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에 맞지 않은 사용 내역들…59억은 수령인도 '깜깜'
[더팩트 | 김소희 기자] 국회의원들이 지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지급받은 국회 특수활동비(특활비) 세부 내역이 처음 공개됐다. '제2의 월급'처럼 받아왔다는 의혹을 받아온 가운데 최종 수령인을 알 수 없는 특활비만 59억 원에 달하는 등 불분명한 지출 내역도 발견되면서 파장이 예상된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국회 특활비 내역 및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참여연대는 2015년 국회사무처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해 최근 '2011년~2013년 국회 특활비 세부 지출 내역'을 받았다. 제출받은 지출결의서 1296건을 보면, ▲2011년 86억 원 ▲2012년 76억 원 ▲2013년 77억 원 등 3년간 총 240억 원이 지급됐다. 연평균 80억 원 수준이다.
참여연대는 특활비 운용의 문제점으로 △매월 '제2의 월급'처럼 정기 지급 △국회 상임위원회 중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만 추가 지급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윤리특별위원회(윤리특위) 등 회의가 1년에 4∼6번 열리는 위원회에도 매월 지급 △농협은행(급여성 경비)이라는 정체불명 수령인에게 상당 금액 60여억 원 지급 △국회의장 해외 순방 당시 수천만 원 상당 경비 달러로 지급 △유사한 항목의 월별, 회기별 중복 지급 등을 지적했다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국정 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 등에 사용되도록 규정한다. 따라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건당 지급돼야 하며, 영수증을 증빙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날 참여연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특활비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월급성 지급 경비는 전체 특활비의 절반 이상이었다.
참여연대는 이날 "특수활동비는 영수증을 증빙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에 마치 국회의원 쌈짓돈처럼 아무런 감시와 통제 없이 사용돼 왔다"며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대표적인 관행인 국회 특활비를 즉각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제2의 월급'?…교섭단체 대표 매월 6000만 원 따로 지급
국회는 교섭단체 대표와 상임위원장, 특별위원장 등에게 특활비를 제2의 월급처럼 정기적으로 지급했다. 교섭단체 대표들은 매월 6000만 원, 상임위원장과 특별위원장은 매월 600만 원씩 지급받았다.
일부 위원회는 기존 특활비에 더해 추가적인 특활비를 지급받았다. 법사위는 다른 상임위와 달리 매월 특활비 1000만 원을 추가 지급받아 간사, 위원, 수석전문위원에게 각각 100만 원, 50만 원, 150만 원씩 지급했다.
예결특위와 윤리특위 위원장에게도 매월 600만 원의 특활비가 전달됐다. 예결특위는 보통 예·결산 심의가 진행되는 시기에만 회의가 열리고, 윤리특위는 2011~2013년 각각 회의를 4~5번만 진행했다. 그럼에도 예결위원장은 총 78회에 걸쳐 추가적인 특활비를 지원받은 것이다.
서복경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은 "예결특위는 예결산 심의가 진행되는 시기에 활동이 집중되고, 윤리특위는 속된 말로 '개점휴업 위원회'로 유명하다"며 "일상적으로 매월 활동비가 왜 필요한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최초 수령인 '농협'…누구에게 얼마나 지급됐다
2011~2013년 지급한 특활비 240억 원 가운데 59억 원이 넘는 금액의 최초 수령인은 '농협은행'이었다. 총 92건으로, 3년간 각각 18억, 20억, 21억 원에 달하는 액수가 지급됐다. 전체 국회 특활비의 1/4이다. 농협은행으로 지급된 특활비는 누가, 얼마나 인출했는지 확인할 수 없는 대표적인 '깜깜이 예산'이다.
국회는 2011년 농협 통장에 '입법 및 정책개발비 균등 인센티브' 명목으로 돈을 보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2년 '교섭단체 활동비', '교섭단체 정책지원비', '입법 및 정책개발비 특별 인센티브' 등의 이름으로 지급되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윤리특별위원회 정기국회대책비', '윤리특별위원회 위원회활동지원', '특별위원회 정기국회대책비', '특별위원회 위원회활동지원' 등 지급 명목이 점점 더 다양해졌다.
결과적으로 최초 수령인과 사용처 확인이 어려운 '농협은행'에 특활비가 지급된 건수는 2011년 11건에서 2012년 34건, 2013년 49건으로 늘었다.
서 소장 "이 통장에 입금된 후 (특활비가) 어디에 꽂혀 들어갔는지 1차 수령인 이후 영수증 증빙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며 "갖가지 명목으로 의원들이 나눠 가졌다는 소문이 있어 그렇게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 국회의장, 해외순방마다 '외교 지원비' 외 '달러 뭉치'
국회의장이 해외 순방에 나갈 때마다 수천만 원의 특활비가 '쌈짓돈'으로 사용된 것도 확인됐다. 2011~2013년 3년간 총 61만 2000달러, 약 7억 원에 달하는 액수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5차례에 걸쳐 28만 9000달러(약 3억 2307만 원)를, 강창희 전 국회의장은 6차례에 걸쳐 25만 8000달러(약 2억 8841만 원)를 받았다. 정의화 당시 부의장은 박희태 의장 사임 후 직무대행을 하면서 두 차례에 걸쳐 6만 5000달러(약 7억 2000만 원)를 지급받았다.
서 소장은 "2017년 기준 일반 예산 편성에서 외교활동비로 66억 원이 책정됐다. 교통 편과 의식주 등 의회외교와 관련된 예산에는 특활비 이외에 국외업무여비 등이 별도로 배정되기 때문에 필요한 예산은 여기에서 지출하고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며 "한 차례 해외 순방에 갈 때마다 국회 특활비에서 5~6만 달러를 지급받는 것은 상식적으로 과도하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3년 소송 끝에 공개…국회사무처, 2014년 이후 자료는 '비공개'
이번 국회 특활비는 참여연대가 3년여간 소송을 진행한 끝에 공개 결정됐다. 앞서 참여연대는 2015년 5월 국회사무처에 특활비 사용 내역 공개 신청을 했는데, 국회사무처가 이를 거부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5월 대법원은 특활비는 비공개 대상 정보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참여연대 측은 2014년부터 2018년 4월까지의 지출 내역 정보공개도 청구했다. 그러나 국회사무처는 지난 5월 9일 해당 특활비 내역 정보공개 청구를 비공개 결정한 상태다.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국회사무처의 거부로 또다시 행정절차나 정보공개 거부 취소소송에 나서게 된 것은 대법원 판결 취지를 전면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라며 "국회사무처 뿐만 아니라 다른 정부부처들에 대해 감사원은 즉각 감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소송에서 '원고'로 나섰던 박용근 참여연대 집행위원은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 같은 기분이다. 국회가 이렇게 엉망이었는지 확인하니 개인적으로 허탈하기까지 하다"이라며 "참여연대는 국회뿐만 아니라 다른 중앙행정기관들에도 특활비 내역 정보공개를 청구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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