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23년 보수 텃밭' 부산 민심은? "한국당 지지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사활을 걸고 다투는 부산시의 민심이 심상치 않다. 지난 23년간 보수정당 시장을 뽑았던 부산시민들이 이번 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양당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부산=이원석 기자

지방선거 앞둔 부산, 민심 향방은

[더팩트ㅣ부산 서면·주례동·명지동·해운대=이원석 기자] "저도 원래는 보수를 지지했는데 이번에는 다르지예. 더는 안 속습니다. 우리가 바봅니까."

6·13 지방선거 민심 취재를 위해 부산을 찾은 <더팩트> 취재진에게 사하구에 거주한다는 윤모 씨(60·여)가 이같이 말했다. 이날 만난 시민들 다수가 공통적으로 꺼내 놓은 말이기도 했다.

부산은 원래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가 강한 곳으로 평가된다. 지난 1995년 지방선거 실시 이래 23년간 보수정당 시장이 당선돼 왔다. 그러나 취재진이 지난 6일과 7일 부산 일대를 직접 다니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본 결과, 이번 지방선거에선 기존 분위기가 변화하는 기류가 감지됐다.

이번 부산시장 선거에선 더불어민주당 오거돈 후보와 직전 부산시장인 자유한국당 서병수 후보가 맞붙는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팽팽한 접전을 벌였던 두 후보의 4년 만의 '리턴매치'로 주목된다. 지난 지방선거에선 서 후보가 당시 무소속이던 오 후보를 1.3%p의 간발의 차를 누르고 당선됐다.

부산 서면역 근처에 위치한 더불어민주당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와 자유한국당 서병수 후보의 선거사무소. /이원석 기자

이번 선거를 앞두고 두 후보는 선거사무소도 서면역 부근에 나란히 마련했다. 서면역 사거리에 도착하자 약 20m 거리를 사이에 둔 빌딩에 걸린 두 후보의 대형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부산시장 자리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신경전이 느껴졌다.

취재진은 두 후보의 선거사무소 바로 옆 서면시장을 찾았다. 분식을 파는 노점상 주인 이모(68·여) 씨에게 '부산시장 선거에서 누가 이길 거라고 보시나'라고 묻자 "에이 난 그런 거 관심 없슴니더. 정치인이 다 똑같지. 그냥 다 개판이지예"라는 답이 돌아왔다. 비슷한 대답은 바로 옆 돼지국밥집에서 일하는 안모(66·여) 씨 에게서도 나왔다. 안 씨는 "뽑아주면 뭐합니까. 다 자기 밥그릇만 챙기지. 오거돈이고 서병수고 그냥 머리만 아픔니더. 전 미안하지만 투표 안 할 겁니다"라고 했다. 정치권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극에 달한 모습이었다.

<더팩트>는 7일 부산시장에 출마한 오거돈(왼쪽) 후보와 서병수 후보를 유세 현장에서 만났다. 두 후보는 이번 부산시장은 본인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원석 기자

"부산시장이요? 오거돈이가 그래도 좀 낫지 않겠습니까. 사실 오거돈이도 그렇게 맘에 드는 건 아닌데 한국당이랑 서병수가 워낙 못해노니까… 내 주변도 다 그렇습디다. 이번 시장은 민주당 아니겠냐고." (신모 씨, 72세, 남, 부산 동래 거주)

그럼에도 서면시장에서 만난 시민 다수는 오 후보의 승리를 조심스레 점쳤다. 대개는 이유가 같았다.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한국당과 서 후보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부전동에 거주하는 주부 이모(54·여) 씨는 "오 후보가 어떤지는 잘 몰라도 한국당이 워낙 못하고 있잖아요. 막말도 하고, 정상회담도 욕하고, 좀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상식적이지 않다고 해야 하나"라고 꼬집었다. 이는 최근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여러 차례 '막말' 논란에 휩싸인 것과 한국당이 남북정상회담 등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지적으로 풀이됐다.

서면시장에 장을 보러 나온 김모(44·여) 씨는 "서병수 전 시장도 잘 못 했죠. 다른 건 몰라도 워낙 말이 많았으니까요. 부산국제영화제도 다 망쳐놨고요"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 후보는 박근혜 정부 시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월호 관련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하지 못하도록 외압을 넣고, 부당한 인사 조치를 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부산 서면에 위치한 젊음의 거리. 취재진이 만난 부산의 젊은 층 다수는 한국당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나타냈다. /이원석 기자

젊은 청년들의 견해는 더 확고했다. 서면시장 근처 '젊음의 거리'에서 만난 대부분의 20, 30대 시민들은 민주당의 승리를 점쳤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밝힌 최모(22·남) 씨는 "잘 모르지만 민주당이 이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로는 부산에서 보수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졌어요. 그게 체감이 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서면역 지하상가에서 만난 이모(27·여) 씨도 "여론조사 결과 보니까 완전히 오 후보가 앞서던데요. 제가 실제로 느끼기에도 그 정도는 될 거 같아요"라며 "저희 집은 원래 부모님도 그렇고 저도 보수적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한국당한테 실망을 많이 했어요. 근데 저는 사실 누굴 뽑아야 될지 잘 모르겠는데 친구들 얘기도 들어보고 하면 아무래도 오 후보가 당선되지 않을까요"라고 추측했다.

실제 최근까지 나온 각종 여론조사에선 오 후보가 서 후보를 압도적이다. <부산일보>가 <부산MBC>와 공동으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4~6일 실시한(8일 보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일이 선거일이라면 누구에게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 오거돈 후보가 49.9%, 서병수 후보가 25.9%를 기록했다.(부산 거주 유권자 819명 대상, 응답률 5.8%, 오차범위 95% 신뢰 수준에 ±3.4%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 후보는 부산시민들의 기류 변화를 감지한 했는지 7일 목이 쉬어라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은 서 후보가 주례 교차로에서 유세를 벌이는 모습을 시민들이 지켜보는 모습. /이원석 기자

그러나 이날(7일) 오후 서 후보가 유세를 펼친 주례동 인근에서 취재진과 만난 몇몇 시민은 현 정권에 대한 우려감을 드러내며 서 후보와 한국당에 대한 지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주례역에서 만난 이모(79·여) 씨는 "살기가 너무 어렵습니더. 정권이 바뀌고 더해예. 경기는 나빠지는데 뭘 믿고 맡깁니꺼. 그래도 지금까지 해온 게 있는데 서 후보가 더 낫지 않겠습니꺼"라고 했다.

취재진이 탄 택시 운전사 김모(65·남) 씨는 부산시장 선거에서 어떤 후보를 택할지를 묻자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경제가 억수로 나빠지지 않았습니까. 한국당이 잘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균형을 맞춰야지요. 저는 서 시장 한 번 더 믿어볼라고 합니더"라고 말했다.

덕포동에 거주한다는 50대 윤모 씨는 "(오 후보는) 세 번이나 나와서 안됐으면 그만해야지, 뭘 또 한다캅니까. 세 번 떨어졌으면 능력 없다는 거 아닌교"라며 "보니까 지금 대구·경북 말고는 죄다 여당이 될 거라는데 이러다 나라가 다 그쪽으로 넘어가면 어캅니꺼"라고 한국당의 패배를 우려했다.

이틀간 만난 부산시민들 대부분은 서 후보와 한국당에 대한 실망감이 상당했다. 23년간 지지해줬던 보수정당에 등을 돌리려는 기류도 분명하게 감지됐다. 그러나 부산시민들은 '그래도 다시 한 번'이라는 민심도 상당했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오 후보가 큰 차이로 앞서는 상황에서 서 후보와 한국당이 부산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지 오는 13일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lws20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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