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희의 '靑.春' 일기] '역사학자' 꿈꾼 文대통령과 '4·3 약속'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김정숙 여사와 함께 참석한 뒤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청와대 제공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文대통령, 국내외 행보와 연설엔 '역사'가 숨어 있다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학창시절, 빵집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길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날, 저녁이었다. 한 명, 두 명, 가게를 찾은 손님들마다 '제사상에 올릴 빵'을 주문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사장님에게 물었다. 그는 "4월 3일. 옆 마을엔 제삿날이 같다"고 알려줬다. 고향 제주의 아픈 역사, '4·3'이 있던 날이었다.

잠들었던 기억은 올봄 다시 깨어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제주를 찾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현직 대통령으로서 두 번째로 70주년을 맞은 '4·3 추념식'에 참석했다. 대통령으로서 '국가 폭력'에 따른 피해를 사과하고,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지난 9년,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선 없던 일이었다.

문 대통령의 제주행은 일찌감치 예견됐다. 대선 후보였을 당시 공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13일 '제주4·3 평화공원'에서다. '미완의 과제'인 4·3은 제주 민심을 가를 상징적 지표였다. 마크맨으로서 동행했기에 그날, 문 대통령의 발언과 모습 역시 뇌리에 남아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유가족을 부축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제주 출신이 아닌 한 선배는 이번 제주4·3 추념식 현장을 직접 다녀왔다고 했다. 4일 만난 그는 "관광지로만 보던 제주를 다시 한 번 보게 된 계기였다"고 말을 건넸다. '4·3….' 상념에 빠졌다. 이야기는 계속됐다. "4·3은 제주 사람들에게 금기의 영역이었잖아"라고 선배는 상기시켰다. 전날, 청와대 관계자도 같은 말을 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미 군정기에 발생한 제주4·3은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좁은 제주 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대를 이어 살아야 했다. 4·3 증언 본풀이에 나온 후유 장애인이나 유족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자식들에게조차 한 맺힌 기억을 꺼내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다.

핵심은 마지막 한마디였다. "70주년을 맞았지만, 부마항쟁, 5·18 민주화운동 등과 달리 제주4·3엔 '이름'이 없다"는 말이었다. 부끄러웠다. 막연하게 4·3을 아픔의 역사로 인식했을 뿐이었다. 살면서 기억 한편에 묻어뒀다. 섣불리 '이해한다, 안다'고 말하기에도 '깊고, 무거운 역사'였다. 민주화운동 이전 지난 40~50년 동안 이뤄져온 제주4·3의 성격 규명은 폭동이요, 반란이었다.

2013년, 제주4·3연구소는 '4·3'을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3일 제주 4·3 평화공원 일대에서 개최된 국가추념식에 참석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그러나 지금도 이념 진영 간 견해가 엇갈린다. 사태? 사건? 항쟁? 학살? 70년이 흐른 지금, 관련 단체들은 '정명 찾기'에 나섰다고 한다. 또한 여전히 희생자들에 대한 진실규명과 완전한 명예회복 등을 유족들과 도민들은 바란다. 그리고, 문 대통령에게 기대를 건다. 허망한 바람은 아니란 생각도 든다.

10대 시절 '역사학자'를 꿈꿨던 문 대통령은 '진실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고 강조했다. 촛불 정국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곧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26일 발의한 헌법 전문 개정안에도 5·18 광주민주화운동, 부마 민주항쟁, 6·10 민주항쟁 등 4·19 혁명 이후 세 가지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사건을 명시했다. 또, 국내외 공식 행사 연설문에는 늘 '역사'가 담겨 있다. 독립 운동가이자, 역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은 말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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