 제도적·관습적 문제를 뿌리 뽑을 수 있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한편 통신비밀보호법이 지난 2001년 개정됨에 따라, 기무사가 기존에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했던 정보 수집은 군 통신망 중 '작전수행' 목적에 한해 법원이 아닌 대통령 승인을 거치게 됐다. 대통령 승인절차가 포괄·형식적으로 이뤄지는 데다 작전수행 명목이 모호해 사실상 모든 군 통신망에 대해 무제한 감청이 가능한 상태다.

이에 관해 여러 국회의원들이 법률 개정안을 내놨지만, 20대 이전 국회에서 발의된 개정안 대부분이 폐기됐고,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관련 법안 9건은 전부 계류 상태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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