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뜨거웠던' 16일의 춘추관…김기식·김경수 사태와 '춘풍추상'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그 동네에 가면 그곳 '룰'에 맞추라는 것이다. 즉, '관행'을 이른다. 사전적 의미로는 '오래전부터 해오는 대로 하거나 관례대로 행한다'는 뜻이다. 싫으면 안 해도 그만이고 해야 할 의무도 없다. 그러나 가정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사회 곳곳에서 '관행'은 똬리를 틀고 있다.
'관행', 이 두 글자는 우리에게 불편한 존재다. 게임의 룰에서 이기는 자가 룰을 지배하듯, 관행 역시 강자들의 논리와 항변으로 악용돼온 까닭이다. 힘 있는 자에게 이의를 제기해도, '관행' 앞엔 속수무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나. 사회 구성원으로서 '왕따'를 자처하거나 다수의 비판을 감내할 게 아니라면 대개 침묵을 선택한다. 언젠가 술기운에 동료들과 "관행 타파"를 외쳤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5월 취임식에서 "관행과 결별"을 선언했다. 새 정부의 기조인 '적폐청산' 대상들의 항변 역시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관행 백화점'인 세월호 참사, 신생아의 생명을 앗아간 이대병원 사태, 금융권 특혜 채용, 국회의원들의 외유성 출장 등등. '부정(不正)'의 중심에 선 이들은 '원칙'보다 '관행'을 기준으로 내세웠다. 이를 겪어온 국민들이 이전 정권에 맞서 '촛불'을 든 이유였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눈높이' 또한 높아졌다. 이는 문 대통령이 제시한 '제1의 인사원칙'이기도 하다. 검증 잣대는 매섭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사퇴가 그렇다. 국회의원 시절 외유성 출장과 임기 말 정치 후원금 셀프 후원 의혹 등에 대해 김 전 원장의 항변도 '관행'이었다. 이에 대한 여론은 계속 악화됐다.
결국 '재벌 저격수'로 불리던 김 전 원장을 내세워 금융개혁'을 추진하려던 문 대통령도 '결단'의 갈림길에 섰다. 문 대통령은 선관위에 김 전 원장을 둘러싼 4가지 의혹에 대해 유권 해석을 의뢰하며 "어느 하나라도 위법하다고 판단되면, (김 전 원장)을 사임시키겠다"고 했다. 일각에선 '관행'과 '위법'이 혼재한 상황에서 차제에 인사 기준점을 세우려 했던 것으로 풀이됐다.
이에 따라 선관위는 지난 16일 오후 8시, 정치 후원금과 관련해 '위법' 판단을 내렸다. 이는 곧 '김기식 사임'을 의미했다. 춘추관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야권의 파상 공세에도 청와대가 '김기식 카드'를 고수했던 터라 각종 국정 현안과 맞물려 후폭풍을 예고했다. 예상대로 김 전 원장은 사표를 제출했고, 문 대통령은 17일 오후 이를 수리했다.
이로써 '관행' 하나가 깨진 셈이었다. 엄격해진 국민 눈높이에 맞춰 '새로운 인사 기준'이 요구됐다. 17일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김 전 원장 사안과 관련해 인사 프로세스에 대한 후속 조치가 있는지'에 대해 "민정수석실 차원에서 논의할 차원"이라면서도 "어제 선관위의 유권 해석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 유권 해석이 또 하나의 기준이 되지 않았습니까"라고 언급했다.
문제는 '김기식 사태'로 끝이 아니란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민주당원(필명 드루킹) 댓글 조작 파문 사건'과 관련한 인사청탁 연루 의혹에 청와대가 연관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이 역시 김 전 원장의 사퇴 당일 불거졌다. 진위를 떠나 '드루킹 사태' 또한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으로 시선이 쏠린 상황이다. 이 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6·17일 춘추관을 찾아 해명과 진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상황 설명이 오락가락하면서 일각에서 '말 바꾸기'란 지적이 제기됐다.
어쩌면 '악법'을 고치는 것보다 '관행'을 없애는 게 더 힘들지도 모른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에 비춰보면 말이다. 그래서 더 문 대통령에게 기대를 거는 게 아닐까. '춘풍추상(春風秋霜)'.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청와대 비서관실에 이 글귀를 담은 액자를 선물했다. 중국 명나라 말기 문인인 홍자성의 어록을 모은 채근담에 나오는 말로, '다른 사람에게는 봄바람(春風)처럼 관대하고, 자기 일에 대해서는 가을 서릿발(秋霜)처럼 엄격해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 이는 비단 문재인 정부에만 해당된 얘기는 아니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와 우리 모두 스스로 돌아볼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