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원칙 4대 제안 '기대 이상' 성과…靑 "한반도 문제 당사자로서 위상 확보"
[더팩트ㅣ청와대=오경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베를린 구상을 통해 군사적 긴장이 가장 높았던 시기에 대담한 상상력으로 한반도 평화의 계기를 마련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新) 베를린 구상 발표' 1년을 맞아 청와대가 내놓은 평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6일 독일 베를린 쾨르버재단 연설에서 북한을 향해 승부수를 띄웠다. '신(新) 한반도 평화비전'을 발표하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에게 사실상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또 핵 문제와 평화협정을 포함해 남북한의 모든 관심사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신 베를린 구상'은 5대 원칙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4대 제안을 담았다.
5대 원칙은 ▲한반도 평화추구(북한붕괴 불원, 흡수통일 불추진, 인위적 통일 불추구) ▲한반도 비핵화 추구(완전한 북핵 폐기, 평화체제 구축, 북한의 안보경제우려 해소, 북미 관계 개선)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남북 합의 법제화를 통한 평화의 제도화,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병행 추진) ▲한반도 신경제구상 추진(북핵문제 진전 및 여건 조성 시 공동번영의 경제공동체 형성) ▲비정치적 교류협력 지속(이산가족 문제 해결, 재해 공동대응, 민간지역간 교류 지원, 북한인권 개선 노력, 인도적 협력 확대) 등이다.
4대 제안은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이산가족 상봉 ▲군사분계선에서 남북 적대행위 중단 ▲남북대화 재개 촉구 등이다.
당시만 해도 문 대통령의 이 같은 구상을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북한은 문 대통령 취임 후 지난해 7월을 기점으로 핵실험과 잇따른 도발을 감행했다.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로 높아진 시점이었다. 특히 2000년 3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 화해·협력 선언(베를린 선언)'은 한반도 대화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발표됐기에 문 대통령의 '신베를린 구상'은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국내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구상을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핵심은 '투 트랙'이었다. 미국의 '대북 제재 압박'에 동참하면서도 '북핵의 평화적 해결'이란 북핵 기조를 세워 대북·대미 설득에 주력했다. 우선 북한이 베를린 구상에 호응하도록 인내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일관된 메시지를 냄으로써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냈다는 게 청와대의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남북 대화의 필요성과 이산가족 문제와 평창올림픽 북측 참가 등을 강조했고, 9월 26일 10.4선언 10주년 기념사에서 "남북이 함께 10.4선언이 유효함을 선언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또, 10월 3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반도 문제 5대 원칙'을 발표했다.
그 결과 올해 1월 1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응답했다. 김 위원장은 다음 달 예정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측 대표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2월 9일 평창 올림픽 개막식 참석 차 북측 고위급 대표단으로서 방남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특사 자격으로 문 대통령을 만나 방북을 요청했다. 폐막 때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이끄는 고위급 대표단이 방남해 북측이 "북미대화를 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남북 대화는 급물살을 탔다. 문 대통령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을 수석 특사로 한 대북특별사절단을 평양에 보냈다. 남북 정상은 4월 말 남북정상회담을 판문점에서 개최하기로 발표(3월 6일)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방미한 정 실장을 면담해 5월 중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겠다(3월 9일)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은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첫 남측 지역 방문이자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열린 회담으로 세계가 주목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완전한 비핵화'가 명시된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함께 발표했다. 남북 관계의 획기적 발전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는 북·미 대화로 이어졌다. 지난 6월 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세기의 핵 담판'을 펼쳤다. 회담 개최 전 비핵화 방법론을 놓고 북·미가 신경전을 벌이면서 '무산 위기'도 있었지만, 양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추진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공동노력 △판문점 선언 재확인 및 북한의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노력 △전쟁 포로 유해 발굴 등에 합의했다.
북미 회담 결과 미국이 요구해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CVID)' 표현은 담기지 않았다. 하지만 북미가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았고, 후속 회담을 이어가기로한 만큼 성공적인 회담이었다는 게 청와대의 평가였다.
우려와 부정적인 전망 속에서도 '신 베를린 구상' 1년의 성적표는 '기대 이상'이라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이행 성과를 보면 5대 기조와 관련해 4·27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 간 무력 불사용 및 불가침 원칙을 재확인하고 종전선언과 10·4선언 합의사업을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은 4월21일 핵·ICBM 시험을 중지하는 한편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기했으며, 지난달 26일 동해선과 경의선의 철도 및 도로 연결, 현대화 추진에 합의하면서 한반도 신경제구상도 가속화되고 있다.
4대 제안의 경우 8월 20일~26일까지 금강산에서 남북 각 100명씩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하기로 합의했다. 평창올림픽에서는 북한 선수들과 응원단이 참가해 남북한 선수들이 개회식에 공동 입장했고 여자 아이스하키팀 단일팀이 꾸려졌다. 남북은 군사분계선 일대 방송과 전단 살포를 중지했고, 2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3차례 고위급 회담이 이뤄지며 대화를 이어갔다.
청와대는 "베를린 구상 실행 과정에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조치 등 우리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평화적 해결' 기조는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확고한 한반도 문제 당사자로의 위상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과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등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청와대는 향후에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 및 분야별 남북회담 정례화 협력 지속 △'DMZ 평화지대화' 등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 및 신뢰구축 방안 구체화 △'2018 아시아경기대회' 단일팀 구성·공동 입장 등 남북 간 동질성 회복 기여 및 인도적 차원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미국 등 관련국 및 국제사회와 우리 정부의 한반도 구상을 긴밀히 공유하고,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지속적 지지를 확보하며, 다양한 이해집단 간 사회적 대화를 통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국정과제인 '통일국민협약' 기반을 구축하고, 국회·정당을 대상으로 '문재인의 한반도정책'이 초당적 지지와 협력을 바탕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