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 내려지는 판결은 얼마나 될까요? 대한민국 재판부는 원외 재판부를 포함하면 200여 개가량 됩니다. 그러니 판결은 최소 1000여 건 이상 나오겠지요.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법이 몰려 있는 '법조 메카' 서울 서초동에선 하루 평균 수백 건의 판결이 나옵니다. <더팩트>는 하루 동안 내려진 판결 가운데 주목할 만한 선고를 '엄선'해 '브리핑' 형식으로 소개하는 [TF오늘의 선고]를 마련했습니다. 바쁜 생활에 놓치지 말아야 할 판결을 이 코너를 통해 만나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주>
[더팩트|서울중앙지법=김소희 기자] 법조계는 15일 일본산 방어를 국내산으로 속여 판매한 혐의를 받는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의 재판, 전자발찌를 착용한 상태에서 지적장애를 가진 친딸을 8년간 강간한 인면수심 아버지에 대한 항소심, 주식 매수 등을 위해 계열사 자금 등을 무단으로 인출한 혐의로 기소된 이낙영 전 SPP그룹 회장(56)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주목을 끌었다.
○…'방어 원산지 허위 표시' 노량진수산시장 상인 86명 무죄
서울중앙지법 형사23단독 명선아 판사는 15일 일본산 방어 원산지를 국내산 방어로 허위 표시해 판매한 혐의(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노량진수산시장 상인 유모 씨 등 86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명 판사는 "상인들이 일본산 방어를 국내산 방어로 거짓 표시했다고 볼 합리적 의심이 증명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2월 TV프로그램 '먹거리X파일'은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일본산 방어를 국내산으로 속여 판매한다'는 내용을 방송했다. 이후 수사를 담당한 서울 동작경찰서 경찰은 여러 사건을 제보하면서 알게 된 이모 씨에게 원산지 실태 동영상 촬영을 부탁했다.
이 씨는 지난해 1월30일 노량진수산시장을 방문할 당시 판매되는 방어가 모두 일본산으로 알고, 이를 전제로 방어를 구매할 것처럼 묻고 상인들이 국산으로 대답하는지를 중점으로 촬영했다.
동영상을 촬영한 이 씨는 법정에서 상인들이 방어의 원산지를 국산으로 표시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다만 방문한 점포 중에서 1곳을 제외한 모든 점포가 방어의 원산지는 국산이라 대답했다고 진술했다.
명 판사는 "동영상에서 피고인들이 방어의 원산지를 국산으로 표시했다고 볼 만한 장면을 찾을 수 없다"며 "이 씨도 법정에서 촬영 당시 원산지 자체를 표시하지 않은 상인이 많았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당시 점포 내 수족관에 방어 자체가 없었던 상인들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이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상인들이 공소사실에 기재된 기간 동안 일본산 방어를 모두 국내산으로 거짓 표시했다는 점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전자발찌 착용한 채 친딸 8년간 강간한 父 징역 12년
서울고법 춘천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재호)는 15일 전자발찌를 착용한 상태에서 지적장애를 가진 친딸을 8년간 강간한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기소된 A씨(53)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09년 강원 춘천시 자택에서 지적장애 3급인 친딸을 강제로 강간했다. 당시 친딸은 12살에 불과했다. A씨의 범행은 딸이 20살이 된 올해 초까지 8년간 이어졌다. A씨는 3차례에 걸쳐 성폭력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어 위치추적 기능이 있는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다. 그러나 집에서 벌어진 범죄에 전자발찌는 무용지물이었다. A씨는 지난 3월4일 또 다시 친딸을 강간하려 했지만, 방문을 열고 들어온 자신의 아버지(A씨의 할아버지)에게 범행을 들켰다.
A씨는 자신도 지적장애 3급으로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하는 능력이 상당히 결여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지적장애는 맞지만 독립적으로 사회활동을 했고 장기간 자율방범대원으로 봉사하기도 했다"며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대법 "계열사 지원 합리적이면 배임 아냐"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특정 계열사에 무리하게 자금을 지원한 혐의(특경법상 횡령·배임·사기 등)로 기소된 이낙영 SPP그룹 전 회장에 대해 원심과 달리 일부 배임혐의를 무죄 취지로 판단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합리적인 경영판단의 재량 범위가 아니라며 횡령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에는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특정 계열사의 자금을 이용해 다른 계열사의 자재를 사들이는 등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했다는 이유로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이 회장은 2001년부터 2005년 사이 계열사인 SPP머신텍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다른 계열사인 SPP해양조선 소유 자금 261억 원을 임의로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 회장은 2011년부터 2012년 사이 계열사인 SPP조선이 선박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시가 63억 원 상당의 고철 1만3000여t을 다른 계열사인 SPP율촌에너지가 무단으로 사용하게 한 혐의도 받는다. 또 채권단의 관리를 받는 SPP조선의 자금 1273억 원을 사용해 자금난을 겪는 다른 계열사들의 자재를 구매하고, SPP조선에서 발생한 시가 176억 원의 고철을 다른 계열사에 넘겨 회사자금으로 사용하게 하는 등 부당하게 계열사를 지원한 혐의 등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이 회장 등 회사 임원들의 여러 공소사실 중 계열사 자금을 무단으로 횡령한 혐의 등은 유죄, 계열사 지원 행위 등은 무죄로 판단하며 이 회장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2심은 1심 판결 중 계열사 지원 부분이 유죄라며 판결 일부를 파기하면서도 이 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해 감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계열사 지원행위는 계열사들의 공동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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