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남북 정상이 얼굴을 마주한다. 오는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다. 전 세계가 '한반도의 봄'을 주목하고 있다.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지인 한반도에도 '평화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더팩트>는 코앞으로 다가온 남북회담의 장소와 동선, 일정 등을 미리 들여다본다.<편집자 주>
"지금부터 버스 안에서도 촬영은 불가능하다"
[더팩트 | 판문점=오경희 기자] 지금 한반도의 '핫스팟'은 판문점이다. 이곳에서 남북 정상이 만난다. 판문점의 공식 명칭은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 JSA)이다. 1950년 6·25 한국전쟁 후, 1953년 7월 27일 체결한 정전 협정에 따라 남북한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DMZ)가 설치됐다. 그리고 65년이 흘렀다.
남북정상회담을 아흐레 앞둔 18일, 청와대 출입기자 등 회담 취재진은 판문점을 찾았다. 통제구역으로 당일 취재 제한이 있는 만큼, 미리 머릿속으로 '회담 장면'을 그리기 위해서다. 이날 현장 방문은 사전 신청을 받아 엄격한 통제 속에 이뤄졌다.
◆ 남방한계선 철책 지나 '판문점 가는 길'
오전 9시께 판문점 취재차량에 탑승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남북한이 '종전 논의'를 하고 있으며, 축하한다"고 깜짝 발언을 한 사실이 이른 아침부터 전해졌다. 판문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좀 더 무게가 실리는 듯했다. 약 1시간 반쯤 흐르자 통일로에 들어섰다. 도로 위 표지판은 '판문점'을 가리켰다. 판문점은 서울에서 62km, 개성에서 12km 거리에 있다.
차량은 통일의 관문인 파주에 멈춰 섰다. 헌병의 개별 신분증 검사를 거쳐 JSA 견학관에 도착했다. 프레스(PRESS) 띠를 팔에 두른 뒤 군 부대 차량으로 갈아탔고, '1번 국도'로 진입했다. JSA 소속 인솔 병사는 "지금부터 버스 안에서도 촬영은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 그는 "1번 국도는 서울·개성을 지나 평양과 신의주까지 이어지며 1998년 6월 고 정주영 전 현대회장이 소떼를 이끌고 방북할 당시도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남방한계선 철책을 지나 비무장지대로 접어들자 도로 왼편으로 태극기와 새빨간 인공기가 눈에 들어온다. 대성동과 기정동 마을에서 흩날렸다. 파주시 대성동 마을은 남한에서 유일하게 비무장지대(DMZ) 내에 위치한 마을이다. 약 52가구 2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1953년 휴전협정에 의해 남북에 하나씩 민간인이 거주할 수 있는 마을을 두기로 했고, 대성동 건너편엔 북한의 DMZ 민간인 거주지인 기정동이 있다. 이 두 마을사이의 거리는 불과 1.8km 정도다.
◆ '평화의 집' 보수작업 한창…내부 '비공개'
마을을 지나자, 회담 장소인 판문점 평화의 집에 도착했다. 판문점은 남북이 유일하게 철책 없이 서로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군사 분계선(MDL)을 기준으로 북쪽엔 판문각과 통일각, 남쪽엔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이 있다.
JSA 소속 인솔 병사는 평화의 집 외부 전경 외 200m 남짓 거리의 자유의 집 촬영은 불허했다. 휴대전화 또는 카메라 방향을 돌리는 순간, 곧바로 제지했다. 평화의 집은 회담장 성격으로 국가정보원, 자유의 집은 사무실 등 부속건물의 성격으로 통일부가 관리한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1989년, 준공된 지 30년이 넘은 평화의집은 보수 작업이 한창이었다. 지상 3층의 석조건물로, 멀리서 본 1층 입구는 대형 비닐로 가려져 있고, 2층에선 작업자들이 빗자루로 먼지를 쓸고 닦아내고 있었다. 회담은 2층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앞서 청와대 관계자는 "1989년 남북회담을 목적으로 만든 평화의 집은 11년 만의 정상 간 만남이란 격에 맞춰 내부 시설 정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평화의 집 내부는 현장을 방문한 취재진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일부 취재진들은 평화의 집과 자유의 집을 바라보며 'JSA 귀순 병사'가 어떤 루트로 이동했는지를 복기했다. 한 관계자는 자유의 집 측면을 손으로 가리켰다. 40여발 사격 속에 귀순했던 북한 병사를 떠올리니 순간 신경이 곤두섰다.
◆ '10cm 군사분계선'…김정은, 걸어 넘나
하이라이트는 자유의 집을 지나서다. (언론을 통해 노출된) 낯익은 광경이 펼쳐졌다. 파란색 가건물 3개동과, 그 뒤로 북측 판문각이 보였다. 굳은 자세로 북측을 주시하는 한국군 경비군들의 뒷모습이 시선을 잡아끈다.
파란색 가건물은 T1, T2, T3 등으로 불린다. T1은 중립국감독위원회가, T2는 남북 장성급회담이, T3는 영관·위관급 장교 회담이 열리는 장소다. 'T'의 의미를 묻자, 한 병사는 "임시(Temporary)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 '임시'가 벌써 65년이 흐른 것이다. 씁쓸했다.
'T2' 건물에 들어서자, 탁자 여러 개가 놓여 있다. 한 가운데 탁자가 군사분계선(MDL)에 해당한다. 바로 이곳에서 65년 전, 교전국인 미국과 북한 중국 등이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이윽고, 차창 너머로 기자들의 시선은 한곳을 향했다. 바로 군사분계선이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걸어 내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T2'와 'T3' 사이 놓인 불과 높이 10cm의 콘크리트 경계석으로 남북의 길은 막혀 있다. 민간인이 이곳을 넘는 순간, 총알 세례를 받는다. 한반도의 현실을 절감했다. 때마침 JSA 소속 인솔 병사는 "병사들이 선 위치 이상으로 움직이지 마십시오. 지금 바짝 긴장한 상태입니다. 가이드라인을 넘었다고 생각될 시 총을 꺼낼 수 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회담장을 둘러보는 동안 북한 측 판문각 계단 위에서 북한 병사가 보초를 서며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 "어, 방금 뭐가 지나갔어?" 아주 짧은 순간, 북한군이 교대로 지나가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 해빙 무드 남북, '판문점 회담' 정착될까
판문점은 남북 관계의 축소판이었다. 청와대는 이번 남북회담의 중요한 의제로 '판문점 회담 정착'을 첫손에 꼽았다.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를 위해선 두 정상이 언제든 직접 만나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란 시각이다. '5말6초' 북미 회담의 개최 장소로 판문점 평화의 집이 유력시 되기도 한다. '한반도의 봄'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