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흔의 법과 세상] '플리바게닝' 장시호 중형 '충격'?, 진짜 피해자는 국민

특검 도우미 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 씨는 지난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검찰의 구형보다 높은 징역 2년 6개 월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남용희 기자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피의자 중 한 명인 장시호(38) 씨에게 법원은 검찰의 구형(1년 6월)보다 높은 2년 6월의 실형을 내렸다. 통상적으로 검찰의 구형보다 선고형이 낮은 것이 현실임에 비춰 장 씨는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장 씨는 최순실 사건에 관한 수사 과정에서 최 씨와 줄줄이 엮인 피고인들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중요 정보들을 상세히 진술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8일 구속 기소된 뒤 법정기한이 만료됐음에도 검찰이 유일하게 구속기한연장 청구를 하지 않아 서로 간에 '플리바게닝'이 있었던 것으로 관측된 바 있다.

'플리바게닝'은 '유죄답변거래'나 '유죄협상제도' 등으로 불리며 피의자나 피고인이 수사나 증언에 협조하는 대가로 검찰이 형을 낮춰 주거나 가벼운 죄목으로 다루는 제도를 뜻한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공식적으로 빈번하게 벌어지는 관행이고 역사적으로도 많은 나라에서 공범의 자백을 받는 방법으로 요긴하게 이용돼 왔다.

이 제도는 우리나라에는 없으며, 미국의 형사 재판 절차에 있는 것으로 배심원 평결제도와 더불어 우리나라와 크게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정부는 수사·기소·재판최종심까지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플리바게닝 도입 논의가 계속 있어 왔다. 김황식 총리 시절 국무회의에 이 안건이 상정되었는데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고,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유보됐다. 그 후 법무부는 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소추면제제의 명칭을 내부증언자 형벌감면·소추면제제로 바꾸는 내용의 수정안을 마련했는 데, 부패와 테러, 마약 범죄 등에 한해 공범의 범죄 진술에만 감형해 준다는 단서도 달았다. 수사 편의를 위해 플리바게닝 제도를 도입한다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명칭만 바뀌었을 뿐 법안의 내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12월 13일 전국의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플리바게닝' 제도 도입에 대해 '입증하기 어려운 범죄수사에 도움이 되므로 찬성한다' 는 응답이 57%, '사법정의를 훼손할 우려가 있으므로 반대한다'는 의견은 29.3%였다고 한다. 조사 결과가 놀랍다.

영화 모범시민은 미국의 플리바게닝에 대한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모범시민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에서도 '플리바게닝'제도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다. 2009년 12월 개봉된 '모범시민'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두 명의 범인에 의해 아내와 딸을 잃게 된다. 범인들은 잡혔다. 검사가 주인공에게 두 범인 모두 처벌하는 것보다 플리바게닝 통해 한 명이라도 처벌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를 표현하자 주인공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시한다. 자기 눈 앞에서 아내를 강간하는 두 범인을 보았는데 한 명을 풀어 준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결국 한 명은 사형을 받고 한 명을 풀려난다. 주인공은 이 미국의 사법제도에 대해 분노한다. 주인공은 풀려난 범인을 살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검사, 판사까지도 살해 한다. 주인공은 체포된 후 검사에게 자기와도 거래를 하자고 제안한다. 플리바게닝 제도는 사법 정의 관념에서는 맞지 않다. 하지만 합목적적 관점에서 사법 비용(수사와 증거 수집을 위한 시간과 노력)을 줄이고, 일부 정의를 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의 공감대가 이루어지면 도입할 수도 있는 제도라 보여진다.

공정거래법에서 인정되는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씨)'도 유사한 제도로 보인다. 그렇지만 부작용 측면을 고려하여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장 씨는 어차피 만천하에 드러난 일, 자신의 형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수사 기관의 요구에 적극 협조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플리바게닝이란 어디까지나 검찰이 피고인에게 구형량을 줄여 주거나 불구속 수사의 혜택을 줄 수 있을 뿐, 법원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검찰이 구형한 것보다 더 많은 징역형을 선고한 이유에 대해 장 씨가 아무리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실체적 진실 규명에 기여한 점을 양형에 참작한다 해도, 20억 원이 넘는 거액을 부당하게 취해 이를 운용하면서 국민들에게 피해를 준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더팩트DB

법원은 장 씨가 아무리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실체적 진실 규명에 기여한 점을 양형에 참작한다 해도, 20억 원이 넘는 거액을 부당하게 취해 이를 운용하면서 국민들에게 피해를 준 점을 고려하면 검찰의 구형보다 더 장기의 징역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행법으로도 법원의 판결이 검찰의 구형에 따라야 할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검찰의 구형은 피고인을 기소한 입장에서 피고인에 대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형량을 재판부에게 의견으로서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 일각에서는 검찰과 법원이 최근 여러 유명 인사에 대한 구속적부심에서 보여준 갈등의 불똥이 장 씨에게 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무엇보다 이를 지켜보는 우리 국민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검찰과 법원의 기싸움은 그들만의 리그일 뿐, 국민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막대한 사익을 추구한 장 씨의 형량은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구속 수감된 장 씨 입장에서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꼴'이라고 탄식하며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검찰의 구형 수위가 낮았다. 재판에서도 그나마 장씨의 범행 자백 및 수사 협조가 양형에 참작돼 판결 형량이 낮아졌음은 분명하다. 장 씨는 어쨌든 플리바게닝의 혜택을 입은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1년의 세월이 흘렀다지만 여전히 허탈하고 어안이 벙벙한 국민들의 분통은 터져도 한참 전에 진작 터졌다. 진짜 '새우등'은 장 씨가 아니라 바로 '국민'이라는 점을 장 씨나 법원, 검찰이 모두 알아줬으면 한다.

pjh@sw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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