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 취재후기] 더위 잊게 한 '무장 경찰'과 대치

6·12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10일 오전(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숙소로 이용할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 주변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샹그릴라호텔(싱가포르)=이덕인 기자

나무 숲에 꽁꽁 감춰진 요새 같은 북미회담장

[더팩트ㅣ싱가포르=신진환 기자] 6·12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0년 대립과 반목의 대반전을 이루는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상호 노력하겠다는 성과를 거뒀다.

<더팩트>는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간)부터 나흘간 북미회담 개최지인 싱가포르 곳곳을 누비며 역사적인 순간 등을 취재했다. 취재 과정에서 돌발 상황도 있었고 재미 있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깨알' 같은 취재 뒷이야기를 공개한다.

6·12 북미 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9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이 보이고 있다. /센토사섬(싱가포르)=이덕인 기자

◆ 숨 막히는 더위…카펠라 호텔 전경을 찍어야 하고...

9일 오전 싱가포르 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곧바로 북미회담이 열리는 센토사 섬으로 향했다. 이 섬에 있는 카펠라 호텔이 현재 어떤 상황인가를 취재하기 서였다. 택시를 타고 가다 카펠라 호텔의 한 진입로에서 내렸다. 선글라스를 쓴 덩치가 큰 경비원이 제지했다. 이대로 취재를 끝낼 수는 없는 노릇.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택시를 타고 섬에 들어갈 때 봤던 케이블카가 떠올랐다. 높은 곳에서는 카펠라 호텔이 보일 것으로 생각했다. 우선 호텔 전경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현지인에게 물어가며 뚜벅뚜벅 걸었다.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매표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온다습한 날씨에 숨이 턱턱 막히고 이미 옷은 땀으로 젖은 지 오래였다. 휴대전화에는 섭씨 33도가 찍혀 있었다.

한 매표소 직원은 "케이블카를 끝까지 타고 가라. 그러면 모노레일 정류장이 있을 것이다. 모노레일을 타고 팔라완 해변 정류장에서 내려 해변 길을 따라가면 카펠라 호텔이 보일 것이다. 여기서 호텔을 볼 수 있는 곳은 그 해변밖에 없다"고 설명해줬다. 순조롭게 일이 풀리는 듯 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6·12 북미 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9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섬 팔라완 비치에서 카펠라호텔이 보이고 있다. /센토사섬(싱가포르)=이덕인 기자

케이블카를 타고 높은 곳에서 호텔을 볼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센토사 섬의 풍경만 보일 뿐 카펠라 호텔 전체를 보기엔 충분하지 못한 높이였다. 불과 3~4분 만에 종점에 도착했다. 남산타워 케이블카를 처음 탔을 때가 생각났다. '생각보다 케이블카 구간이 짧네.'

팔라완 해변까지 10분 만에 도착했다. 물놀이하는 관광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광경을 같이 본 후배와 "부럽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외면하고 싶었다. 하얀 백사장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이들을 바라보니 부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가뜩이나 덥고 습해서 체력 소모가 극심했던 터였다. 후배는 이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무거운 카메라까지 들고 있어서 더 힘들어 보였다. 호텔이 보이는 지점까지 무작정 걸었다. 하필 백사장이 흙길이었던 터라 힘이 쭉쭉 빠졌다. 나중에는 서로 말이 없어졌다.

6·12 북미 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9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 부근에 있는 팔라완 비치에서 경찰들이 이동하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센토사섬(싱가포르)=이덕인 기자

10여 분을 걸었다.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카펠라 호텔 지붕 등 일부만 보였다. 그때 북미회담 장소로 낙점됐는지 단숨에 이해됐다. 숲에 가려진 '요새' 같은 보안과 아름다운 해변의 전망까지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장소였다. 백사장을 따라 걷고 또 걸어도 호텔은 보이지 않았다. 높은 곳을 찾기로 했다. 백사장을 벗어나 길가로 나왔다. 20도가량의 경사면에 있는 한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이 호텔은 최소 70m 이상 될 것으로 보였다. 때문에 옥상 등 상층부에만 올라가면 카펠라 호텔을 관측할 수 있을 거로 판단했다.

문제는 내부 공사 중이었다는 점이다. 진입로가 모두 막혀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인부들과 거리가 멀어 물어볼 수도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볼 때마다 다들 친절히 길을 알려줬는데, 저마다 경로가 달랐다. 방법은 무작정 걷는 수밖에 없었다. 태양이 이글거리든 습기가 피부에 달라붙든 더운 날씨에 지쳐 무아지경(?)에 빠져들 정도였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호텔은 마치 신기루 같았다. 분명 눈앞에 있지만, 손에 잡힐 듯 하지만, 갈 수 없는 그런 곳. 현지인이 알려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결국엔 길을 빙 둘러 제자리로 돌아왔다. 인부들이 드나드는 곳을 찾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끝내 그 길을 찾지 못했다. 한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GPS도 소용없었다. 나중에는 '호텔로 안 들어가도 좋으니 대체 인부들이 다니는 길은 어디야?'라는 허탈한 궁금증만 가득했다. 결국 카펠라 호텔 전경을 보지 못하고 쓰린 속을 붙잡고 발길을 돌렸다.

6·12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10일 오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숙소로 이용할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 주변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세인트레지스호텔(싱가포르)=이덕인 기자

◆ 의욕이 앞섰던 취재…외국인 행색이 살렸다?

취재 둘째 날(10일). 당시 김 위원장의 숙소로 유력했던 세인트레지스 호텔에서 일어난 일이다.

김 위원장의 숙소 내부 동향을 살피기 위해 이날 오전 10시께 세인트레지스 호텔로 향했다. 권총과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눈에 들어왔다. 삼엄한 경계 탓에 긴장감이 느껴졌다. 일부 내외신 취재진은 호텔 정문과 200m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호텔로 들어갈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동시에 '해볼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자'라는 의욕이 들었다.

세인트레지스 호텔 정문 앞은 3중에 이르는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런데 호텔 정문에 다가가도 경찰이 위아래로 훑어볼 뿐, 별다른 검문·검색이 없었다. 옷차림이 한몫했다는 생각이다. 연일 섭씨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 탓에 티셔츠에 반바지, 운동화를 신고 있었기에 기자보다는 관광객에 가까웠다. 호텔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자신감이 붙었다.

하지만 현지 경찰의 경비를 뚫고 호텔 로비에 들어서니 숨이 턱 막혔다. X레이 검색대와 10여 명의 경찰이 눈에 들어왔다. 경찰은 현관 입구와 로비의 중간쯤에 있었다. 프런트와 내부 엘리베이터까지는 이 경찰을 뚫어야 갈 수 있던 것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10일 오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숙소로 이용할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 주변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세인트레지스호텔(싱가포르)=이덕인 기자

최대한 자연스럽게 메고 있던 가방을 X레이 검색대에 놓았다. 노트북이 있었던 탓일까. 검색대 직원은 미디어냐고 물었는데, 찰나의 순간에도 뭐라 답할까 생각이 들었고 결국 "노(No)"를 외쳤다. 검색대를 빠져나온 가방을 다시 들고 경찰 앞으로 갔다. 또 다른 경찰에게 다가가 자진해서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해줬다.

결과적으로 이때 호텔 진입을 멈췄어야 했다. 애초 현지에서 무리한 취재를 시도한 취재진이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있었고, 한국 정부에서도 유의를 당부했었다. 현지에서 취재하기 전마다 과욕은 부리지 말자고 스스로 매번 다짐했지만, 이상하게(?) 현장에서는 말과 행동이 먼저 앞섰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경찰은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무슨 일 때문에 왔냐"는 경찰의 물음에 "친구를 보러 왔다"고 말했다. 별안간 호텔 직원이 나타났다. "친구의 객실이 몇 호냐"고 물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이 시나리오는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6·12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10일 오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숙소로 이용할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 주변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세인트레지스호텔(싱가포르)=이덕인 기자

'정면 돌파'냐 '물러나느냐'. 두 가지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때마침 자꾸 경찰이 가진 무기가 더 선명하고 크게 보였다. 무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현지에서 해야 할 취재가 남았다는 생각이 앞섰다기보다는 폐부를 조여오는 압박감을 벗어나고 싶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눈치 없는(?) 호텔 직원은 닦달했다. 객실 번호가 어디냐고. 이때부터 짧은 영어를 뒤로하고 오로지 한국어를 썼다. "내 친구가 밖에 있다는 메시지가 왔다. 약속 시간에 늦었다. 나는 나가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당연히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으로 "무슨 말이냐"며 직원이 물었다. 경찰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거 됐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곧장 손짓으로 밖으로 가야 한다는 시늉을 했다. 답답했는지 경찰도 돌아가라고 손짓했다. 곧장 발길을 옮겼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시간은 채 10여분이 안 됐다. 하지만 과장하자면, 팽팽한 기류 속에서 긴장감과 압박감 때문에 영겁의 세월 같았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왔던 실내였음에도 온몸에 땀이 났다. 호텔 정문을 나서자 그동안 더웠던 공기가 어찌나 시원하게 느껴지던지….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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