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故 노회찬 의원 20년 단골 이발사 "방미 전 40분 마지막"(영상)


고(故) 노회찬 의원이 다니던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성우이용원. 노 의원과 막역한 사이였다는 미용사 이남열 씨는 24일 취재진과 만나 왜 죽어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공덕동=이원석 기자

'성우이용원' 이남열 이발사…"너무나 인간적인 사람"

[더팩트ㅣ공덕=이철영·이원석 기자] "미국 가기 전에 들러서 잘 될 거라더니…. 건강 챙기고 오래오래 살자고 했는데, 노회찬 의원이 죽었다는 게 이상해."

23일 오전 사망한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20년 단골 이발소 성우이용원 이남열(69) 이발사는 안타까움과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24일 오후 <더팩트> 취재진은 노 의원의 단골집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성우이용원을 찾았다. 성우이용원은 지난 18일 노 의원이 방미 전 마지막으로 들렀던 곳이다. 취재진은 이 이발사와 약 40분 동안의 인터뷰를 통해 노 의원을 떠나보낸 심경과 추억 등을 들어보았다.

방미 하루 전인 18일 오후 노 의원 평소와 같은 정장 차림으로 이곳을 찾았다. 이 이발사는 "노 의원이 20일에 한 번씩을 꼭 머리를 깎으러 왔는데 그때는 깎을 날이 아닌데 왔길래 '왜 왔냐'고 물었더니 '미국 간다'고 대답하더라"고 말했다. 노 의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노 의원은 이날 먼저 온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약 30~40분 동안 이발과 면도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이 이발사가 마지막으로 본 노 의원의 모습이다.

성우이용원의 낡은 모습을 보니 평소 소탈했던 노 의원이 왜 이곳을 찾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도 성우이용원에는 에어컨도 없었다. 낡은 선풍기 두 대가 힘겹게 돌며 뜨거운 바람을 내뿜고 있었다. 땀이 흥건해진 취재진은 이남열 이발사에게 20년 단골 노 의원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었다.

말을 꺼낸 이 이발사의 말투에서 노 의원이 느껴졌다. 이 이발사는 "노 의원도 농담을 가끔했는 데, 나와 좀 비슷했다. 정치인이 인기 유지를 위해서라도 농담도 하고 해야지. 입잔소리(비판) 할 때는 해야 하고 말이야"라고 노 의원과 자신의 말투가 비슷한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70년 째 운영되고 있는 성우이용원은 고 노회찬 의원의 20년 단골 이발소다. 노 의원은 지난 18일 방미 전 마지막으로 이곳을 들렀다. 성우이용원 전경. /공덕=이철영 기자

성우이용원은 200년 된 건물로 곳곳에 세월이 묻어있었다. 1927년 문을 연 성우이용원은 벌써 91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것과 달리 성우이용원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 이발사가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라고 한다. 성우이용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영업하지만, 여전히 하루에 20명 남짓한 손님이 찾을 정도이다. 가격도 다른 곳보다 저렴했다. 가격은 커트가 성인은 1만3000원,학생은 1만 원, 면도 1만 원, 염색은 2만 원으로 서민적이다. 노 의원이 이곳을 20년 동안 다닌 이유도 서민적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이발사와 노 의원은 20년 동안 인연을 이어왔다. 20년 전 이곳을 처음 찾은 노 의원의 모습은 어땠을까. 이 이발사는 "과묵한 사람으로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그렇게 20년 동안 약 20일에 한 번씩 머리를 자르러 이곳을 들렀다. 이 이발사는 "노 의원 머리 모양은 내가 만들어 줬다.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이라.(웃음) 내가 알아서 해주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면서 "머리를 자르는 동안에는 정치 이야기나 이런 것들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 눈과 표정만 보아도 어떤지 아는 사이인데 그런 이야기를 뭐 하러하겠나"라고 마음으로 통하는 사이라고 했다.

그에게 노 의원은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는 친동생보다 나을지도 모를 사람이라고 했다. 이 이발사는 "때만 되면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잘해줄 수밖에 없다"며 "노 의원은 물심양면으로 내게 잘해줬다. 계절마다 과일, 김, 버섯 등은 물론 가족 대소사까지 항상 챙겼을 정도로 인간적인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남열 이발사는 노 의원에 대해 서로 눈과 표정만 보아도 어떤지 아는 사이라며 미국 가지 전에도 잘 될 거다라고 했었다고 말했다. 손님의 머리를 자르고 있는 이 이발사. /이원석 기자

노 의원이 사망한 뒤 이곳이 알려진 것은 그가 방미 전 마지막으로 들렀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 이발사도 찾아오는 취재진에게 노 의원과의 이야기를 스스름 없이 들려줬다. 동생 같은 노 의원의 죽음에 이 이발사는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떠나버린 동생 노회찬에게 잔소리를 했다.

이 이발사는 "노 의원을 미국 가기 전에 봤는데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를 거야. 사실 그날도 별말이 없었다. '잘 될 거다' '걱정하지 마라' '별일 아니다'라고 말하고 떠났다"며 "그런데 잘되기는커녕 뛰어내리고 뭐가 잘돼…"라며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노 의원의 황망한 죽음에 무척 화를 냈다. 그렇게 죽음으로 몬 누군지 모를 그 사람들과 허망하게 세상을 등진 노 의원을 향해서도 잔소리를 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의원의 빈소. /사진공동취재단

이 이발사는 "나 같으면 절대 안 죽는다. 왜 죽어? 노 의원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밥도 먹지 못하게 만들어야지 그렇게 가면 어떡해. 나중에 죽어도 되는데…. 우리가 진돗개 기질이 있는데 물어뜯어야지. 왜 죽었는지 답답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20년을 봐왔던 노 의원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심정에서 나온 말로 이해됐다. 이 이발사는 노 의원의 장례식장에 갈지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장례식장에서 만날 몇몇 정치인들 때문이라고 했다. 노 의원의 죽음이 장례식장을 찾은 몇몇 정치인들과 무관치 않다는 생각에서다.

이 이발사는 노 의원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는 취재진에게 내가 노 의원에게 해준 거라고는 인삼액기스 타서 주는 것 말고는 없었다. 너무나 인간적이었다고 했다. /이원석 기자

이 이발사는 노 의원을 다시 볼 수 없다. 동생 같았던 노 의원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없는지 물었다. 그는 "뭘…"이라며 한참을 손님의 머리만 만졌다.

그러면서 "섭섭하기보다는 분통이 터진다. 과묵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인간적인 사람이다. 내 속에 있는데…. 인간 대 인간으로 무조건 좋은 사람이다. 그런 국회의원 보질 못했다"면서 "돈도 없이 정직하게 살았던 국회의원이었다. 내가 열심히 사니까 자기가 더 좋아했던 사람이다. 서민적인 사람이었다"고 생전 노 의원의 모습을 회고했다.

이 이발사는 "내가 노 의원에게 해준 거라고는 인삼액기스 타서 주는 것 말고는 없었다. 사회 인연으로 참 막역한 사이였다. 인간적이었다. 너무나 인간적이었다"는 말로 말을 마쳤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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