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희의 '靑.春'일기] 文대통령님, 저도 질문 있어요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기존의 방식이 아닌 대통령이 직접 지목해 질문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하기 위해 손을 든 기자를 지명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망설이다가 망했다. 9일, 문재인 대통령의 첫 신년 기자회견에서 결국 질문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간절함 부족과 전략 부재였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대부분 이번 회견을 기대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짜여진 각본 없이 모든 기자가 질문할 '기회'를 갖는다는 의미였다.

전날부터 기자들의 고민은 가중됐다. 퇴근길 버스 안 대화 주제도 이를 대변했다. "빨간 옷을 입어라""토끼 머리띠를 해라""한복을 입어라" 등등. 농담이었지만, 결코 웃어 넘길 일은 아니었다. 문 대통령의 눈에 띄는 게 중요할 테니 말이다.

다음 날 아침, 드디어 회견 당일이다. '무엇을 입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멈칫했다. 설마, 옷이 대수랴. 무난한 남색 계열 정장을 골랐다. 출근길에서 마주친 기자들도 "오늘, 질문을 꼭 해야지"라며 은근한 긴장과 설렘이 묻어났다. 춘추관 입구엔 생중계를 위한 방송 부스들이 새벽부터 꾸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이 질문을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다./청와대=오경희 기자

관건은 '질문 내용'이었다. 지명을 받아도 '제대로, 제대로된 질문'을 하지 못하면 망신이었다. 사전 공통 질문지가 없었다. 매체 별로, 기자 별로 정치·외교·안보, 경제, 사회·문화 등 전 영역을 아울러 질문을 준비했다. "무슨 질문을 할 거냐"며 눈치작전을 펴기도 했고, 중요한 '패'는 프로들답게 까지 않았다.

오전 8시, 회견 시간이 다가오자 조급해졌다. '질문 리스트'를 다듬고, 정리했다. 한 시간 뒤, 250여명의 내·외신 출입기자들은 춘추관에서 버스를 타고 청와대 경내로 이동했다. 이미 선발대가 앞자리를 선점했다. 지명 받을 확률이 확 줄어든 느낌이었다.

장내를 훑었다. 저마다 손엔 수첩과 볼펜을 들고 있었다. 결전을 앞둔 선수의 모습이었다. 개중 '튀는' 컬러의 옷차림과 형형색색 넥타이가 눈길을 끌었다. 이 가운데 한 명은 왠지 지목을 받을 것 같았다. 문 대통령의 입장 2분 전.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대통령과 눈을 마지막으로 맞춘 기자가 질문하시면 된다"고 말했다. 머릿속으로 질문을 되뇌였다.

시~작. 기자들은 앞다퉈 손을 들었다. 열기에 탄성을 자아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두 번째 질의자로 맨 앞줄에 앉은 한 기자를 지목했고, 그는 "보라색 옷을 입은 게 신의 한 수 였다"고 말했다. 또 한 기자는 "질문 있어요"라고 쓴 종이를 들었고,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인형을 흔든 기자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명을 받기 위해 한 기자가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인형을 들고 있다./청와대 페이스북

용감(?)한 질문을 한 기자도 있었다. 이른바 '문빠(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댓글 논란'을 언급했다. 기자들의 질문 후보군에 오를 질문이었지만, 민감한 얘기였다. 이 기자의 이름은 곧바로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한 기자는 "저라면 하지 못할 질문이었다"고 했다. "다른 사안보다 중요한 질문이었나"란 시각도 공존했다.

문 대통령은 앞뒤, 좌우, 내·외신, 남녀 비율을 고려했다. 그러나 맨손으로 질문권을 따기는 쉽지 않았다. 회견은 막바지로 치달았고, 이때 옆쪽의 한 기자가 "여기 좀 봐주세요"라고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 속으로만 외치던 말이었다. 사정권 밖에 있던 그 기자에게 문 대통령은 기회를 줬다.

결국, 하고 싶었던 질문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국민 삶과 가까운 얘기를 꺼내려 했다. 문 대통령의 집권 2년 차 키워드도 '삶의 질 개선'과 '체감'이었다.

'광화문 대통령'은 언제쯤 실현될지, 퇴근길 남대문 시장에서 시민들과 소주 한잔을 하시는 모습을 곧 볼 수 있을지, "노력하면 바뀐다"고 한 대통령의 말로 지금의 청년 세대를 설득할 수 있을지, 소설 '82년생 김지영' 열풍을 보며 성평등과 양성평등 논란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준비한 질문 내용은 내 머릿속에만 남아 그칠 줄 모르고 맴돌았다. 이날 기자들의 질문은 개헌과 남북, 북핵 등 정치·외교·안보 질문에 쏠렸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1시간여 회견이 끝나자,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동료기자는 "신발이라도 흔들어야 했나"라고 했다. 농담섞인 자책이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간절함의 부족이었다. 좀 더 레이저 눈빛을 강렬하게 보냈다면 통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기레기' 소리를 들을까봐, 은연중에 주저했는지도 모르겠다. 첫술에 배부르랴. 그러나 '낮술'이 당기는 날이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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