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망설이다가 망했다. 9일, 문재인 대통령의 첫 신년 기자회견에서 결국 질문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간절함 부족과 전략 부재였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대부분 이번 회견을 기대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짜여진 각본 없이 모든 기자가 질문할 '기회'를 갖는다는 의미였다.
전날부터 기자들의 고민은 가중됐다. 퇴근길 버스 안 대화 주제도 이를 대변했다. "빨간 옷을 입어라""토끼 머리띠를 해라""한복을 입어라" 등등. 농담이었지만, 결코 웃어 넘길 일은 아니었다. 문 대통령의 눈에 띄는 게 중요할 테니 말이다.
다음 날 아침, 드디어 회견 당일이다. '무엇을 입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멈칫했다. 설마, 옷이 대수랴. 무난한 남색 계열 정장을 골랐다. 출근길에서 마주친 기자들도 "오늘, 질문을 꼭 해야지"라며 은근한 긴장과 설렘이 묻어났다. 춘추관 입구엔 생중계를 위한 방송 부스들이 새벽부터 꾸려졌다.
관건은 '질문 내용'이었다. 지명을 받아도 '제대로, 제대로된 질문'을 하지 못하면 망신이었다. 사전 공통 질문지가 없었다. 매체 별로, 기자 별로 정치·외교·안보, 경제, 사회·문화 등 전 영역을 아울러 질문을 준비했다. "무슨 질문을 할 거냐"며 눈치작전을 펴기도 했고, 중요한 '패'는 프로들답게 까지 않았다.
오전 8시, 회견 시간이 다가오자 조급해졌다. '질문 리스트'를 다듬고, 정리했다. 한 시간 뒤, 250여명의 내·외신 출입기자들은 춘추관에서 버스를 타고 청와대 경내로 이동했다. 이미 선발대가 앞자리를 선점했다. 지명 받을 확률이 확 줄어든 느낌이었다.
장내를 훑었다. 저마다 손엔 수첩과 볼펜을 들고 있었다. 결전을 앞둔 선수의 모습이었다. 개중 '튀는' 컬러의 옷차림과 형형색색 넥타이가 눈길을 끌었다. 이 가운데 한 명은 왠지 지목을 받을 것 같았다. 문 대통령의 입장 2분 전.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대통령과 눈을 마지막으로 맞춘 기자가 질문하시면 된다"고 말했다. 머릿속으로 질문을 되뇌였다.
시~작. 기자들은 앞다퉈 손을 들었다. 열기에 탄성을 자아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두 번째 질의자로 맨 앞줄에 앉은 한 기자를 지목했고, 그는 "보라색 옷을 입은 게 신의 한 수 였다"고 말했다. 또 한 기자는 "질문 있어요"라고 쓴 종이를 들었고,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인형을 흔든 기자도 있었다.
용감(?)한 질문을 한 기자도 있었다. 이른바 '문빠(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댓글 논란'을 언급했다. 기자들의 질문 후보군에 오를 질문이었지만, 민감한 얘기였다. 이 기자의 이름은 곧바로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한 기자는 "저라면 하지 못할 질문이었다"고 했다. "다른 사안보다 중요한 질문이었나"란 시각도 공존했다.
문 대통령은 앞뒤, 좌우, 내·외신, 남녀 비율을 고려했다. 그러나 맨손으로 질문권을 따기는 쉽지 않았다. 회견은 막바지로 치달았고, 이때 옆쪽의 한 기자가 "여기 좀 봐주세요"라고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 속으로만 외치던 말이었다. 사정권 밖에 있던 그 기자에게 문 대통령은 기회를 줬다.
결국, 하고 싶었던 질문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국민 삶과 가까운 얘기를 꺼내려 했다. 문 대통령의 집권 2년 차 키워드도 '삶의 질 개선'과 '체감'이었다.
'광화문 대통령'은 언제쯤 실현될지, 퇴근길 남대문 시장에서 시민들과 소주 한잔을 하시는 모습을 곧 볼 수 있을지, "노력하면 바뀐다"고 한 대통령의 말로 지금의 청년 세대를 설득할 수 있을지, 소설 '82년생 김지영' 열풍을 보며 성평등과 양성평등 논란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준비한 질문 내용은 내 머릿속에만 남아 그칠 줄 모르고 맴돌았다. 이날 기자들의 질문은 개헌과 남북, 북핵 등 정치·외교·안보 질문에 쏠렸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1시간여 회견이 끝나자,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동료기자는 "신발이라도 흔들어야 했나"라고 했다. 농담섞인 자책이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간절함의 부족이었다. 좀 더 레이저 눈빛을 강렬하게 보냈다면 통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기레기' 소리를 들을까봐, 은연중에 주저했는지도 모르겠다. 첫술에 배부르랴. 그러나 '낮술'이 당기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