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주치의 덕목 첫 번째는 'VIP 건강 비밀 유지'
[더팩트ㅣ청와대=오경희 기자] 조선시대 '어의(御醫)'는 절체절명의 순간 목숨 걸고 '왕'을 진맥·치료했다. 21세기 현대사회에서 '대통령 주치의'는 지근거리에서 대통령의 건강을 돌보고 책임지는 '현대판 어의'라 할 수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몸살 감기로 나흘 간 휴식을 취했다. 대통령 주치의의 강력한 권고 때문이었다. 역대 대통령들도 주치의를 곁에 뒀다. 이들은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차관급 예우를 받는다.
그렇다면 대통령 주치의는 어떤 사람들이 임명되며, 어떻게 활동할까. 역대 대통령 주치의를 살펴보면 주로 대통령과 사적인 인연으로 임명됐다. 대통령실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대통령은 대통령과 그 직계가족 등의 건강관리와 질병 예방을 위해 주치의를 위촉할 수 있다.
◆ 대통령과 '인연'…'서울대 의대·내과 전문의' 집중돼
대통령 주치의는 1963년 박정희 전 대통령(1963~1979) 시절 처음 정식 위촉됐다. 종두법을 도입했던 지석영 선생의 종손인 개업의 지홍창 박사가 첫 번째 주치의였다. 지 박사는 군의관 시절부터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민헌기 서울대 의대 교수(내분비내과)가 위촉됐다.
박 전 대통령을 기점으로 1970년 이래 대통령 주치의는 대부분 '서울대 의대 교수이자 내과 전문의'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1980~1988 재임)은 재임 중 주치의가 3명이나 됐다. 민병석 가톨릭대 교수(내분비내과)가 첫 주치의를 맡았으나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 때 숨져 서울대 의대 한용철 교수(호흡기내과)가 주치의를 맡았다. 한 교수가 임기 중 서울대병원장에 선임돼 서울대 의대 김노경 교수(혈액종양내과)가 뒤를 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1988~1993 재임)과 김영삼 전 대통령(1993~1998 재임)은 각각 경북고와 경남고 동문 후배들을 주치의로 뒀다. 노 전 대통령의 주치의는 최규완 서울대 의대 교수(소화기내과)였고, 김 전 대통령의 주치의는 고창순 서울대 의대 교수(내과·핵의학)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1998~2003 재임) 때는 '서울대 공식'이 깨졌다. 정치인 시절 김 전 대통령과 연을 맺은 허갑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내분비 내과)와 장석일 성애병원 원장(알레르기 내과)을 주치의로 삼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2003~2008 재임)은 처음으로 한방 주치의를 임명했다. 양방에 송인성 서울대 의대(소화기내과) 교수, 한방에 신현대 경희대 한의대 교수를 낙점했다.
이명박(2008~2013 재임) 전 대통령은 '사돈'을 대통령 주치의로 정했다. 양방에 최윤식 서울대 교수(순환기내과)와 한방에 류봉하 경희의료원 한방병원장을 임명했는데, 최 교수는 이 전 대통령의 사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2013~2017)은 주치의만 4명이었고, 이례적으로 산부인과와 신경과 교수를 주치의로 임명했다. 첫 주치의는 2006년 5월 '커터칼 테러 사건'으로 인연을 맺은 이병석 연세대 교수(산부인과)였다. 이 교수가 사임하자 서창석 분당서울대병원(산부인과) 교수가 맡았고, 다시 윤병우 서울대 의대 교수(신경과)로 바뀌었다. 한방 주치의로는 박동석 경희대 한의대 교수를 위촉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실제는 '비선 의사'가 주치의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2017~)은 양방에 노 전 대통령의 건강을 책임졌던 송 교수를, 한방에 김성수 경희대 한방병원장을 주치의로 위촉했다.
◆ 'VIP 건강 비밀 유지'…무보수지만 '활동비' 받아
대통령의 건강은 국가 안위와 직결되는 만큼 보안 사항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주치의의 덕목도 'VIP 건강의 비밀 유지'로 꼽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출간한 자서전 '대통령의 시간'에서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걱정하는 말을 하거나 표정을 지으면 안 된다"며 재임 중인 2009년 폐질환을 앓았던 사실을 뒤늦게 공개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몸살 감기로 모든 일정을 취소하자 '대통령 건강이 2급 비밀에 해당하느냐' 여부를 놓고 일각에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청와대는 '건강 이상설' 확산을 진화하고자 문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공개한 것이란 취지로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도 '박 대통령이 순방 기간 동안 감기 때문에 일부 일정을 취소하거나 링거를 맞았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대통령 주치의는 본업을 병행하며 1~2주에 한 차례씩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의 건강을 살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5월 위촉 당시 김성수 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건강은 국가의 안위와 연결된다"며 "대통령께서 국정을 잘 수행하실 수 있도록 대통령과 그 가족의 건강을 챙기겠다"고 밝혔다.
주치의는 해외 순방에도 동행한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차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송인성 교수는 문 대통령에게 한 번 읽어보라며 여러 겹 접은 신문을 건넨 바 있다. 송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을 보필할 때도 가족처럼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공식 급여는 없지만 일정한 활동비를 받는다. 지난해 5월 18일 박 전 대통령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의혹' 첫 공판 증인으로 출석한 이관직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주치의에게는 500만 원이, 자문의에게는 100만 원이 지급됐으며, 돈은 '대통령 격려 봉투'에 담겨 지급된다"고 진술한 바 있다. 활동비 규모는 대통령마다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문 대통령은 나흘간 휴식 뒤 지난 2일 업무에 복귀했다.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과로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늘 강조해오다가 대통령이 과로로 탈이 났다는 그런 말까지 듣게 되었으니 민망하기도 하다"면서 "이번 주말에 다시 중요한 해외순방이 시작되기 때문에 심기일전해서 잘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오는 8일부터 5박 6일간 인도와 싱가포르를 각각 국빈 방문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