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의 사사건건] '5.18'에 대한 '전지적 국민 시점'

2018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38주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무관하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사진은 광주학살 긴급회의가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만든 책자. /5.18 기록관 제공

'1인칭' 없는 5.18, 갈등 푸는 힘은 국민에게 있다

[더팩트 | 김소희 기자] 먼저 '1980년 5월 18일'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봤다. '본인'은 "광주시민이 묻힌 망월동 묘역에 묻어 달라"던 독일 공영방송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처럼 그때 그 광주를 직접 목도한 일이 없다. 38년 전 광주를 설명하는 매개체가 다양한 덕분에 미흡하게나마 인지할 뿐이다. 관련 영화는 친절한 설명서가 되어주었고, 책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줬다.

결국, '본인'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철저히 '3인칭'이다. 3인칭 중에서도 주인공(당사자)과 가장 직접적인 연관성이 적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는 위치를 빌린 후에야 1980년 5월에 대해 논하게 됐다. 대한민국 국민이란 자격까지 더해 전지적으로 이 일에 대해 '참견'해 보려고 한다.

◆ '1인칭'을 거부하는 '1인칭'

전두환(제11~12대 대통령, 전직 대통령 예우 박탈로 호칭을 전 씨로 함) 씨는 최근 출간된 '전두환 회고록'에서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그 시기 광주광역시 어느 공간에도 나는 실제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고 한다. 특히 '광주 사태의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 되겠다'는 구절도 있다. 전 씨에게 5.18은 '완벽한' 폭동이었다.

전두환의 입을 자처해 온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이 전두환 회고록을 집필했다. 민 전 비서관은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하고 출판하라는 법원의 판단에 반발했다. /자작나무숲 제공

5.18재단과 유가족은 이 회고록에 대한 출판 금지 소송을 냈다. 법원은 회고록에 서른세 가지 허위사실이 있다며 출판과 배포 금지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출판사는 법원이 문제라고 판단한 부분만 갈색으로 칠하고 버젓이 출판을 이어갔다. 법원은 판매를 원하면 문제가 된 부분을 모두 삭제하고 출판하라고 다시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전 씨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 씨에게 5.18 계엄군과 자신은 철저히 자기 외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수차례 진행된 관련 재판을 통해 법원은 전 씨를 5.18의 '1인칭이 맞다'고 했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확정된 판결문을 보면 전 씨는 반란(내란)수괴·내란·내란목적살인 등 13가지의 죄목이 모두 유죄로 확정됐다. 내란목적살인죄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해 성립하는 범죄"이다. 전 씨 외에도 12·12 및 5·18 재판에서 이희성(계엄사령관)·주영복(국방장관)·황영시(육군참모차장)·정호용(특전사령관)이 내란목적죄로 유죄를 확정 받았다.

대법원은 또 1980년 5월 27일 광주재진입작전(상무충정작전)도 내란목적살인죄가 성립된다고 봤다. 법원은 피고인들은 5월 27일 새벽 특공조 부대원들을 시켜 18명을 총격 살해한 것에 대해 "그 작전 범위 내에서는 사람을 살해하여도 좋다는 '발포 명령'이 들어있음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 '레드 콤플렉스'가 촉발한 갈등들

38년 동안 5.18유가족과 단체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됐다. 역사적 본질을 공개적으로 왜곡하는 이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형법 제307조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특히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를 특정해야 하는데, 5.18의 피해자는 '광주시민'이어서 막연한 측면이 있다.

일부 보수진영에서는 5·18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다고 주장하며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사진은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5·18민주묘지에서 유가족들이 묘비 옆에서 생각에 잠긴 모습. /광주=이새롬 기자

이 과정에서 보수층의 '레드 콤플렉스'는 5.18이 갈등 소재로 활용되는 데 기저 했다. 일부 극우 세력은 반공주의의 힘을 얻어 5.18의 주체를 북한으로 규정했다. 이 '북한 개입론'은 보수 정권을 통해 확산됐다. 2013년 원세훈 원장 시절 국가정보원은 트위터를 통해 5.18을 왜곡한 형태로 전파한 것과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통해 5.18을 왜곡하려 한 일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갈등(葛藤)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힘이 될 수 있다. 칡 나무 덩굴과 등나무 덩굴이 서로 얽히고설켜도 이를 풀어내는 과정은 사회를 사회답게 만든다. 하지만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인물이나 집단이 끝내 화해를 이루지 못하고 대립 관계에 놓이면 갈등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특정 커뮤니티가 이 왜곡 담론을 소비하면서 '외적 갈등'은 폭발 지경에 이르렀다. 이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전라도를 비하하는 '홍어'라는 발언을 5.18 당시 집단 학살 상황에 덧대어 '홍어 무침'이라는 끔찍한 표현까지 생산했다. '본인'은 여기서 인류애를 상실했다.

온라인 한 커뮤니티는 원색적인 표현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이 이야기의 끝은….

5.18은 왜곡하고 폄훼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1인칭이 될 수 없다면 '전지적 국민 시점'으로 5.18을 살펴봐야 한다. 주인공은 될 수 없겠지만, 주인공이 아니기에 이 이야기 속 서술자들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1인칭'이 '1인칭'이기를 거부하고, 자신을 철저하게 그 일에서 배제하는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볼 수 있는 힘도 가질 수 있다.

일반적인 이야기는 당사자가 고인(故人)이 되면 끝난다. 하지만 5.18은 끝나지 않는, 끝날 수 없는 이야기다. 천안함 폭침 사태가 그러했듯 사회적 담론이 형성된 역사는 영원한 과제로 남는다. 그때 그 일에 대한 방관, 비난, 조롱은 이쯤에서 그쳐야 한다. 아직 남은 인류애만큼은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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